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전원의 꿈 일구는 생활정보지 월간 ‘전원생활’ 11월호 기사입니다.
1997년 한국 여자 마라톤 신기록을 세운 스무 살의 권은주. 가장 빛나는 선수 시절 부상이란 시련을 겪고, 눈물겨운 재기의 드라마를 써냈다. 2025년 마흔여덟의 권은주는 사람들과 함께 달린다.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그 즐거움과 효용을 전하면서.
가을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은 서울 반포 한강공원. 평일 오전이지만 공원을 달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러닝 인구 천만 명이라는 언론 보도가 과장이 아닌 듯, 그 열풍을 실감케 하는 풍경이다.
그 사이에 운동복 차림으로 달리고 있는 권은
바다이야기게임다운로드 주 감독(이하 권은주)이 있다. 불과 이틀 전, 그는 미국 시카고마라톤 풀코스(42.195㎞)를 뛰고 돌아왔다. 완주의 피로나 긴 비행의 여독을 풀 새도 없이 운동 유튜브 촬영을 이어가는 것이다. 피곤할 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밝고 발걸음은 경쾌하다. 과연 마라토너의 지구력이다. 저 작은 체구 어디에 42.195㎞를 달리는 에너지가 숨어 있을까?
릴박스 권은주는 요즘 선수 시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반인 대상 러닝 클래스 ‘런위드주디’를 수년간 운영하고 있고, 영화 <1947 보스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러닝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지난 3월에는 자신의 달리기 인생을 정리한 에세이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을 펴
바다이야기#릴게임 냈다.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도 종종 출연해 사람들을 달리기의 세계로 인도한다.
2시간 26분 12초, 전설의 탄생
권은주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마라톤 선수가 되려는 생각은 아니었고, 남들보다 조금 더 잘 달리는 모습과 마라토너에 적합한 체형이 체
릴게임바다이야기 육 선생님의 눈에 들었다.
“그땐 어려서 마라톤이 뭔지도 잘 몰랐어요. 학교 끝나고 달리기 연습하는 게 재미있었고, 운동 후에 주는 간식이 좋았죠. 대회에 나가면 곧잘 상을 받아오곤 했어요.”
중학생 때는 개그맨을 꿈꾸기도 한 평범한 학생이었던 권은주. 그는 체육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육상선수로서 두
바다이야기릴게임연타 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1996년 전국체육대회 3000m와 20㎞에서 우승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1997년은 그에게 특별한 해다. 고교 졸업 후 명문 코오롱마라톤팀에 들어간 그는 5000m와 20㎞에서 한국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뒤이어 춘천국제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해 ‘2시간 26분 12초’로 골인하며 한국 여자 마라톤 신기록을 달성했다. 여자 마라톤 ‘마의 30분’이라는 벽을 깼고, 당시 세계 7위에 해당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가 세운 기록은 그 뒤 21년간 깨지지 않았다. 더욱이 그 대회는 권은주의 풀코스 첫 번째 도전이었다. 괴물 신인의 등장에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비추었다.
“남들은 대단하다고 하는데, 그때는 그 기쁨을 몰랐어요. 훈련이 힘들어서 빨리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다시 찾은 달리기의 의미
강렬한 데뷔전 이후 권은주에게는 슬그머니 불안이 찾아들었다. 갑작스럽게 단 ‘제일 잘 뛰는 사람’이라는 타이틀을 증명하고 싶어 조바심이 났다.
“다음 대회에서는 더 좋은 기록으로 우승해서, 내가 정말 잘 뛴다는 걸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래서 쉼 없이 제 자신을 몰아붙였죠.”
이듬해 그에게 보스턴마라톤 초청장이 날아들었다. 보스턴마라톤은 세계 7대 마라톤 중 하나인 권위 있는 대회이다. 초청장을 받았다는 것은 주최 측에서 숙소와 이동 경비를 지원하겠다는 의미였다. 꿈의 무대에서 세계 선수들과의 경쟁을 앞두고 그는 더욱 혹독하게 훈련했다. 하지만 무리한 연습은 부상으로 이어졌다. 통증을 참고 파스를 붙여가며 뛰었고, 발이 버텨주길 바랐다.
그러나 마지막 45㎞ 거리주 훈련 다음 날, 그의 오른발은 코끼리처럼 부풀어 올랐다. 족저근막염이었다. 그는 결국 대회를 포기하고 일본 나고야의 유명 병원에서 수술받았다. 병실에서 텔레비전으로 보스턴마라톤을 지켜보던 날을 그는 잊을 수가 없다. 그해 같은 증상으로 왼발까지 수술한 뒤 2년여간 치료와 재활을 반복해야 했다. 재활 중에도 몇몇 작은 대회에 참가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1년 내내 아프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중요한 시기를 부상으로 보내고 나니 선수로서의 미래조차 희미해져갔어요. 그렇지만 어떻게든 복귀하겠다고 다짐했죠.”
훈련에서 돌아오면 탈진해 쓰러질 정도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달릴 수 있게만 해달라”고 기도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춘천마라톤에서 다시 1위의 영광을 안았다.
“마라톤이 주는 행복을 그제야 알았어요. 달릴 수 있어서 감사했고, 우승의 기쁨을 온전히 느꼈어요.”
끝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내 한계는 바로 여기까지라고 여겨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 사람이, 그 일이 너무 좋다면 포기하지 맙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그렇습니다.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 중)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달리기 때문에 생의 바닥까지 좌절해본 그가 끝내 달리기를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달리기를 너무 좋아했거든요. 달리는 동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평생 달리기와 함께해온 그는 누구보다 달리기의 힘을 알았다. 그리고 이를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인천시청·함양군청 등에서 활약하고, 2011년 선수생활을 마친 그는 이듬해 초등학교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즐거웠지만, 대회 성적에만 집중해야 하는 분위기에는 거부감이 일었다.
길은 다른 곳에서 열렸다. 우연히 한 스포츠 브랜드의 러닝클럽 운영을 맡으면서 일반인 러너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클럽이 지금의 ‘런위드주디’의 시작이다. 런위드주디는 건강이나 취미로 달리는 동호인뿐만 아니라 풀코스 대회를 준비하는 베테랑 러너들까지 실력을 쌓을 수 있는 클럽이다. 이곳의 특별한 점은 한국 여자 마라톤 전설 권은주가 함께 달린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이 사람들이 왜 뛰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오래 함께 뛰다 보니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되고 속사정도 알게 됐어요. 어떤 사람은 다이어트 때문에 나오고, 누구는 우울증을 이겨 내려 오기도 했어요. 함께 달리는 사이 무뚝뚝하던 부자 관계, 부부 관계가 회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달리기가 지닌 힘을 실감했죠.”
그는 달리기를 단순한 신체 활동이 아닌, 마음을 치유하는 ‘움직이는 명상’이라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단 10분이라도 달려보라”고 권한다. 달리기를 가르치는 지도자이지만 그는 기록이나 성적보다 ‘즐겁게 달리기’를 강조한다. 처음엔 취미로 시작한 일반인들도 어느새 기록에 집착해 다치는 경우를 빈번히 봐왔기 때문이다. 선수 시절 그도 겪은 일이기에 그 마음을 안다. 하지만 “올림픽 나갈 것 아니니까 그만하면 됐어요!” 하며 웃으며 만류한다.
달린다고 해서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대로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는 분명히 바뀝니다. 결코 잃어버려서는 안 될 소중한 삶의 가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 중)
열한 살에 시작해 어느덧 40년 가까이 달려왔다. 권은주의 꿈은 할머니가 될 때까지 오래오래 달리는 것이다. 선수 때만큼 빠르지 않아도, 풀코스를 다 뛰지 못해도 즐겁게 뛸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달린다. 오는 11월에는 마라톤의 본고장 아테네를 달릴 계획에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 세계 7대 마라톤을 완주하겠다는 꿈을 실현할 날도 머지않았다. 이미 다섯 곳을 달렸고, 두 곳만 남았다. ‘제일 잘 뛰는 사람’ 권은주는 ‘즐겁게 달리는 사람’ 권은주로 타이틀을 바꿔 달았다. 두 번째 타이틀도 마음에 든다.
글 길다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