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4일 이명박이 "공정"을 외치자 이건희가 한 말은··· [오래 전 '이날']

연희현 0 172 2020.09.14 07:50
>

[경향신문]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9월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상생 방안에 대해 밝히고 있다. 오른쪽부터 당시 김승연 한화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이 대통령,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허창수 GS회장, 박용현 두산회장. 대청와대사진기자단

1969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 2010년 9월 14일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을 외치자, 이건희 회장이 “협력업체 챙기겠다”고 답했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변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좋은 것이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면 좋겠지만, 대개 나쁜 것들이 변하지 않고 곪은 문제가 되곤 합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부의 양극화, 불평등 문제 역시 그러합니다.

1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공정’과 ‘동반 성장’을 강조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2010년 9월 30일, 이 대통령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한화 김승연 회장 등 대기업 총수 12명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조찬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이 대통령은 대기업 총수들 앞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가 공정한 사회에 걸맞으냐, 공정한 거래냐,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우리사회가 격차가 벌어지면서 갈등이 심해지고 기업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면서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후에 당시 김희정 청와대 대변인에 의해 “이 대통령이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되는 것도 아닌 것은 사실’이란 취지의 말을 잘못 발음했다”고 정정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것은 일자리 창출이었습니다. “대기업 가지고는 좋은 일자리는 만들 수 있겠지만 많은 일자리는 만들 수 없다. 대·중소기업 협력을 통해서 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함으로써 중소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게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1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대기업총수 초청 조찬감담회에서 이명박대통령이 삼성전자 이건희회장(앞줄 왼쪽),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회장(앞줄 오른쪽)등 참석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조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2010.9.13
이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어려워진 경제와 위축된 고용시장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를 불러모아 ‘공정’을 강조한 것은 이례적이기도 보입니다. 하지만 ‘역시나’였습니다. 이 대통령은 구체적인 법·제도 개선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서로 동반성장하자고 하지만 모든 것을 규정이나 법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기업의 창의력을 떨어뜨리고 의욕을 낮출 수 있다”면서 “인식을 바꿔서 기업 문화를 바꿔보자”고 말했습니다. “대기업 총수들이 마음먹으면 그것 하나 못하겠느냐”라고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가 ‘대기업 총수들의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럼 대기업 총수들은 어떤 ‘마음’을 먹었을까요? 다들 말은 앞섰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2·3차 협력업체까지 세밀하게 챙겨 동반성장을 위한 제도나 인프라를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며 “투자와 고용을 확대하고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습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협력업체들이 중견기업을 성장할 수 있도록 기술과학 중진, 경쟁력을 포함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은 “협력업체가 잘되는 것이 현대중공업이 잘되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법과 제도 개선 없이 대기업의 자발적 인식 변화를 주문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곧 제기됐습니다. 이정희 당시 민주노동당 대표는 “대·중소기업의 상생은 대기업의 선의나 이 대통령의 업적 과시가 아닌, 제도적 노력으로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한 중소기업 대표도 “지난 정권에서도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대통령과 대기업 대표들의 회동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결국 보여주기로 끝났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제도 개선 없는 ‘말잔치’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당시 대기업 총수들의 말과 실제 ‘마음’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이 폭로되었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18년에야 협력업체 소속 직원 8000명이 정규직화됐습니다. 현대기아차는 대법원의 잇따른 불법파견 판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현장에선 불법파견 문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불법파견이라고 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10년째 된 날 “지난 10년간 법원은 32차례나 현대기아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오늘도 현대기아차의 불법파견 범죄는 계속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재벌대기업의 불법파견 문제를 바로 잡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화두도 바로 ‘공정’입니다. 10년 전 이 전 대통령도 ‘공정’을 강조했지만, 법·제도의 개혁 없는 ‘약속’은 실효성이 없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법·제도 개선이 실질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이영경 기자 [email protected]


▶ 장도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