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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군 자선냄비 봉사자가 서울 명동 거리에서 자선냄비를 지키고 있다. 구세군한국군국 제공
딸랑, 딸랑. 연말 거리의 인파 사이로 청량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종소리에 맞춰 붉은 방패 아래 놓인 붉은 냄비로 눈길이 쏠린다. 성탄절이 임박한 연말 대표 풍경인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97년째
바다이야기게임장 거리에 나왔다. 자선냄비는 몸과 마음이 모두 추워지는 세밑, 누구나 작게나마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상징물이다. 구세군은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종식을 열고 전국 300여 곳에서 붉은 종을 흔들 예정이다.
자선단체로 보이는 구세군은 사실 개신교의 한 교파다. 다른 교회처럼 예배와 전도를 한다. 이들의 목표는 '통합선교를 통한 전인구원
릴게임야마토 '. 자선냄비 캠페인은 모든 이를 구하기 위한 대담한 목표를 위한 하나의 활동이다. 26일 만난 한세종 구세군한국군국 서기장관은 "영혼도 구원해야 하고, 영혼이 담긴 육체도 구원해야 하고, 그 육체가 살아가는 사회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 구세군의 신학적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슬럼가에서 태어난 교회... '부부 사
바다이야기2 관' 전통
서울 중구에 있는 구세군역사박물관에 자선냄비와 종이 전시돼 있다. 구세군한국군국 제공
구세군 본부는 영국에 있다.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와 캐서린 부스 부부가 1865년에 세운 '동부런던기독교부흥회'
바다이야기오리지널 가 기원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도시 빈민들이 늘어나자 부부는 동부 런던의 빈민촌에 교회를 세웠다. 부부는 실업과 기아, 무주택에 내몰린 빈민을 돕고 선교했다.
군 형태의 구세군 조직으로 발전한 건 1878년. 빈민 구호 활동에 신속성과 효율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스 부부는 당시 가장 근대적 조직이었던 영국 육군을 본떠 '군'을
사아다쿨 자칭하고 조직도 개편했다. 구세군 성직자들은 '사관'으로 불리며, 군복과 비슷한 옷을 입는다. 구세군 교회는 영문(營門·Corps)으로 부른다.
구세군 교회는 일반 교회와 달리 성평등을 추구한다. 여성 안수(성직 임명)와 강도권(설교할 권한)을 허용하고, 부부 사관도 가능하다. 사관끼리 결혼해서 부부가 같은 계급을 맡고 비슷한 업무를 담당한다. 전체 사관 중 부부 사관이 90%다. 한 서기장관은 "구세군은 피부색과 지역 등으로 차별하지 않는 것을 중시하고, 남녀 평등도 처음부터 강조했다"면서 "창립자로 윌리엄·캐서린 부스 부부를 함께 높인다"고 설명했다.
성평등 강조는 한국 구세군의 초기 역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에서 구세군의 공식 선교 활동이 시작된 건 1908년 로버트 호거드(한국명 허가두)와 애니 존스 사관 부부가 한국을 찾아 교회를 설립하면서다. 1910년 한국의 구세군사관학교는 초창기 남자 학생만 받았지만, '부부 사관'의 원칙을 도입해 1917년부터 한국인 남성 사관의 부인을 교육해 여성 사관으로 배출했고, 이듬해부터는 여학생을 입학시켰다.
한반도에서만 97년, 나눔의 상징 된 붉은 냄비
24일 인천 남동구 구세군남동평강의마을에서 구세군 사관과 자원봉사자들이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앞두고 물품을 점검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구세군의 상징인 자선냄비는 124년 전 등장했다. 1891년 겨울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 해안에서 배가 좌초돼 1,000여 명의 난민이 발생하자, 조셉 맥피 사관이 이들을 돕기 위해 큰 냄비를 걸고 "이 솥을 끓게 하자"며 동전 모금을 받은 게 시작이다. 한국에는 1928년 당시 흉년과 가뭄 때문에 도둑질과 노숙으로 내몰린 이들을 안타깝게 여긴 박준섭 사관이 이들을 돕기 위해 모금 운동을 벌이면서 자선냄비가 처음 등장했다. 구세군은 이 모금으로 급식소를 열어 매일 120∼130여 명의 노숙자에게 밥과 국을 대접했고 빈곤 가정에 옷과 음식, 땔감을 전달했다.
한세종 구세군한국군국 서기장관이 26일 구세군의 자선냄비 캠페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구세군한국군국 제공
단일 교회의 모금운동이었던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97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나눔' 하면 떠오르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신자들이 줄고 특히 개신교를 향한 시선이 차가워진 요즘에도 종교의 경계를 넘어 시민사회에서 신뢰가 높은 편이다. 한 서기장관은 "구세군의 나눔은 필요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전달하는 활동"이라면서 "이를 꾸준히 이어 온 세월의 힘이 작용해 인정을 받고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모금 활동의 부침이 없진 않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한 2020년엔 모금액이 급격히 줄기도 했다. 현금 없는 사회 영향도 컸다. 코로나19로 거리 인파가 줄고,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현금 모금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세군은 이에 대비해 QR코드와 키오스크를 도입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근거리무선통신(NFC) 장치를 통해서도 모금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모금액은 다시 회복세다. 한 서기장관은 "적은 돈이라 하더라도 우리 시민이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변함없이 품고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고무적"이라면서 "자선냄비가 여전히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은 감사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낄 일"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도움받고, 누구나 도울 수 있다
구세군이 4월 29일 산불 피해를 입은 경북 영덕군에서 긴급구호물품을 나르고 있다. 구세군한국군국 제공
자선냄비 외에도 구세군은 다양한 방식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다. 기업과의 파트너십도 활발하다. 구세군이 최근 주력하는 지원 활동은 재난 상황에 처한 이들의 긴급구호다. 올해 초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산불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긴급구호팀이 파견돼 이재민에게 음식과 생수를 나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피해를 입은 이들의 심리치료와, 재난 이후 삶의 터전을 회복하기 위한 지원 사업도 하고 있다.
연말 자선냄비도 뜨겁게 끓을 준비를 마쳤다. 누구라도 구원받을 수 있고, 누구라도 이웃을 도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종이 울린다. 한 서기장관은 자선냄비가 가장 빛날 때를 부모의 손을 잡은 아이가 냄비에 기부를 하는 장면을 꼽았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가르치고 배우며 세대를 넘어 역사로 연결해 가는 현장이기 때문이죠."
2023년 경기 수원역에서 구세군 수원 브라스밴드가 모금활동을 하는 모습. 수원=뉴시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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