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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신 정몽주가 태종 이방원 일파에 의해 죽임을 당한 장소로 알려진 ‘선죽교’. 사진 출처 우리역사넷
이문영 역사작가
태종 이방원이 즉위했다. 태종은 스스로 왕위를 쟁취한 인물이다. 조선이라는 새 나라의 건설에도 앞장섰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당시 개경에 남아 가족들을 지켜냈고, 새 왕조 수립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정몽주를 냉정하게 해치웠다. 개국 이후에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건너가 신생 국
체리마스터pc용다운로드 가에 대한 인정을 받아냈다. 이복동생이 세자로 책봉되자 군사를 일으켜 제거했고, 형이 왕좌를 노리며 거병했을 때도 즉각 대응해 무찔렀다.
형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세자가 되는 것에 만족하는 척하며 때를 기다릴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왕위에 올랐다. 태종은 조선의 기틀을 다진 개혁 군주였다. 강력한
알라딘게임 왕권 확립을 위해 6조 직계제를 만들고, 사법권 강화를 위해 의금부를 설치했다. 공신들이 거느리던 사병을 해산시키고 무력을 국왕에게 집중시켰다. 사헌부와 사간원을 강화해 언론의 견제 기능을 활성화했다. 조선을 유지하고 움직이게 한 제도적 기반은 태종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그 유산을 다음 군주인 세종이 꽃피웠다.
태종은 후대를 위해 놀랍도
바다이야기디시 록 냉혹한 일을 해치우기도 했다. 세종의 외가이자 자신의 처가인 여흥 민씨 집안을 숙청한 것이다. 여흥 민씨는 고려 때부터 고위 관료를 누차에 걸쳐서 배출한 명문 거족이었다. 이성계가 권력을 잡게 되는 위화도 회군 시절 태종의 장인인 민제는 이성계의 손을 들어주었고 이후 이성계와 정치적 행보를 같이했다. 하지만 민제는 개국공신에 책봉되지 못했고, 그의 동생
릴게임가입머니 민개는 개국 당시 대사헌이었는데 공양왕의 폐위에 반대하기도 했다. 민씨 가문은 개국 찬성파와 반대파 모두와 연결된 거대한 정치세력이었다.
조선 초 왕권의 행방은 신의왕후 한 씨의 자식들과 신덕왕후 강 씨의 자식들 사이에서 신덕왕후 쪽으로 기울었다. 태종에게는 가장 큰 정치적 위기가 닥친 것이다. 태종은 자신의 무력으로 상황을 돌파했는데
게임몰 , 이때 앞장선 인물이 바로 처남인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였다. 민씨 형제의 참여는 개국 반대파까지 태종의 편에 서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민씨 형제들은 공신으로 우뚝 서게 되고 여흥 민씨 가문의 위상도 한껏 올라갔다.
그러나 여흥 민씨 가문의 위상은 민제 스스로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는 명 황실과 양녕대군의 통혼을 추진하는 음모를 꾸몄다. 당시 명나라 황실은 조선 왕실과 통혼을 원했다. 태종은 이를 막기 위해 서둘러 미혼이던 둘째 딸의 혼인을 추진하는 등 방비에 나섰다. 그런데 뜻밖에도 민제 일당이 양녕대군을 내세워 명 황실과 혼인시키려는 책동을 벌인 것이다. 태종은 민씨 집안의 위험을 제거하기로 결심했고 즉각 민무구와 민무질 형제부터 내쳤다.
하지만 민제가 살아 있는 한 이들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려웠다. 가문이 몰락하면서 실의에 빠진 민제가 3년 후 죽자, 태종은 즉각 민씨 형제에게 자진을 명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5년 후에는 남은 민씨 형제 민무휼과 민무회마저 죽여 버렸다. 세자 양녕대군은 어려서 외가인 민씨 집안에서 컸다. 태종은 양녕대군의 외삼촌들이 그에게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미리 싹을 잘라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태종은 아내 원경왕후는 보호했다. 왕실을 위협할 사적 관계는 제거하고 공적 관계는 지켜낸 것이다. 오늘날 사적 관계는 보호하고 공적 관계는 무시한 전직 대통령의 행적과 비교될 만하다.
이문영 역사작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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