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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랑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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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10:08
[나호선 기자]
"오빠, 이 노래 한 번 들어봐. 오빠 책이랑 비슷해!"
아내 덕에 며칠째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을 반복해 듣고 있다. 불을 피워낸 인류는 원초적 사랑을 꺼뜨리고 말았다. 순수한 사랑이 '멸종위기종'까지 내몰린 현실을 노래하는데, 곡조가 밝고 경쾌하다. 이 찬란한 장송가는 '아이러니의 힘'을 아는 자만이 쓸 수 있는 노래다. 그리고 내가 쓴 책들과 매우 닮은 노래다.
줄어든 사랑의 서식지
무료 릴게임
▲ 책표지
ⓒ 여문책
사랑의 집단실종이 어떤 생애주기를 갖게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 시작도 하기 전에 연애할 마음을 닫아버린 친구들이 많았다. (집에서주식투자
…) 마치 사랑에 어떤 높다란 '면허'같은 게 있어서, 연애라는 것을 두고 면허를 발급받은 소수의 독무대처럼 바라보는 것에 가까웠다. p.237-238
사랑에 자격을 따지고 자격지심을 느끼게 되는 흐름엔 누구도 예외가 없다. p.239
나는 이 사회에 사랑 대신 혐오가 판치는밤투
이유를 실제로 사랑하는 이들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으로 꼽는다. p.240
2022년 3월, 나는 에세이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을 냈다. 연애가 고비용 스펙처럼 되어버린 시대에서 불황기 구직과 닮은 이 시대 청년의 사랑을 '산업재해'에 빗댔다. 갈수록 척박해지는 사랑의 서식지에 관한 증언이었다(주식공시
관련 기사 : 불황기 구직과 닮은 연애 결핍 시대의 청춘 이야기).
그리고 지난 8월, 3년 만에 후속작을 냈다. 책 제목은 바로 <부패하지 않는 사랑의 힘>이다. 부제는 '축소 시대에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 작은 사랑의 빙하기와 같은 시기를 견뎌나갈 '종'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이 책은 PC 릴게임
로맨스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부패해버린 정치에 관한 비판적 논평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축소된 시대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종(種)의 다짐에 가깝다.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의 당혹감을 기억한다. 줄어드는 것은 꿀벌만이 아니었으니까. 외동으로 태어난 인간들이 살아갈 세계에서는 인간의 가치가 줄어들고, 방 크기도 줄어들고, 집중력과 인내심이 재생 시간과 함께 줄어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긴 글을 참아주지 않아, 얇아진 책은 단문만 품을 수 있었다. 새로운 노래가 드문드문 나오는 것처럼 사람도 드문드문 태어났다. p.257
통계가 비관을 쏟아내고, 언론이 위기와 절벽을 말할 때마다 내가 발을 디딜 땅도 깎여나가는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이 시대를 두고, 모든 것이 쪼그라드는 축소 시대라고 말할 것이다. p.258
인구절벽은 통계의 비명소리지만, 한 개인에게는 인간 관계와 삶의 범위 축소로 다가온다. 외동으로 태어난 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이 깔려있다. 개인주의는 경쟁 압력에 지쳐 고립주의로 굴절되고, 인간의 가치는 인공지능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축소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 '상상된 평균'을 바라보며 서로를 괴롭게 한다.
이 책에는 그런 시대상이 에피소드에 녹아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랜선을 유랑하는 원룸 인간들의 비좁은 세상, 알뜰해진 사랑의 용량, 가짜 우정부터 고립주의가 되어버린 개인주의, 민주주의의 축소, 예측 가능성이 붕괴한 사회 속 위선의 위상, 안전 지향적인 소통 방식, 중독이 숨긴 취미의 빈곤 등 보고 배울 형과 어른이 부족한 이들의 고민에 대해 썼다.
동시에 서식지가 줄어들면 종은 버티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씨앗처럼 몸을 낮춰 언젠가 올 봄을 기다린다. <부패하지 않는 사랑의 힘>은 바로 그 씨앗의 힘을 담았다. 줄어드는 시대 속에서도 단종의 압박을 견뎌내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피워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정속 재생의 마음으로
배속이 침투하지 못하는 몇 안되는 영역이 바로 음악이구나! p.11
분 단위로 재촉하는 배달, 하루를 넘기지 않는 배송. 지금처럼 모든 것을 과하게 재촉하는 세상에서 온전한 속도로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은 아마 음악이 유일할 것이다. p.14
배속 인간은 오늘도 음악 앞에서 속죄한다. 기억은 축약되더라도 삶은 배속할 수 없다. 우리는 인생에서 구간 뛰어넘기를 누를 수 없다. 소설을 읽지 못하는 몸도, 배속 없이 영상을 보지 못하는 몸도 있지만, 모든 인생은 다 정속 재생의 결과니까. 음악이 가르쳐준 속도를 기억하며, 내 삶의 온전한 속도를 지켜야겠다. p.15
'멸종위기사랑'이 밝은 톤으로 장송곡을 부른 것처럼, 나 역시 무거운 주제를 경쾌한 톤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경쾌하다고 해서 빠르지는 않다. 축소 시대 역시 우리는 구간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배속으로 지나갈 수도 없다. 결국 우리가 제 속도로 겪어내야 한다.
이 책의 후기를 쓰는데 한 달도 더 걸렸다. 챗GPT가 나보다 잘 쓰는 시대는 곧 다가올 것이고, 내가 무엇을 한들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독자들도 인공지능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을 구분하지 못해 책에 돈을 쓰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을 것이다.
순수한 책이 종말을 앞둔 이 시대 에세이스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인공지능의 조력 없이 내 손으로 쓴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작이 될 수도 있는 이 책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다하고 싶었다. 축소 시대를 내질러 가는 '배속'이 아닌, 정속 재생의 마음으로 버티며 겪어내는 것, 이것이 <부패하지 않는 사랑의 힘>이 갖는 마지막 속도다.
덧붙이는 글
"오빠, 이 노래 한 번 들어봐. 오빠 책이랑 비슷해!"
아내 덕에 며칠째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을 반복해 듣고 있다. 불을 피워낸 인류는 원초적 사랑을 꺼뜨리고 말았다. 순수한 사랑이 '멸종위기종'까지 내몰린 현실을 노래하는데, 곡조가 밝고 경쾌하다. 이 찬란한 장송가는 '아이러니의 힘'을 아는 자만이 쓸 수 있는 노래다. 그리고 내가 쓴 책들과 매우 닮은 노래다.
줄어든 사랑의 서식지
무료 릴게임
▲ 책표지
ⓒ 여문책
사랑의 집단실종이 어떤 생애주기를 갖게 되는지도 알게 되었다. (…) 시작도 하기 전에 연애할 마음을 닫아버린 친구들이 많았다. (집에서주식투자
…) 마치 사랑에 어떤 높다란 '면허'같은 게 있어서, 연애라는 것을 두고 면허를 발급받은 소수의 독무대처럼 바라보는 것에 가까웠다. p.237-238
사랑에 자격을 따지고 자격지심을 느끼게 되는 흐름엔 누구도 예외가 없다. p.239
나는 이 사회에 사랑 대신 혐오가 판치는밤투
이유를 실제로 사랑하는 이들의 숫자가 줄었기 때문으로 꼽는다. p.240
2022년 3월, 나는 에세이 <연애 결핍 시대의 증언>을 냈다. 연애가 고비용 스펙처럼 되어버린 시대에서 불황기 구직과 닮은 이 시대 청년의 사랑을 '산업재해'에 빗댔다. 갈수록 척박해지는 사랑의 서식지에 관한 증언이었다(주식공시
관련 기사 : 불황기 구직과 닮은 연애 결핍 시대의 청춘 이야기).
그리고 지난 8월, 3년 만에 후속작을 냈다. 책 제목은 바로 <부패하지 않는 사랑의 힘>이다. 부제는 '축소 시대에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 작은 사랑의 빙하기와 같은 시기를 견뎌나갈 '종'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래서 이 책은 PC 릴게임
로맨스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부패해버린 정치에 관한 비판적 논평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축소된 시대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려는 종(種)의 다짐에 가깝다.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의 당혹감을 기억한다. 줄어드는 것은 꿀벌만이 아니었으니까. 외동으로 태어난 인간들이 살아갈 세계에서는 인간의 가치가 줄어들고, 방 크기도 줄어들고, 집중력과 인내심이 재생 시간과 함께 줄어들고 있었다. 사람들은 긴 글을 참아주지 않아, 얇아진 책은 단문만 품을 수 있었다. 새로운 노래가 드문드문 나오는 것처럼 사람도 드문드문 태어났다. p.257
통계가 비관을 쏟아내고, 언론이 위기와 절벽을 말할 때마다 내가 발을 디딜 땅도 깎여나가는 위태롭게만 느껴졌다. 아마도 이 시대를 두고, 모든 것이 쪼그라드는 축소 시대라고 말할 것이다. p.258
인구절벽은 통계의 비명소리지만, 한 개인에게는 인간 관계와 삶의 범위 축소로 다가온다. 외동으로 태어난 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이 깔려있다. 개인주의는 경쟁 압력에 지쳐 고립주의로 굴절되고, 인간의 가치는 인공지능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축소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 '상상된 평균'을 바라보며 서로를 괴롭게 한다.
이 책에는 그런 시대상이 에피소드에 녹아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랜선을 유랑하는 원룸 인간들의 비좁은 세상, 알뜰해진 사랑의 용량, 가짜 우정부터 고립주의가 되어버린 개인주의, 민주주의의 축소, 예측 가능성이 붕괴한 사회 속 위선의 위상, 안전 지향적인 소통 방식, 중독이 숨긴 취미의 빈곤 등 보고 배울 형과 어른이 부족한 이들의 고민에 대해 썼다.
동시에 서식지가 줄어들면 종은 버티는 법을 배운다. 때로는 씨앗처럼 몸을 낮춰 언젠가 올 봄을 기다린다. <부패하지 않는 사랑의 힘>은 바로 그 씨앗의 힘을 담았다. 줄어드는 시대 속에서도 단종의 압박을 견뎌내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피워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정속 재생의 마음으로
배속이 침투하지 못하는 몇 안되는 영역이 바로 음악이구나! p.11
분 단위로 재촉하는 배달, 하루를 넘기지 않는 배송. 지금처럼 모든 것을 과하게 재촉하는 세상에서 온전한 속도로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대하는 것은 아마 음악이 유일할 것이다. p.14
배속 인간은 오늘도 음악 앞에서 속죄한다. 기억은 축약되더라도 삶은 배속할 수 없다. 우리는 인생에서 구간 뛰어넘기를 누를 수 없다. 소설을 읽지 못하는 몸도, 배속 없이 영상을 보지 못하는 몸도 있지만, 모든 인생은 다 정속 재생의 결과니까. 음악이 가르쳐준 속도를 기억하며, 내 삶의 온전한 속도를 지켜야겠다. p.15
'멸종위기사랑'이 밝은 톤으로 장송곡을 부른 것처럼, 나 역시 무거운 주제를 경쾌한 톤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경쾌하다고 해서 빠르지는 않다. 축소 시대 역시 우리는 구간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배속으로 지나갈 수도 없다. 결국 우리가 제 속도로 겪어내야 한다.
이 책의 후기를 쓰는데 한 달도 더 걸렸다. 챗GPT가 나보다 잘 쓰는 시대는 곧 다가올 것이고, 내가 무엇을 한들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독자들도 인공지능의 작품과 인간의 작품을 구분하지 못해 책에 돈을 쓰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을 것이다.
순수한 책이 종말을 앞둔 이 시대 에세이스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인공지능의 조력 없이 내 손으로 쓴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작이 될 수도 있는 이 책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다하고 싶었다. 축소 시대를 내질러 가는 '배속'이 아닌, 정속 재생의 마음으로 버티며 겪어내는 것, 이것이 <부패하지 않는 사랑의 힘>이 갖는 마지막 속도다.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