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국 기자]
지난 17일, 시가현 미이데라 삼정사 절과 히에이잔 산 엔략쿠지 절을 찾았습니다. 시가현 두 절 안에는 장보고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이 있습니다. 미이데라 삼정사 절에는 장보고를 신으로 모시는 사당이 있고, 엔략쿠지 절에는 완도군에서 세운 장보고 비석이 있습니다.
▲ 시가현 미이데라 삼정사 절에 있는 신라선신당 정면과 안에 모신 장보고 상(오른쪽)입니다. 장보고 상은 비공개라서 ‘KBS 역사 저널
uniqueness 그날’ 방송 사진을 갈무리했습니다.
ⓒ 박현국
장보고는 신라 사람으로 일찍이 중국 산동성 적산촌에 법화원을 짓고 신라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9세기 청해진을 설치
사업자신한은행대출 하여 중국 당 나라와 신라, 일본 사이의 바다 무역을 담당하는 상인이었습니다. 이때 일본을 출발하여 중국에 가서 불교를 배우려는 스님들에게 바닷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마침 바닷길을 장악하고 있는 장보고의 도움이 꼭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장보고의 도움으로 중국 유학을 마치고 일본에 돌아온 스님들이 절을 지으면서 장보고를
국민은행 이자 부처와 버금가는 신으로 모셔 섬기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스님이 미이데라 삼정사 절을 지은 엔친(圓珍, 814-891) 스님이었습니다. 미이데라 삼정사 절 경내에 신라선신당이라는 사당을 짓고 장보고 상을 만들어 두고 섬겼습니다.
지금도 엔친 스님 후손들이 장보고 사당인 신라선신당을 대대로 관리하면서 섬기고 있습니다. 장보고 사당에 모신 장
이신핸드폰 보고 신상은 일반 공개도 금지한 채 국보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처음 신라선신당은 미이데라 삼정사 절 경내에 있었으나 절터 안에 새로운 시청, 소방서, 고등학교들이 새로 지어지면서 지금은 절 북쪽에 외로이 떨어져 있습니다.
보통 일본에서 신라를 '시라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유독 미이데라 삼정사 절에서 '시라기'라는 자신들의 말을 쓰지 않고
회전초밥 우리식 '신라'라고 쓴 것도 수수께기입니다. 아마도 한반도 신라 사람들을 존경하여 신라라는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미이데라 삼정사 절은 언뜻보아서 이름으로 우물이 세 곳에 있는 절로 알기 쉽습니다. 미이데라 삼정사 절의 원래 이름은 온조지(園城寺) 절입니다. 삼정사(三井寺) 절 이라는 이름은 세 왕 천지(天智, 덴지), 천무(天武, 덴무), 지통(持統, 지토) 왕이 태어나서 처음 목욕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 미이데라 절 금당 옆 동쪽 모습과 금당 옆 서쪽에 있는 아카이야(閼伽井屋 ) 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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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히에이잔 산 엔랴쿠지 절 안에는 완도군에서 세운 장보고 비석이 있습니다. 비석 앞 머리에 새겨 놓은 거북이는 한반도를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있습니다. 엔략쿠지 절은 사이초 스님이 새운 천태종 절입니다. 이 절의 3대 주지였던 엔닌(圓仁, 794-864) 스님이 중국에서 장보고의 도움을 받아서 유학을 마치고 바닷길을 거쳐 일본에 돌아왔습니다.
엔닌 스님은 자신의 중국 유학 경험을 적은 책(입당구법순례행기)에 구체적으로 장보고의 도움을 적어 두기도 했습니다. 이를 본 완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나서 장보고 비를 세우고자 엔략쿠지 절을 찾아 스님들의 도움으로 절 안에 장보고 비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특히 완도군에서는 장보고 비석을 세우면서 9세기 신라, 일본, 중국 당 나라의 문화 교류의 실상을 엿보아 그때 서로 돕고 살았던 활동을 후세 우리들이 서로 공유하여 동아시아 세 나라가 서로 돕고 사이 좋게 지내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2001년 건립).
미이데라 삼정사 절에서 사카모토 엔략쿠지 절 입구 시가현 비와코 호수 서쪽은 두 절 뿐만 아니라 여러 고고 유적들이 발견된 곳이기도 합니다. 고고 유적에서는 대륙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 무덤, 온돌, 석축 기법들이 보고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한반도와 문화 교류나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 헤에이잔 산 엔략쿠지 절에 있는 장보고비석과 설립 까닭을 적은 비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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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누리집> KBS 역사 저널 그날, 일본 교토의 수호신, 신라명신 (KBS_2009.12.19.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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