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담은 이 영화는 실제로 엄마가 딸들에게 말하듯이, 자매들이 뒤얽혀가며 웃음과 수다가 가득한 다양한 장면들로 채워졌다.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는 각각의 대사는 마치 뮤지컬과 교향곡을 듣는 것처럼 형형색색 다양하고 매우 리드미컬하다. 실제로 그레타 거윅 감독은 이 점을 매우 중요시했다. 느릿느릿한 과거 19세기의 언어를 현대의 언어로 스피드 하게 전개하며 서로 간에 주고받는 대사의 관계를 연출했다. 이렇게 정확한 타이밍을 지시하는 그녀의 디렉션은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보이기도 하다.
네 자매를 중심으로 한 가족사가 품고 있는 건 공감과 연대다.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으로부터 느끼는 기쁨, 슬픔, 위로는 빤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촘촘하게 잘 엮인 '고전적 이야기'는, 당연한 삶을 당연하게 누리지 못하고 있는 '코로나19' 시대에 새삼 발굴된다.
조와 로리는 커튼 너머를 슬쩍 내다보면서 사람들을 평가하고 수다도 떨었다. 그러다 보니 오랜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조가 남자 같은 태도로 털털하게 웃기는 말을 해가며 편하게 대하자 로리는 곧 수줍음을 잊었다. 조도 명랑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드레스에 대해 잊었고, 눈치를 주며 눈썹을 치켜뜨는 사람도 없어서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조는 ‘옆집에 사는 로런스’가 전보다 더 좋아졌다. 자매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로리를 몇 번이나 꼼꼼히 뜯어보았다. 형제가 없고 남자 사촌 몇 명뿐인 자매들에게 남자애들은 거의 생소한 생명체였다.
"곧 대학에 가지? 전에 보니까 책을 들이파던데. 아, 내 말은, 열심히 공부를 하더라고." 조는 ‘들이판다’는 표현이 좀 품위 없게 들릴 듯해서 얼굴을 붉혔다.
로리는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는 미소 띤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아직 2, 3년은 더 있어야 돼. 열일곱 살 전에는 대학에 가지 않을 거야."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은 검고, 피부는 갈색이며, 검은 눈동자는 크고, 코가 길었다. 치열이 고르며 손발이 작고 키는 조와 비슷한데 남자애치고는 예의가 바르고 유쾌했다. 몇 살일까?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 그런 걸 물어볼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조답지 않게 에둘러서 알아내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하나의 인생은 그대로 존중 받아야 한다는 소설과 극의 메시지는 이 시대에 진부함이 아닌, 특별한 진리로 자리 잡는다. 한아름 작가의 따듯한 기운, 오경택 연출의 존중하는 시선과 맞물리며 뮤지컬은 원작의 아우라에 눌리지 않고 안정적인 궤도로 진입한다. 탁월하거나 기발한 작품은 아니지만, 진정성이 말이 되게 하는 작품이다.
초반에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짐작케 하는 오프닝 자막이 특별하다. 바로 원작가 루이자 메이 올컷의 문장 "삶이 고통스러워, 밝은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I've had lot's of troubles, so I write jolly tales)"라는 글귀는 당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짐작케 한다. 여자가 자기 책상을 가진다는 게 부적절하던 시절, 남성 권위주의 시대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수용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며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유색인종의 삶이 인정된 것 또한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다. 아직도 미국 내에서의 인종차별은 여러 모양으로 그 본색을 드러내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현재 진행형 이슈이기도 하다.
현실적이고 야무진 막내 ‘에이미’ 역에는 2006년 뮤지컬 ‘애니’ 초연에서 ‘애니’역을 맡았던 전예지, 이아진이 함께 한다.
‘애니’에서 아역 배우로 처음 데뷔한 전예지는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록키호러쇼’,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매력 넘치는 캐릭터를 소화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그해 겨울, 사랑스러운 자매들을 만났다
배우가 되고 싶은 첫째 메그(엠마 왓슨)
작가가 되고 싶은 둘째 조(시얼샤 로넌)
음악가가 되고 싶은 셋째 베스(엘리자 스캔런)
화가가 되고 싶은 막내 에이미(플로렌스 퓨)
이웃집 소년 로리(티모시 샬라메)는 네 자매를 우연히 알게되고
각기 다른 개성의 네 자매들과 인연을 쌓아간다.
7년 후, 어른이 된 그들에겐
각기 다른 숙제가 놓이게 되는데…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 서울시뮤지컬단(예술감독 한진섭)이 무대로 옮긴 뮤지컬 '작은 아씨들'도 현대성의 바통을 이어 받는다.
작가를 꿈꾸는 독립적인 둘째 '조'(이연경·유리아)는 여전히 당차고, 사랑스러운 동시에 이기적으로도 그려지다 최근 적극성과 합리성이 발굴된 '에이미'(전예지·이아진)도 새삼 달라 보인다.
마치가(家0의 이웃 ‘로리’ 역은 허도영과 기세중이 캐스팅됐다.
‘베니스의 상인’, ‘브라보 마이 러브’, ‘광화문연가’ 등에서 스타성을 입증한 서울시뮤지컬단 허도영은 기품있고 순수한 부잣집 청년 로리로 분한다.
기세중은 ‘베어 더 뮤지컬’, ‘환상동화’, ‘알 앤 제이’ 등 뮤지컬과 연극을 넘나들며 섬세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다.
특정 세대를 겨냥하기보다, 남녀노소를 골고루 살피는 서울시뮤지컬단답게 가족적인 요소도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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