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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원규 작가가 생성형 인공지능 챗지피티(GPT)에 “만물 트럭을 운전하는 40대 초반 한국 여성을 유화풍 스타일의 그림 이미지로 부탁해”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한국 나이로 마흔두살이 된 정선애(가명)는 전형적인 경력단절녀다. 일반적인 눈으로 볼 땐 분명 그랬다.
그녀의 이력을 간단히 살피면 다음과 같다. 그녀는 수도권 4년제 대학에서 행정을 공부하고, 여러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1HTS시스템
00여군데의 기업에 이력서를 넣어보고, 그 와중에 공무원 수험 준비를 위해 서울 노량진 학원에 다닌 끝에 주민센터에 9급 공무원으로 취직했는데,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상대적으로 박봉이라 인식되어도 공무원이란 직업은 여전히 안정적인 직업군에 속했다. 더욱이 공무원은 한국 사회에서 고학력 인플레가 심한 4년제 대학을 나온 20대 여성에게 심리적, 알라딘다운로드
경제적으로 높은 안정감을 제공하는 직업이었다.
공무원이 된 이후, 선애는 충남 지역 어딘가에 있는 주민센터에 취업해 민원 처리를 담당하는 업무로 공무원 일을 시작했다. 그즈음, 소개팅으로 만난 비슷한 또래의 그 역시 공무원이던 남자와 만나 미래를 약속하고, 결혼했다.
딩크족이 아니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육아 계획을 세운 두 RSI
부부는 아들 둘을 얻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기쁨도 누렸다. 육아는 물론 힘들었다. 임신과 출산을 두번 반복하면서 그에 맞는 출산 휴가를 가졌고, 나름 최적화된 복리 후생의 혜택을 입었다고 생각해도 이후 육아를 감당하는 일은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그 와중, 지역을 일정 기간 순회해야 할 의무 아닌 의무를 진 남편의 지역 이동으로 인해 주민센터 지역 이직 신청증권스마트폰이벤트
도 뒤따라야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겪던 그녀는 서서히 지쳐갔다. 은연중에 스며든, 아내라면, 자식이라면, 자신의 직장을 따라가야 한다는 남편의 생각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자신의 의견과 속마음을 쉽게 이해하지 않으려는 남편의 무정함이 쌓일수록 선애가 스스로 설 수 있는 곳은 좁아져만 갔다.
남편과의 말다툼이 심해졌파세코 주식
다. 그러자 그녀의 심리적 공황과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다. 자녀를 돌보는 일은 기쁘고 보람차기도 했지만, 반대로 특유의 전형적인 엄마의 역할을 요구하는 시선이나 주위의 편견에 지쳐만 갔다. 이러한 그녀가 처한 직장인 주민센터에서의 민원 역시 부담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일 어떤 민원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그녀를 초조하게 했다. 반말과 존대를 섞어가며 말하는 이들, 내가 주는 세금으로 너희 공무원들이 살아간다는 식의 무례한 표현들, 주민센터 일이 다 그렇고 그런 거니 당신이 참고 견디라는 말들, 거기에 덧붙여 당신들은 자리만 뭉개고 있으면 매월 말일, 국가에서 고정적으로 챙겨주는 월급을 받아먹지 않느냐는 식의 사회의 시각과 인식이 그녀를 스스로 고립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중증 우울증, 이것이 취업과 결혼, 출산과 육아로 채워진 결혼 생활 7년 끝에 얻게 된 그녀의 서글픈 훈장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그것 하나 못 견디냐는 훈장, 결국, 그녀는 그 훈장을 끌어안고 이혼을 결심했다. 극심해진 우울증과 정서적 고립을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건 살기 위한 필사적인 선택이었다.
선애는 이혼과 홀로서기의 삶이 시작된 순간과 더불어 주민센터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자신의 우울증으로 인해 자녀들에게 피해가 갈까 싶은 마음에 양육 역시 남편에게 부탁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녀의 경력은 그렇게 단절되었고, 그러다 보니 당장 먹고살 길이 막혔다. 주민센터의 경력을 일반 기업에 쉽게 적용할 길은 없었다.
모든 게 쉽지 않았다. 삶의 절망이 중첩되고, 결국, 죽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가진 순간, 뭔가가 찾아왔다. 그녀는 문득 자기 지갑에 습관처럼 꽂혀 있는 면허증을 꺼내보았다. 1종 보통 운전면허증, 작은 트럭을 몰고,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클러치와 기어 변경을 해가며 주행시험을 치르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선애의 나이, 한국 나이로 마흔이었다. 옛말로 불혹으로 일컫던 마흔에 그녀에게 새로운 일이 찾아온 것이다.
1톤 트럭에 그렇게 많은 물품의 잡화가 담길 줄은 몰랐다. 가진 돈이라고는 월세 보증금이 전부였던 그녀가 보증금으로 받은 거의 모든 돈으로 구매한 게 바로 중고로 된 1톤 트럭과 그 트럭의 적재 공간을 채운 잡화였다.
그녀가 옛말로 만물상으로 불리는 만물 트럭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해 낸 건 더는 생각할 수 있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던 한계상황에 섬광처럼 찾아온 아이디어였다. 1종 보통 면허증 한장을 만지작거리는 것에서 시작된 만물 트럭 운영 발상은 장기간 지속된 우울증을 벗어나고픈 절박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결심한 이후, 이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이 막연하고 다소 답답할 거란 우려가 그녀의 실행을 망설이게 했다. 하지만 막상 뛰어들고 보니 달랐다. 중고 트럭을 구매한 뒤의 과정은 오히려 수월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포털 사이트의 ‘물어보세요’ 같은 코너를 이용해 생필품을 도매로 매입하는 방법은 친절하고 수월하기까지 했다.



정선애씨가 모는 만물트럭. 본인 제공


제법 순조롭게 그녀는 자신의 남은 재산 전부인 서울시 아파트의 월세 보증금으로 얻은 만물 트럭을 타고 서울을 떠났다.
서울을 벗어날 때, 선애는 오히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걸 새로 시작할 때 찾아오는 막연함과 불안은 있었지만,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던 그녀에겐 오히려 그 막연함마저 설레는 마음으로 전환되었다. 트럭의 차창 문을 활짝 열고 서울을 벗어나 경기 안성으로까지 내려가는 국도 위에서 그녀는 자신의 삶이 마냥 비극이고, 처치 곤란한 것이며, 슬픔으로 얼룩진 것이란 생각을 잠시 내려놓거나 유예해도 괜찮을 거란, 그 역시 막연한 희망과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흔의 나이, 서울 출생인 여성이 정확한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대형 상점이 없는 시골 오지로 만물 트럭을 운행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웠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 일을 선택한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변화는 하루하루의 밤을 어떻게 보내는지 하는 일이었다.
그녀는 첫날 밤부터 시골 여관이나 모텔에서의 하루를 허락하지 않았다. 경북 문경까지 내려온 그녀는 1톤 트럭의 뒤 칸, 적재 공간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 이른바 풍찬노숙을 닮은 트럭에서의 하룻밤은 오히려 수월했다. 장롱면허 수준으로 거의 운전을 하지 않던 그녀는 면허 시험 이후로 거의 처음 몰아보는 트럭을 타고 서울을 떠나 문경까지 내려왔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한 결과, 낮 1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밤 9시가 다 되어서야 문경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트럭에서의 하룻밤은 별다른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이뤄졌다. 그녀는 밀려드는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듯 트럭의 공간 한곳에 혹시 몰라 준비한 담요를 깔아 놓고 몸을 한껏 웅크리고 정신없이 잠들었다. 생전 처음 와보는 도로 옆 공터에 주차해놓은 사실에 관한 무서움이나 혹시라도 침입자가 들어오진 않을까 하는 생각을 틈타 엄습해 오는 공포도 그녀의 피로 앞에선 스며들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잠이 들고 일어난 새벽, 선애의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또렷했다. 길 위에서의 하룻밤이 평소 알고 있던 것보다 두렵고 무서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주기에 충분했다. 제아무리 밤의 어둠이 깊고 끝없는 구렁처럼 계속될 것만 같아도 결국, 자연의 섭리로 어둠이 물러가고 새벽 여명은 떠올랐다. 그것은 그녀에게 어떤 확신을 선사했다.
그 첫날의 경험은 그녀에게 이후, 대한민국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생필품을 판매하는 만물 트럭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소중한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마흔살에 시작한 선애의 만물 트럭 일은 2년이 지나 마흔둘이 된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사이 잠자리 역시 조금씩 편리성에 있어서 발전을 거듭했다. 2년의 기간 동안 그녀의 만물 트럭은 나름 캠핑카를 닮은 숙박 공간으로 진화해갔다. 일주일에 3~4일은 길 위, 트럭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익숙해졌다. 물론 완벽히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는 환경은 없지만, 길 위에서 보내는 하룻밤 하룻밤이 그녀에겐 위험하고 두려운 시간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선애에게 만물 트럭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생각하게 해주는 기회가 되었다. 힘들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주민센터에서 일할 땐 사람을 만나는 일이 무섭기만 했다. 민원인이 다가오면 오늘도 어떤 변수가 생겨 자신을 무섭게 하고, 자신의 자존감을 무정하게 할퀴고 떠날까 두렵기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육아를 고통의 시간으로 생각하고, 이혼의 과정까지 겪고 난 뒤에 찾아온 대인관계의 어려움은 이전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물 트럭 일을 시작하고 난 뒤, 그녀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편해졌다. 대형 상점이나 가게가 없는 시골 마을을 찾아가는 일에 남다른 낭만이나 특별한 의미 부여는 없었다.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기대하는 푸근함이나 정겨움과 거리가 멀 때도 많았다. 오히려 적반하장처럼 왜 이렇게 만물 트럭에 필요한 물품이 없냐고 투정 부리거나 짜증 내는 어르신들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선애는 그런 시골 어르신들의 투정이나 짜증이 더는 무섭지 않았다. 그들의 불만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세상을 살면서 겪게 되는 솔직한 이기심, 때론 잊고 지나칠 수도 있는 배려의 부재 등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생겼다.
어떤 과정과 깨달음이 생겨 그녀에게 일종의 강한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논리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이제 더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울증도 깊지 않아졌다는 점이었다. 한번에 온전하고 획기적인 치유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조금씩 좋아진다는 점이었다. 비록 가진 재산 전부를 털어 투자한 만큼의 높은 수익이나, 전국을 떠도는 유랑의 품만큼의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 않더라도, 그녀의 만물 트럭은 여전히 아직도 생필품 구하는 일이 어렵기만 한 시골 마을의 경우 필요한 도움의 손길, 상생하는 손길인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녀가 적자를 간신히 면하고 있는 만물 트럭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길 위에서 일하는 순간만큼은 살아 있음을 실감했고, 그 생의 희열은 분명한 보람으로 다가왔다.
만물 트럭의 일은 그 어떤 다른 일을 통해 얻는 성취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희열을 선사한 것이었다. 그녀, 정선애에게는 분명 그랬다.




주원규 l ‘월급 사실주의’ 동인. 장편소설 ‘메이드 인 강남’, ‘열외인종 잔혹사’, ‘서초동 리그’를 썼다.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