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날개를 비벼서/ 내는 소리에 가을이 탄다/ 이월인데 타는 가을이라니/ 방 모서리 한 군데서/ 출구를 찾지 못한 벌레 한 마리/ 겨울을 건너왔다/ 벌써 가을에 떠났어야 했는데/ 온몸으로 뱅뱅 돌며 아직도 찾고 있는 출구/ 마음이 헝클어지면/ 계절의 순서도 뒤바뀌는 걸까/ 간다면 봄으로 가야 하는 게 순서거늘/ 시계가 거꾸로 가나/ 내가 거꾸로 가나/ 너를 떠나보내지 못한 내가/ 호피 무늬 목도리 두르고/ 이월인데도 심하게/ 가을을 탄다
『헐렁한 시간』(2018, 그루)
시는 시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매달려 있다. 아니, "이월인데"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릴박스 서성대는 그곳에, 그녀가 산다. 더듬이의 촉수로 예민한 사유를 만지는 고백이 보인다. 조금 쓸쓸한 그리고 우울한 갈색의 언어가, 독특한 음색으로 들린다. 우리의 인생은 어디에서 "날개"를 더 "비벼"야 "가을이" 될까. "너를 떠나보내지 못한 내가", 서쪽 하늘에 물든 저녁노을의 울음소리에 사나 보다. 한낮에는 들리지 않는, 그 밤중의 어둠 속에서 들썩이
야마토연타 는 외로운 소리는 처연하다. 그녀에게 낡은 시간의 흔적은, "이월"의 "방 모서리 한 군데서/ 출구를 찾지 못한" "한 마리" "벌레"가 된다. 입구가 어디인지 모르듯, 아무도 '출구'가 어디인지를 모른다.
안연화(1960~, 경북 봉화 출생)의 「헐렁한 시간」의 "날개와 날개가 서로 부딪혀 내는 소리는 얼마나 쓰리고 아픈 것인가"(김상
릴게임 환 평). 헐렁함은 채워지지 않는 그 어떤 그리움의 행간이다. 니체가 말한 '유예의 순간'이 있고, 삶의 무게와 의미가 다르게 드러나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녀에게 '타는 가을'은, 삶의 가쁜 숨을 몰아쉰 노정이며, 여전히 "찾고 있는 출구"의 은유다. 시간을 "호피 무늬 목도리"로 시각화한 이미지는, 계절의 변화를 통해 인생을 추억하고
바다이야기꽁머니 있다. 자신만의 세계를 찾아 나선 그녀는, 외발을 딛고선 불안의 곡예사라고나 할까. 감정을 극도로 자제하면서도 "거꾸로" 가는 시간을 직시한다. 환유로 점철된 "너"와의 기억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애조가 깊다.
안연화의 「헐렁한 시간」을 읊조리면, 행간의 팽팽한 긴장보다는, 바람에 추엽이 떨어지는 느낌이 왠지 좋다. 차가운 겨울의 촉감
릴게임방법 같은 서성거림과 모호한 시적 감성이 뒤섞인, 그 알 수 없는 맬랑꼴리(Melancholia)가 좋다. 실존에 대한 통찰과 흔들린 존재에 대한 틈 사이에서, 그녀의 시는 노래가 된다. 곱씹는 잠언투의 중얼거림은, 자못 서정에 매몰될 수 있는 '헐렁한' 경계를 밟고 있다. 어쩌면 이 시는 현대인의 실족 같은, 어떤 미끄러진 내면의 바닥이 보인다. 무엇보다 과장이 없는, 갇혀있으면서 또 하나의 창(窓)이 보이는, 그런 그녀만의 아픈 비밀의 정원이 있다.
김동원 (시인·평론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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