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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혼자 하는 거잖아.”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말했다. “몰려서 달리는 건 민폐야.” 친구는 단호했다.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러다 생각이 엉뚱한 데로 튀었다. “엄청나게 신기한 단체 달리기 게임이 있어.” 대화 주제와 상관없이, 내가 이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끝마쳤을 때, 친구는 미국 오리건주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이 게임에 참가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후드 투 코스트’(HOOD TO COAST)는 오리건주 마운트 후드의 팀버라인 로지에서 출발해 시사이드 비치까지 총 198~199마일을 달리는 레이스다. 대략 320㎞. 초등학생급식비 통상 12명이 한 팀이 되어 나눠 달리니까, 한명이 3개 구간을 맡는다. 해마다 8월 말 금요일 새벽에 대회가 시작된다. 주자들은 6명씩 두대의 밴에 나눠 탄다. 첫번째 밴에 탄 러너들이 한명씩 교대하며 달리고 나면 두번째 밴에 탄 러너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코스는 정해져 있다. 선수의 교대 지역과 밴의 교대 지역도 정해져 있다. “텐트라도 설치돼 있나요 청약예금 1순위 ?” 2017년과 2018년 두번이나 이 대회에 출전한 나이키코리아 러닝 코치 아이린에게 물었다. “아뇨, 다른 사람이 달릴 때 차에서 쉬어요.” 내가 약간 멍한 표정을 짓자 아이린이 말을 이었다. “단순한 이어달리기는 아니에요. 거의 이틀 동안 차 안에서 먹고 씻고, 앞선 주자의 뒤를 이어서 달리는 거니까. 반면 엄청난 동료애가 밀려들죠. 나를 위해서가 텔레마케터 자격증 아니라 팀을 위해서 내가 맡은 거리를 무사히 달려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교대할 때마다 시끌벅적해요. 응원하느라.”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산꼭대기에서 바다까지 친구들과 달려보고 싶어서. 팀버라인 로지에서 포틀랜드 인근과 코스트 레인지를 지나 시사이드까지 오는 사이엔 아스팔트 도로는 물론이고 숲길, 논길, 해안이 이어진다고 대회 누리집에 적혀 일반공무원 있다. 상상도 안 된다. ‘포틀랜드’ 말고는 지명도 낯설다.



2017년 ‘후드 투 코스트’에 참가한 러너들. 다른 팀 러너를 추월하는 것을 ‘로드킬’이라고 한다. 아이린 제공


“출발 전에 밴을 꾸미는 시간이 있어 1주택자도 디딤돌 대출 요. 차에 그림도 그리고 응원 구호도 쓰고 멋있게 만드는 거죠. 달리면서 다른 팀 러너를 추월하는 것을 ‘로드킬’이라고 하는데, 교대할 때마다 몇명 로드킬 했는지 밴에 적어요. 재미가 아주 크죠.” 아이린 팀은 밤낮을 달려 24시간 만에 토요일 시사이드 해변에 도착했다고 했다. 후드 투 코스트 누리집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릴레이의 어머니(Mother of All Relays)로 알려진 이 대회는 31년 연속 로터리 오픈 당일에 매진되었습니다!’ 반면 ‘더 스피드 프로젝트’(THE SPEED PROJECT)는 공식 누리집이 없다. 소셜미디어 디엠(다이렉트 메시지)으로 신청을 받는다. 주최 쪽에서 직접 초청하기도 한다. 출전 러너는 레이스 도중 사고가 발생하거나 경찰이 다가와도 이 행사에 참가 중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 피어에서 네바다주 상징 조형물인 ‘웰컴 투 패뷸러스 라스베이거스’까지 약 340마일, 547㎞를 달린다. 시작과 끝만 같고 여정은 팀이 직접 설계한다. 안전한 교대 구간도 없다. 심지어 중간에 모하비 사막을 지난다.



안성건 사진가가 찍은 ‘더 스피드 프로젝트’ 주자 교체의 순간. 달리기는 밤에도 계속된다. 안성건 제공


“낮엔 소매가 없는 옷을 입었고, 밤엔 패딩을 입었어요.” 2023년 이 대회에 참가한 달리기 친구 박한빛누리가 말했다. “제 꿈이었어요. 소셜미디어 공지를 보고 신청을 했는데 운이 좋게 선정이 됐어요.” 10명의 러너, 2명의 드라이버가 한 팀을 이뤘다. 박한빛누리는 밴과 스포츠실용차(SUV) 한대씩을 빌렸다. 절반이 스포츠실용차를 타고 교대로 달릴 때 나머지 반은 밴에서 휴식했다. “중간에 물과 식량이 떨어졌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런데 그런 일이 생기더라고요. 밤이었어요. 급하게 수소문해서 피자집을 찾았어요. 거기서 물도 샀지요.” 고난의 순간은 많았다. “밤에 달리다가 길을 잃었어요. 앞에 철조망이 있는 거예요. 이게 아닌데, 더듬거리고 있었고, 동료들이 철조망을 넘어서 가보자고 하는 거예요. 너무 이상하다고 말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얼핏 보니 탱크가 있더라고요. 군부대 지역이었던 거예요.” 51시간 만에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고 했다. “거기선 뭐, 파티죠!” 후배는 고개를 대각선으로 들고 공중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힘든 만큼 말도 못하게 좋았어요. 화장실이 따로 없으니까 밤에 휴지 하나 들고 차에서 나와 볼일을 보러 갔는데, 어둠뿐이었어요. 그 적막한 고요 속에서 하늘에 별이 반짝였어요.”



‘더 스피드 프로젝트’ 참가한 러너 진주씨. 안성건 제공


성건씨와 진주씨 부부는 다국적 러너들로 구성된 ‘롱 디스턴스’(Long Distance) 팀의 제안을 받아 지난 3월 이 행사에 참가했다. 엘에이를 기반으로 둔 케이알시(KRC·Koreatown Run Club)의 러너들이 서포트 멤버로 참여해 이 팀을 도왔다. 덕분에 이 대회를 여러번 경험한 전문가들의 조력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엔 고민이 됐어요. 한국의 친구들과 한 팀으로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거든요. 하지만 낯선 사람들과 팀을 이뤄서 참가해보는 것도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주씨가 말했다. 남편인 성건씨는 사진가다. 그는 롱 디스턴스 팀의 미디어 담당으로 참여해 레이스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대회 초반엔 이국적인 풍경 속에 러너 개인에 몰입해서 찍었어요. 처음 보는 경치였어요. 그러다가 점점 멤버들, 그들이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게 됐어요. 울컥할 때가 꽤 있었어요.” 그저 몸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엔 순결함과 진심이 담긴다. 그는 그 서사를 읽었다. “저희 팀 러너는 여자 4명, 남자 4명이었는데 여자 멤버들도 풀코스 마라톤을 3시간 안에 들어오는 주자였어요. 제가 제일 느렸을 거예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뛰고 싶었어요. 미국, 프랑스, 영국, 홍콩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팀을 이룬 거라 대화가 완벽하지 않았던 적도 있었지만, 레이스가 이어질수록 언어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관계가 되었어요. 그런 감정은 처음이었어요.”



‘더 스피드 프로젝트’ 참가 러너들 모습. 안성건 제공





‘더 스피드 프로젝트’ 참가 러너들이 완주하고 기뻐하는 모습. 안성건 제공


나는 이 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없어서 감정을 추측만 할 뿐인데, 부부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 여러번 참았다. “이번 대회 참가자 단톡방이 있었어요. 실시간으로 들개에게 다리가 물린 팀 사진이 올라온 거예요. 피가 나는 큰 상처였고, 저희 팀도 곧 지나가야 할 길이라 무섭고 걱정이 됐어요.” 성건씨가 말했다. “그래서 밤엔 비상 신호용 스프레이를 들고 달렸어요. 누르면 크게 삑 소리가 나는데 짐승들이 그 소리를 들으면 물러난대요.” 이 팀은 사진가를 포함해, 길을 잘 아는 운전자, 대회에 여러번 참여한 경험이 있는 서포터가 크루로 합류했다. “깜깜한 밤에 혼자 달리고 있었어요. 팀 차량은 다음 교대 장소로 먼저 이동했고요. 어둠과 적막 속에 들개 울음소리가 크게 들리는 거예요. 정말 무서웠어요. 그때 뒤에서, 별도로 움직이고 있던 팀 리더의 차가 따라왔어요. 헤드라이트를 켜주고, 뉴진스 노래를 크게 틀어주는 거예요. 감정이 복받쳤어요.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롱 디스턴스 팀은 40시간54분 만에 그들을 환영하는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올핸 약 80팀이 참가했고 이들 기록은 20위권에 해당했다. 그런데 여운이 깊게 남았다. “서울에 돌아와서 한동안 어떤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어요. 대회에 몰입해서 동료들과 보낸 비현실적인 시간이 엄청나게 큰 자극이자 행복이었던 거죠.” 진주씨가 말했다. 성건씨는 7월에 사진전을 열었다. “공유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어떤 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앞으로 이 대회에 참석하게 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요.”



2023년 ‘후드 투 코스트’에 참여한 박한빛누리씨가 이용한 차량. 박한빛누리 제공





2017년 ‘후드 투 코스트’에 참가한 나이키코리아 러닝 코치 아이린의 차량. 차량에 직접 그리고 새긴 메시지들이 인상적이다. 아이린 제공


뜬금없이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후드 투 코스트와 더 스피드 프로젝트에 참여한 친구들은 모두 동료들 덕분에 막막함을 견뎠다고 말했다.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달리는 감각은 어떤 것일까? 달리기는 혼자 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어떤 힘은 동료들의 손을 잡고 함께 달리게 만든다. 저녁, 공원에 가면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러너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막연히 느끼는 게 아닐까. 행복을 향해 달리는 것에 대해서. 혼자 달리든 여럿이 달리든, 외로움을 밀어내는 달리기의 힘에 대해. 이우성 콘텐츠 제작사 미남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