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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가도 그의 시는 남아서 누군가에게 읽힌다. 살다간 흔적을 이렇듯 아름답게 남긴 것은 지극히 복된 일이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떠오르는 시조가 초정 김상옥의 「가을 취득세 뜨락에 서서」다. 일흔이 넘어 쓴 작품으로 알고 있다. 초정은 명편 시조를 다수 남겼다. 불세출의 작가다. 예술적 안목이 뛰어나서 시서화에 일가를 이룬 시인이다. 서너 차례 만나 가르침을 받은 바 있어 늘 잊지 않고 있다. 시업에 철두철미했고, 성정은 대쪽 같았다. 초정으로부터 칭찬을 듣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좋은 작품을 쓴 후학에게 u보금자리론 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가을 뜨락에 서서」는 감칠 맛 나는 수사와 생생한 비유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무나 할 수 없는 미학적 직조다. 거침없는 진술과 이채로운 화법으로 비단 자락 같은 시의 분위기에 온몸이 휘감기게 된다. 섬세한 감각과 유려한 필치로 한 폭의 가을 정경을 묘파하고 있다. 첫수 이마에 마구 짓이 광역자치단체 기던 그 독한 꽃물도 몸에 둘렀던 그 짙고 어두운 그늘도 이제는 다 벗을 수밖에 벗을 수밖에, 라는 대목은 이미 달관의 경지다.
가을에 화자는 채어올린 물고기 그 살비린 숨 가쁨을 느끼면서 낱낱이 비눌쳐 낸 지친 뜨락에 나서고 있다. 그때 보아라, 라면서 시선을 집중시켜 혼령마저 적시는 순금의 소나기, 라는 황홀한 장면을 제시한다. 이때 대출상환방식 은행나무잎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들 올올 떨며 싸늘한 잔을 서로 대질러 찢긴 남루 자락 휘몰아 질펀한 자리에서 이제는 쉽게 슬플래도 슬퍼질 수가 없음을 절감한다.
끝수는 더욱 인상적이다. 허구헌 나날 눈 익힌 길은 다시 서툴고 더는 내려설 수 없는 그 어느 돌계단 앞까지 이른 화자는 본다. 또 뉘가 낭 합작회사 자한 인육(印肉)으로 아픔을 찍고 있는 것을. 끝수 종장에 등장한 인육(印肉)이라는 시어는 이 작품에서 굉장한 의미와 울림을 안기고 있다.
이처럼 「가을 뜨락에 서서」는 계절의 변화 속에서 느끼는 정서를 담고 있지만, 그 속에 인생살이의 깊이와 넓이가 온축되어 있어서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가을의 슬픔을 내밀히 다독여주는 절창이다.이정환(시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