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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그녀에게 미래는 모험이라기보다 수용에 가까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삶이 어떤 식으로든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살아온 사학과 대학생 홍석주는 문예 동아리 선배의 조언으로 국문학과 창작 수업을 청강하기로 한다. 청강생을 받지 않는다는 조교의 냉담한 반응에 석주는 평소의 소극적인 성격과 달리 직접 강사를 찾아간다.
작가인 강사가 "제 수업에는 청강생을 받지 않는다"며 거절하자, 석주는 저도 모르게 "저, 저 교수님 책을 다 읽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매달린다. 그러자 강사는 마음을 바꿔 청강을 허락한다.
8호선 연장 석주는 청강을 위해 수업 계획서에 적힌 책들을 순서대로 읽어나간다. 그러면서 자신이 문학을 단순히 취미 정도로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따금 그녀는 다음 단어로, 다음 문단으로, 다음 페이지로 숨 가쁘게 달음질치려는 자신을 다독이듯 창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면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거라 여겼던, 감히 자신이 채권고금리 발을 들여놓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그 세계가 너그럽고 인자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최근 출간된 소설가 김혜진(42)의 장편 '오직 그녀의 것'(문학동네)은 1990년대 초 교열자로 출판인 생활을 시작해 일생을 문학 편집자로 살아가는 여성 석주의 삶을 조명했다.
이 소설은 늘 수동적이었고 부모님의 뜻에 간이사업자 따라 진로와 미래를 결정해왔던 석주가 문학에 경도되어 편집자의 길을 걷게 되고 차츰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냈다.
지독할 정도로 엄격하고 깐깐한 선배 편집자, 물류창고에 발생한 화재, 선정적인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진 작가 등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사건이 석주를 중심으로 벌어져 눈길을 끈다.
일반적 습득공고 방법 문학에 경도되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한 길을 걷는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문학 교수로 평생을 살아가는 과정을 담은 미국 소설 '스토너'를 연상케 한다.
특히 이 소설은 이제 막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한 1990년대 타자기로 편집 작업을 하고 활판 인쇄로 책을 제작하던 시대적 환경을 잘 표현했다.
대영저축은행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추천사에 "출판계 '응답하라 1988' 같은 이 소설은 출판의 탁월한 세부 묘사로 근원적인 그리움을 불러온다"며 "홍석주는 담담한 듯 단단한 직업인의 균형 감각과 숙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준다"고 썼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혜진은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축복을 비는 마음',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경청' 등을 펴냈다.
소외된 이들,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본다는 평을 받으며 젊은작가상, 김승옥문학상, 대산문학상, 신동엽문학상 등을 받았다.
2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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