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문자를 보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얼마 전 부모님 휴대전화를 바꾸러 통신사 고객센터를 함께 방문했다. 인터넷 접근이 자유로운 사람은 굳이 매장을 방문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노인들은 아무래도 대면 서비스가 훨씬 편리하다. 방문한 매장은 고객서비스 전체를 담당하는 곳이었는데, 방문자 대부분이 노인이었다. 젊은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외국인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금도 오프라인 고객센터는 ‘노인 고객센터’처럼 운영되는 중이고, 앞으로도 대
릴게임 면 서비스는 주로 노인층을 위해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
보조 노동의 확대
내가 방문했던 센터의 직원들은 노인과의 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남성 노인 고객과 젊은 여성 직원이 격렬하게 대화하고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몇 마디를 듣게 됐다. 고객은 이번 달 통신
릴게임온라인 요금이 왜 비싸게 나왔는지를 항의하고, 직원은 지난달 요금이 미납돼서 이번에 두 달 치가 한꺼번에 청구됐다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작은 목소리로는 소통이 어려우니 큰 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는데, 언뜻 보면 직원이 고객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아주 무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직원은 같은 설명을 반복하고, 고객은
릴게임몰 납득할 수 없는지 같은 질문을 계속했다.
한국의 인구 구조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65세 이상 노인인구비율이 20%를 넘어섰다. 국가데이터처 예측에 따르면 10년 후에는 30%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연령이 증가할수록 리터러시(문해력) 수준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2024년에 공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CD)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리터러시는 OECD 평균보다 낮고, 젊은 층과 노인층의 차이는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크다. 노인층의 평균 언어 능력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디지털 리터러시만 문제가 아니다. 일상적인 의사소통, 생활과 건강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해하는 능력 등이 모두 문제다. 병원, 주민센터, 기차역, 고객센터 등
모바일릴게임 대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직원과 노인 고객이 서로 답답해하며 언성을 높이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그 직원들은 친절과 무례 사이에서 미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고객이 가진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통신 요금을 미납하면 다음 달에 연체료가 가산돼 청구된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노인 고객이 있다고 해보자. 이런 사실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노동, 그리고 미납 요금을 처리하는 노동은 성격이 다르다. 물론 실제 업무에서 이 두 가지는 절대 분리될 수 없지만, 성격이 다른 두 가지 노동이 뒤섞여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즉 고객의 이해력, 언어 능력, 판단력 등의 불충분함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고 여기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이 있는데 이는 서비스 자체를 제공하는 노동과 다르다는 말이다.
서비스 소비자나 수혜자의 어려움에 대응하기 위한 이러한 노동을 편의상 ‘보조(assistance)’라고 부르자. 보조 노동이 기존 노동과 구별된다는 점은 제3자가 개입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가진 노인 고객이 젊은 가족과 동행하면, 그의 어려움에 대응하는 것은 고객센터 직원이 아니라 동행한 가족의 몫이 된다. 그런 가족이 없다면 직원이 의사소통 전부를 책임져야 한다. 보조 노동은 제3자에게 이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비스 자체를 제공하는 노동과 구별된다.
앞으로 보조 노동은 급격히 확대될 것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하고 무인 키오스크가 모든 매장을 장악한다고 해도 초고령사회에서 인간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사라질 수는 없고, 거기에는 반드시 보조 노동이 포함될 것이다. 보조 노동은 이미 서비스 노동자의 업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가 노인이 된다고 해도 이런 상황이 자연스레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
서울 종로구 장사동 다시세운광장에 노인들이 앉아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보조 노동과 돌봄 노동
보조 노동은 여러 질문을 제기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누가 부담을 질 것인가?’일 것이다. 공적 영역에서는 당연히 국가 제도가 담당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란 정확히 누구인가? 의사소통이 어려운 노인이 주민센터를 방문했다고 하자. 보조 노동은 일선 공무원의 몫이 된다. 그가 자기 몫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족의 몫으로 넘어간다. 가족이 없다면 그 노인은 제도에서 배제될 위험이 있다.
상품 영역은 좀더 복잡한 질문을 제기한다. 고객은 기업에 보조 노동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충분한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지 않은 노인이 고객센터를 방문했을 때, 직원은 그 고객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가? 명확히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어쨌든 지금의 기업은 일선 직원에게 보조 노동의 부담을 떠맡기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가 보조 노동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으면 이때도 부담은 고객의 가족에게 이전될 것이다. 가족이 없다면 노인 고객은 소비자라는 지위에서도 배제된다.
보조 노동은 넓은 의미의 돌봄 노동과 연속선상에 있으며 비슷한 문제를 공유한다. 어려움을 가진 개인이 시민, 인간, 소비자, 지역 주민, 가족의 일원 등으로서 온전히 살아가려면 돌봄이 필요하다. 이들이 공적 서비스나 상업적 서비스에 접근하려면 보조 노동이 동반돼야 한다. 질병과 장애가 있는 사람만 이러한 노동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하지만 디지털 기기를 다루지 못하고 의사소통 능력이 다소 부족한 노인도 많다. 이들은 무슨 심각한 문제를 가진 것이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커다란 난관을 만나게 된다. 한국에서 사회적 삶을 온전히 누리려면 흔히 생각하는 것 이상의 능력과 조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복지 제도는 여전히 가장 열악한 집단만을 대상으로 인정하고, ‘당장 죽을 정도’가 아닌 어려움은 각자 알아서 처리하라고 요구한다. 이는 결국 일선 노동자나 가족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보조 노동을 정책 대상으로 인정하는 제도가 언젠가는 등장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국가데이터처는 노인인구비율이 2050년에 4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는데, 지금의 제도가 근본적 변화 없이 지속한다면 그때까지 한국사회가 ‘사회’로서 유지될지도 불확실하다.
박이대승 정치철학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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