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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올 무렵에는 상점들의 네온사인이 켜지고 전철역에서 퇴근한 사람들이 몰려나온다. 천변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루 중 이 시간이 제일 좋다. 집에 와서 양치질을 하고 『금강경』이나 옛날 작가들의 글을 읽다가 잔다. 최근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었는데, 삼분의 일 정도 읽다가
3노드디지탈 주식 덮었다. 내 나이에 읽을 만한 책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동복천 너머 보이는 화순 숲정이 마을
이 가을 운주사에 서서
여행하는 방식도 변했다. 여행은
모바일릴게임 종류 삶과 마찬가지로, 원래 피곤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루키 영감이 말했듯 피곤하지 않은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창밖을 바라보며 저곳에는 여기와는 다른 삶이 있겠지, 하며 생각하고 가 보지만, 막상 가 보면 다 똑같다. 모두가 피곤하고 지루한 삶을 살고 있다. 여행은 ‘피곤’이, 삶은 ‘아등바등’이 디폴트다. 그래서 ‘삶은 여행’이라고 하는지도
텔레필드 주식 모른다. 여러 곳을 여행하다 보면 따뜻한 온수 샤워가 가능하다는 것, 변기가 망가져 있지 않다는 것에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사실은 가장 좋은 날이라는 걸, 여행이 가르쳐 준다.
여행은 내가 싫어하는 것들을 별 죄책감 없이 외면할 수 있어 좋다. 뭔가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일은 안경
야마토2 pc버전 을 쓰고 안경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도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찾고 싶은 뭔가는 내 주위에 있다. 그것들은 책상 앞이나 사무실 주변, 혹은 자주 가는 카페에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 잘 살펴 본다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즐기려고 하고, 마음껏 놀려고 한다. 그것이 여행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임추천 나는 지금 화순 운주사에 와 있는데, 운주사 곳곳에 자리한 석불들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남은 인생, 저 석불들의 표정처럼 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운주사, 가을 운치 가득한 운주사
가을 운주사. 단풍이 예쁘게 들었다. 운주사는 능선을 따라 흩어져 있는 돌부처와 돌탑으로 유명하다. 탑들은 호떡탑, 항아리탑, 동냥치탑, 실패탑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름 그대로 도자기처럼 둥근 것도 있고, UFO를 닮은 것도 있다. 그 모습은 석가탑이나 정림사지 석탑 등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반듯한 비례의 아름다움보다는 거리가 멀다. 어딘가 뒤틀려 있다. 초등학생이 찰흙으로 만든 듯 투박하다. 신라계로 보이는 것도 있고, 백제계로 보이는 것도 있다. 모전석탑의 양식도 있다. 층수도 3, 5, 7, 9층 등으로 다양하고 탑에 새겨진 문양도 독특하다. 탑신에는 절에서 흔히 쓰는 연꽃 문양이 아니라 ‘X, V, ◇, //’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질적인 이 탑들이 묘하게 조화로운 모양으로 어울려 서 있다.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지켜온 석불과 석탑은 누가, 왜 세웠는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다. 부처의 얼굴은 더 흥미롭다. 보통 절의 부처님처럼 단정하거나 위엄 어린는 모습이 아니다. 눈매는 희미하고, 코는 닳아 없어졌으며, 입가엔 가느다란 미소가 번진 채다. 홀쭉한 얼굴, 둥근 얼굴, 짧은 목, 두꺼운 눈꺼풀. 근엄함은 없고 대신 사람 냄새가 난다. 어쩌면 그게 이곳 부처들의 진짜 매력인지도 모른다. 몸의 비율도 들쭉날쭉하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운주사 곳곳에 자리한 석불들
우리와 닮은 운주사 부처의 모습
운주사 곳곳에 자리한 석불들
이 부처들은 이상화된 신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와 닮은 얼굴이다.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고, 동시에 체념과 평화가 공존한다. 세월의 마모를 그대로 품고도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 여행자는 그런 얼굴을 보며 자신을 비춘다. ‘내가 살아온 얼굴도 저렇겠지.’ 피곤한 일상 속에서도 버티고, 웃고, 또 살아내는 사람들의 얼굴. 그 투박한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운주사의 석불은 경건함보다는 친근함을 주고, ‘깨달음’의 상징이라기보다 ‘살아 있음’의 상징에 가깝다.
운주사에는 도선국사의 전설이 얽혀 있다. 신라 말의 고승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세우려 했다는 이야기다. 국사는 나라의 운명이 기울어가던 시기에, 국운을 다시 일으킬 비밀스러운 도량을 찾았다. 그가 점지한 곳이 바로 화순의 깊은 골짜기였다. 산세가 마치 구름이 머무는 듯하여 ‘운주(雲住)’라 이름 붙였다.
도선국사는 이곳에 천 개의 불상과 천 개의 탑을 세우면 나라가 다시 태어날 것이라 믿었다. 그는 하룻밤 사이에 그 일을 완성하기 위해 도력을 펼쳤다. 하지만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절에서 함께 일하던 동자승이 장난삼아 닭 울음소리를 냈다. 날이 새는 줄 착각한 국사는 일을 멈췄고, 그 결과 석불 두 구를 결국 세우지 못했다고 한다.
남편불과 아내불
그 미완의 두 불상은 지금도 절 서쪽 산비탈에 남편불과 아내불로 나란히 누워 있다. 이 와불들은 각각 길이 12.7미터와와 10.3미터로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사람들은 이 두 부처가 일어서는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고 믿는다.
운주사 뒤편 산 중턱에는 ‘공사바위’라 불리는 거대한 바위가 있다. 운주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세울 때 이 바위 위에서 도면을 펴고 탑의 위치와 형태를 설계했다고 한다. 그가 손으로 짚은 자리마다 불상과 탑이 솟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을 ‘공사(工事)의 현장’이라 부른다. 바위에 서면 절의 중심인 구층석탑이 정면으로 보이고, 주변의 석탑과 석불들이 계단식으로 늘어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연화탑으로도 불리는 원형다층석탑(보물 제198호)도 보인다. 탑신이 둥그런 탓에 ‘도넛탑’, ‘호떡탑’이라는 재미있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맑은 날엔 무등산의 능선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바위 표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고, 일부에는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도 남아 있다.
공사바위는 운주사 일대의 다른 석탑과 마찬가지로 응회암(화산재가 굳어 형성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이 납작하고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까닭은 응회암을 그대로 떼어 조각했기 때문이다. 응회암은 부드럽게 쪼개지고 깎기 쉬워 조각에 적합하다.
운주사 구층석탑
황석영·르 클레지오 등 문호들이 사랑했던 절
잊혀져 있던 운주사가 다시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소설가 황석영 덕분이다. 황석영의 『장길산』은 조선 숙종 대 의적 장길산과 민중의 저항을 다룬 작품으로, 1970년대 한국 문학의 대표적인 서사로 평가받는다. 황석영은 소설의 결말에서 장길산이 세운 이상향의 상징으로 운주사를 등장시켰다. 도선국사가 만든 미완의 천불천탑 전설과, 민중이 꿈꾸는 이상사회의 이미지를 겹쳐 놓으며 운주사를 ‘혁명의 성지’로 재탄생시켰다.
완성되지 못한 천불천탑은 미완의 역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정의로운 세상을 은유한다. 이 고요한 절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 ‘깨어나지 않은 와불의 땅’, 다시 말해 ‘언젠가 깨어날 희망의 땅’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많은 이들이 운주사를 찾으며, 그곳을 단순한 불교 사찰이 아닌 민중의 희망과 변혁의 상징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르 클레지오에게 영감을 준 운주사
운주사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2001년 10월 대산문화재단과 주한 프랑스대사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는 일정 중 운주사를 찾았는데, 비가 내리던 가을날 절을 둘러보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동행자에게 “천불천탑의 전설이 너무나 경이롭다”고 말했으며 그 감흥을 시로 담아 ‘운주사, 가을비’라는 시를 썼다.
“아직도 등을 땅에 대고 누운 두 분 부처는 / 일어날 날을 기다리신다 / 그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거란다. 운주사에 내리는 가랑비는 / 가을의 단풍잎으로 구르고 / 길게 바다로 흘러 / 시원의 원천으로 돌아간다. / 두 와불의 얼굴은 이 비로 씻겨 / 눈은 하늘을 응시한다 / 한 세기가 지나는 것은 구름 하나가 지나는 것 / 부처님들은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을 꿈꾼다.”
르 클레지오는 이후에도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는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한국 문학과 문화에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2001년의 운주사 방문은 그가 한국을 잘 이해하는 ‘지한(知韓)파 작가’로 불리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언급되곤 한다.
더 깊은 화순 가을 여행
쌍봉사에도 가보자. 전남 화순군 이서면에 자리한 이 절 역시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절 이름은 절 뒤편의 두 봉우리가 서로 마주 보고 솟아 있어 ‘쌍봉’이라 불리게 되었다.
절은 아담하다. 대웅전, 극락전, 요사채, 해탈문 등 달랑 4채로 이루어져 있다. 쌍봉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웅전인데, 3층 목조탑 양식으로 조선 중기에 세워졌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함께 국내에 두 개밖에 없다고 한다. 지금의 것은 1984년 불엔 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철감선사탑과 탑비(국보 제57호, 제58호)도 눈여겨볼 것. 철감선사는 신라 말기의 고승으로, 탑은 그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868년에 세워졌다. 이 탑은 통일신라 후기 석탑 양식을 대표하며, 단정한 비례와 균형감이 뛰어나다. 특히 석사자상(石獅子像)이 네 모서리를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장엄하면서도 생동감이 있다. 옆에 서 있는 철감선사탑비는 신라 명필 김생의 필체를 잇는 유려한 서체로 유명하다. 탑비의 거북받침은 웅장하고 사실적인 조각미를 보여주며, 머릿돌의 용 문양 또한 정교하다.
(위에서부터)동복천의 왕버들, 가을 분위기 물씬한 연둔리 숲정이
화순 가을 여행은 동복면 연둔리 ‘숲정이’로 이어진다. 숲정이는 마을 근처의 숲을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말. 어감도 예뻐서 자꾸 발음해보고 싶어진다. 연둔리 숲정이는 500년 전 마을이 만들어지면서 가꿔온 마을 숲으로 지금까지도 잘 보존되고 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동복천을 따라 왕버들, 느티나무, 서어나무, 팽나무 등 200여 그루가 길게 늘어선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밑동이 굵은 왕버들은 마을이 형성될 시기에 심어진 것이다. 하천을 따라 천천히 걸어도 보고, 벤치에 앉아 흐르는 강물과 숲정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2002년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마을 숲’ 부문 공존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야사리 느티나무도 찾아보자. 이서 커뮤니티센터 앞에 자리하고 있다. 화순군 기념물 제235호로 높이가 35m에 달한다. 마을과 함께 500년 세월을 간직한 노거수다. 지금은 폐교가 된 이서분교가 들어서 운동장을 만들 때도 이 나무로 보호했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한 그루로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두 그루가 사이 좋게 서 있다. 100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 조선 성종 때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다. 나라에 화가 있을 때는 우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낸다.
야사리 느티나무
느티나무 아래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집으로 가는 길에 오른다. 다시 카페의 창가가 떠올랐다. 햇살이 화분을 스치고 천천히 사라지던 그 오후처럼, 운주사의 석불들도 그렇게 세월을 견디며 앉아 있었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은 늙지만, 그 미소는 변하지 않는다.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고, 돌부처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가 다시 사라졌다. 누군가는 기적을 바라고, 누군가는 위로를 얻으러 이곳을 찾겠지만, 정작 부처들은 아무 말이 없다. 그저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뿐이다.
쌍봉사의 탑도, 숲정이의 나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제자리를 지키며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견뎌낸다. 그 단순함이야말로 삶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다 이룩하지 못해도 그 나름대로 빛난다.
나는 가을의 화순에서 즐겁고 아름다운 가을을 보냈다. 그럼 됐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든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나는 요즘 자주 ‘서른 살 남자는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가 들어야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란 게 분명 있다’라는 생각을 한다.
화순 여행 정보
붕순이팥죽칼국수와 화성식육식당 생고기
아이들과 함께 갔다면 화순 효산리와 대신리 지석묘군(사적 410호)를 추천한다. 국내 최대 규모 고인돌 유적지이자, 무등산권 세계지질공원을 대표하는 지질 명소다. 고인돌 596기가 분포한 이곳에는 덮개돌을 뗀 채석장이 있어 채석과 운반 등 고인돌 축조 과정을 살펴보기 좋다. 야사리 느티나무 건너편에 ‘누룩꽃이 핀다’라는 빵집이 자리하고 있다. 막걸리로 빚은 누룩으로 스물아홉 시간 저온에서 발효해 빵을 만든다. 메뉴로는 통밀빵, 올리브치즈빵, 소보루빵, 단팥빵이 있다. 설탕을 전혀 넣지 않기 때문에 단맛이 없으며 누룩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술빵 같은 냄새가 약간 난다.
화순전통시장 근처에 위치한 ‘봉순이팥죽칼국수’에서는 전라도식 팥 칼국수를 맛볼 수 있다. 걸쭉한 팥죽 속에 쫄깃한 칼국수가 듬뿍 담겨 있다. ‘화성식육식당’은 생고기와 머릿고기로 만든 편육이 유명한 집이다. 두툼하게 썬 생 소고기를 마늘로 양념한 참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오케이사슴목장가든’에서는 참숯을 이용해 산닭을 구워 먹을 수 있다. 산닭은 모두 농장에서 직접 키운 것으로, 노릇노릇 구워낸 닭고기는 담백하면서도 쫄깃하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00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