최근 일본 도쿄 진보초에서 만난 문학평론가 구라모토 사오리(왼쪽)와 번역가 승미가 한 고서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 = 글·사진 신재우 기자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한국만의 일이라고요? 지난 10년 동안 한국문학을 읽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변화를 갈망해온 일본의 여성 독자들은 ‘우리가 해온 일이 틀리지 않았다!’며 환호했어요.”(구라모토 사오리)
“일본에서 확산된 한국문학의 인기는 기존에 어떤 해외문학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독특한 현상이에요. 여성 독자들이 중심이 돼서 이뤄낸 성과라
오징어릴게임 는 점에서 지금의 한·일 관계에서 희망이 되지 않을까요? 국가 간 관계를 떠나 문학은 적어도 인간과 인간을 이을 수는 있으니까요.”(승미)
이들의 대화는 일본에서 지난 10년간 벌어진 한국문학의 변화가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디에 다다랐는지를 말해준다. 한·일 관계가 정치·외교적 상황에 따라 굴곡을 겪는 사이, 문학만큼은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
바다이야기릴게임 게 양국을 잇는 다리를 넓혀 왔다. 특히 한국문학은 일본의 여성 독자들이 ‘스스로 발견하고 공유하며 확산시킨’ 문학이다. 거대 담론이나 국가 주도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 차오른 힘. 그 움직임이 결국 한강의 노벨문학상이라는 결실에 도달했을 때, 일본의 여성 독자들이 함께 환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변화의 의미를 짚기 위해 도쿄 진보초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에 위치한 한 북카페에서 문학평론가 구라모토 사오리와 번역가 승미를 만났다. 일본의 문예지와 신문을 넘나들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한국문학을 일본에 소개해온 평론가와 김금희·정세랑·조남주 등 다수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현지에서 옮겨온 번역가. 일본 내에서 한국문학의 주요 독자인 20∼40대 여성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해온 두 젊은 전문가들은 일본 서점
사이다쿨접속방법 가에서 한국문학이 ‘현상’이 되는 과정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일본에서의 한국문학 유행은 일본 문단의 문법과 전혀 다르게 흘러왔다”고 말했다. 구라모토는 “프랑스·독일·영미문학처럼 대학 학과 체계나 권위적인 평단을 통해 자리 잡는 방식이 아니라,
무료릴게임 한국문학은 처음부터 제도권 바깥에서 등장했다”고 했다. “덕분에 도리어 자유로웠어요. 여성 독자가 먼저 읽고, 서점 직원들이 코너를 만들고, 팬이었던 번역가들이 처음 번역을 시도했죠. ‘팬덤 기반의 풀뿌리 운동’이었던 셈이죠. 이런 방식으로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 해외문학은 한국문학이 유일해요.” 승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일본 서점을 가면 한국문학 코너가 한 줄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건 출판사가 만든 게 아니라 독자가 만든 자리거든요. ‘82년생 김지영’ 이후로는 정말 눈에 띄게 달라졌어요.”
실제로 변화는 숫자에서도 확인된다. ‘82년생 김지영’은 일본에서 누적 20만 부 이상이 판매되며 아시아 문학으로는 드물게 스테디셀러가 됐다. 손원평의 ‘아몬드’와 ‘서른의 반격’은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에서 각각 2020·2022년에 1위를 차지했다. 김초엽, 정세랑, 김금희 등의 작품도 해마다 후보 명단에 오르며 일본 서점가에서 한국 작가의 이름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흐름 한가운데에는 페미니즘이 있다. 구라모토는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사랑받는 여자’가 미덕처럼 강조됐어요. 그런데 한국 소설에는 그 (사랑받는 여자의) 세계에 없던 언어가 너무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부당함을 말하는 언어, 분노를 설명하는 방식, 자기 삶을 똑바로 서술하는 태도. 일본 여성 독자들은 그 언어를 읽는 순간 ‘이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구나’ 하는 해방감을 얻었죠.”
승미는 이를 “정체된 일본 사회가 던지기 시작한 질문”과 연결 지었다. “한국문학을 읽고 일본 독자들이 ‘우리도 변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에서는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가능했을까’ ‘일본도 바뀌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같은 얘기요. 저는 이것이 문학이 만든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변화의 또 다른 원동력은 ‘새로운 한국문학의 얼굴’이었다. 승미는 “쿠온 출판사의 ‘한국문학 시리즈’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재일문학·민족문학 이미지에서 벗어나 스타일리시한 새로운 한국문학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구라모토는 “사이토 마리코 같은 여성 번역가가 만들어낸 공기도 컸다”며 “일본 독자에게 한국적인 것이 ‘쿨한 것, 예쁜 것, 귀여운 것’이라는 인식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문학은 양국이 서로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승미는 “각주를 달아야 했던 ‘김밥’ ‘불고기’ 같은 단어를 이제는 일본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며 “1990년대 일본소설이 한국 독자들의 세계를 넓혀준 경험이 이제는 반대로 흐르는 것 같다”고 했다. “서로의 얼굴이 보이게 되면, 그다음에 이해가 따라옵니다.”
말하자면 문학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연대’다. 구라모토는 “단순히 사회구조의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한국 여성 작가들이 ‘생활’에서 이야기를 끌어올리는 만큼 한 사람의 삶이 사회의 축소판처럼 다가온다”며 “그 점이 일본 독자에게 깊이 와닿는다”고 덧붙였다.
한국문학은 일본 문단의 구태의연한 문화도 바꾸고 있다. 구라모토는 일본에서 자신이 ‘평론가’가 아닌 ‘서평가’라고 불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은 여성이 ‘비평’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강해요. ‘문예평론가’라는 표현은 남성에게 사용하곤 해요. 그래서 서평가라는 말에는 나름의 역사와 맥락이 있는 거죠.” 한국에는 평론가로 활동하는 여성이 많다고 전하자 그는 환하게 웃었다. “부럽고, 동시에 정말 고무적인 일이에요.” 승미는 “새로운 남성상”의 등장도 예감했다. “개정판 같은 거죠. 언어도, 번역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니까요. 남성 작가들의 언어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봐요. 실제로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다’고 말하는 작가들이 점점 늘고 있어요.”
대담이 끝날 무렵, 두 사람은 편혜영, 백수린, 황정은, 최은미 등 자신이 사랑해온 한국 작가들을 끝없이 호명했다. 그 대화 속에 남는 것은 쿨한 것, 예쁜 것, 귀여운 것들뿐. 국적도, 언어도, 정치도 넘어선 문학이 한·일 관계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이들의 대화 속에서 엿보인다.
“문학만큼 인간의 내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르가 있을까요. 인간이 얼마나 모순됐는지, 연약한지, 다면적인지 보여주잖아요. 동시대의 사람들이 숨 쉬고 있는 문학은 타인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도구죠.”(승미) “언어는 모두가 함께 길어 올리는 ‘우물의 물’ 같다고 생각해요. 권위적이고 닫힌 문학이 아니라, 누구나 나눌 수 있는 문학이 결국 한·일 관계도, 개인의 미래도 좋은 방향으로 이끌 거라고 믿어요.”(구라모토)
■ 약력
구라모토 사오리(倉本さおり)
△1979년 일본 출생. 문학평론가. 한국문학을 비롯해 다양한 해외문학 비평과 칼럼을 기고한다. 저서에 ‘한국문학 가이드북’ ‘문학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등이 있다.
승미
△1986년 한국 출생. 와세다대에서 현대문학과 현대비평을 공부한 후 일본에서 번역가·서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김금희·정세랑·조남주 작가의 소설을 일본어로 옮겼다.
문화일보·동북아역사재단 공동기획
신재우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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