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부산노동권익센터가 주최한 「2024 제2회 감정·비정규 노동자 수기 공모전」 수상작 중 하나로, 공공기관 민간위탁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의 동의하에 오마이뉴스 게재용으로 일부 편집·구성하였습니다. <기자말>
[부산노동권익센터]
몇 년 전, 제가 근무하는 휴게공간에 친구가 잠깐 들렀습니다. 그때, 제가 물건을 가지러 간 찰나에 친구는 다른게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친구는 대뜸 "여기가 쉬는 공간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전 물건을 챙기느라 친구의 표정을 보지 못 했습니다. 친구는 휴게실을 이곳저곳을 위아래
바다이야기오리지널 로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 휴게실 전경 CHAT GPT로 제작한 일러스트입니다.
야마토게임예시ⓒ 부산노동권익센터
저는 휴게실의 공간에 익숙해져 뭐가 잘못된 건지 알지 못했습니다. 친밀감을 풍기던 휴게실이 순간적으로 낯설게 다가왔습니다. 저의 휴게공간은 샌드위치 패널로 가려져 있습니다. 그 장
사이다쿨접속방법 소를 세 등분하여 각기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간의 양쪽은 창고로 쓰고 있으며, 그 중간을 직원 휴게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저와 동료들은 그 작은 공간을 애지중지합니다. 그곳에서 점심과 간식도 먹고 잠깐이나마 휴식을 취합니다. 패널 너머에는 먼지와 소음이 가득합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쿵하고 패널 벽에 부딪히
릴게임한국 면, 휴게실 안에서는 짧은 지진이 일어납니다. 비좁고 시끄러운 공간이지만 순번을 정해가며 청소도 합니다.
다만, 열악함을 웃음으로 승화시킬 때도 있습니다. 휴게실 안에는 냉난방시설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여름의 기차역 전체에 냉방시설을 가동하여 줍니다. 냉방배관이 휴게실의 한 귀퉁이를 지나갑니다. 그 귀퉁이에 손이나 몸을 대고 있으면 몸의
황금성릴게임사이트 열기가 조금이나마 식는 기분이 듭니다.
하나뿐인 휴게실 내의 창문을 열면 창문 밖 천장으로부터 에어컨 바람이 조금씩 휴게공간으로 들어오기도 합니다. 곁불 대신 곁냉방입니다. 대신, 먼지와 소음도 같이 들이게 됩니다.
어느 날은 동료가 제게 물었습니다. "혹시 휴게실 바닥에 누워있으면 전기가 통하지 않아요? 여기에 누워있으면 몸이 찌릿찌릿하면서 전기가 통하는 게 느껴져!"
전 생각하기를 "맞아, 직원 한 사람이 하루에 손님 7백 명 이상을 응대하고 잠시 누우면 전기가 느껴지는 게 이상하진 않지". 그런데 갑자기 기차역 내에 적힌 주의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특별고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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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고압, 전기위험 CHAT GPT로 제작한 일러스트
ⓒ 부산노동권익센텁
기차역 1층에는 기차 선로가 있습니다. 선로의 천장에는 고압선이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휴게실은 2층에 있으니, 휴게실 바닥과 고압선은 가깝게 붙어있습니다. 휴게실 바닥 바로 아래에는 고압선이 위치해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내 몸 가까이는 전기장판이 있으니 고압선을 전기장판이 막아줄 거라 혼자 믿고 싶습니다.
제 친구의 놀란 표정을 보기 전에는 회사가 휴게공간을 제공해준다는 것에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표정과 간단한 질문으로 저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기차역 손님분들은 기차 문의를 많이 하십니다. 세 걸음만 움직이면 기차역에 관해 공식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손님 분은 눈앞에 보이는 곳에 먼저 찾아가서 질문을 합니다. 기차 관련 질문의 대부분을 저희가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손님 분들은 기차역에 있으면서 왜 기차 민원 처리가 되지 않는지 화를 내는 분이 많습니다.
제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관한 항의를 반복적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런 사이 손님 분들에게 친절히 대하고 싶은 저의 마음은 반대의 행동을 보이게 됩니다. 그 작은 순간들이 모여서 저의 표정은 무표정해집니다. 그리고는 조금씩 방어적인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저의 변화된 태도에 가장 실망을 하는 건 저 자신입니다.
손님을 친절히 응대하고 싶은 마음은 매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업무 처리를 요구하는 손님을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면 감정의 분노에 휩싸이게 됩니다. 퇴근 후, 회사에서 느낀 억울한 감정의 화살이 가족을 향하게 됩니다.
손님과의 마찰만으로도 벅찬 시기에 새로운 민원이 등장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민원의 표적이 불분명하였습니다. 민원을 접수한 시청은 대상자 색출을 벌였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 모두가 "전 아니에요"를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먼저 목소리를 낸 곳은 기차역입니다. 기차역에서는 자신들은 범인이 아니니 개선의 책무가 없음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기차역에서 자신들은 범인이 아닐 뿐더러 저희가 잘못이 있다는 문서를 작성하여 시청에 보냈습니다. 결말은 싱겁게 끝이 났습니다. 범인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다음부터 이런 민원과 유사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서비스교육을 받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범인이 명확하지 않으니 교육을 앞당겨 시행한다는 일정 조율이 갑자기 이루어졌습니다.
민간위탁 신분을 상기시킨 사건이였습니다. 원청인 시청, 수탁업체인 회사 그리고 근로장소인 기차역의 꾸짖음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 다음은 노동자와 노동자 간의 갈등입니다. 매일 얼굴을 보던 다른 회사 직원이 잘못은 저희 쪽에 있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보고서는 원청인 시청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곧이어 민간위탁을 맡은 저희 회사는 시청과 기차역에 사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누군가의 잘못인지도 모르지만 연신 고개를 숙이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동료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손님을 상대하는 것에도 주눅이 들면서 본인 자신에 대한 의심이 피어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손님에게 받은 상처, 회사의 압박으로 힘든 것인지 본인의 성격이 나약한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투명해 보이던 저희의 존재가 드러났습니다. 업무처리를 하다 문제가 생겨 탓할 곳이 생기면 저희가 필요해집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습니다. "업무환경 구축은 현장과 동떨어지게 하면서 왜 문제의 탓은 현장의 근로자에게 향하는 걸까?". 전 그 대답을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민간위탁'.
회사 동료들도 자신의 하찮음을 회사에서 느낍니다. 그러면 혼자서 울거나, 뭔가를 먹거나 아니면 우울한 날들이 지속되는 방법으로 마음의 위로를 찾고자 합니다. 하루 근무직원은 2~3명임에도 일일 방문객이 약 2000명을 가뿐히 넘는 날이 4월부터 11월까지 이어집니다. 그럼에도 원청에서는 인력축소를 요구합니다. 위탁은 힘든 일을 값싸게 하는 의미라는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감정적 어려움과 함께 고용불안도 있습니다. 3년마다 민간위탁으로 현재의 업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회사가 3년마다 위탁업무를 맡아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위탁업체가 변경됨으로써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위협은 매일 일어납니다.
현재는 무기계약직이라는 이름으로 근무를 해온 지 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든 해고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은 전 직원들 마음속에 퍼져있습니다. 모두가 가장 바라는 점은 고용안정입니다. 그러나 위탁이라는 구조 아래에서는 위탁계약기간만 안정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매년 해고 통보를 받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무기력함과 언젠가는 해고통보가 나에게도 올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해고를 자행하는 측과 해고를 당하는 사람 그리고 그걸 보고 있는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전쟁을 수행한 병사의 정신적 충격과 관련된 기사가 떠오릅니다. 전쟁지와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무기를 투하한 병사보다는 격전지에서 무기를 직접 사용 한 군인의 충격이 더 심하다 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전 해고라는 측면을 대하는 자세에서 조금 더 감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대학교 졸업 후, 위탁이라는 단어가 무척 생소하였습니다. 같은 일, 같은 공간, 같은 옷을 입고 있으나 위탁 노동자는 주눅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위탁노동자가 아닌 정규직에 대한 환상이 생깁니다.
예전의 저는 젊음이라는 이름과 함께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더 많은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고자 영어를 대학교 전공으로 택하였습니다. 해외경험으로 영어실력으로 높이고 싶었습니다. 저는 다수의 국가 장학제도 및 기업 공모전을 활용하여 해외연수를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젊음이라는 이름보다는 책임이 더 어울립니다.
위탁노동자 신분이 어떤 삶을 꾸려 나갈 수 밖에 없는지 오랜 시간 체험하였습니다. 매 순간 오는 고용불안, 높은 업무강도, 이상한 휴게실,그리고 요구 조건을 말할 수 없는 위치. 덧붙여, 감정노동자가 어떠한지도 체득하였습니다. 본인에 대한 의심, 항상 친절해야 된다는 강박, 거절하기 힘든 입장, 우울 그리고 감정의 화살이 가족에게 향하기 쉬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위탁노동자 신분이 사라지면 안 됩니다. 지금 책임져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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