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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친엄마 상봉하는 네덜란드 입양인 미샤 블록(키 큰 여성) [류동익 박사 제공]
(서울=연합
야마토 2 온라인 게임 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어떤 네덜란드 입양인은 한국에 와서 천신만고 끝에 친엄마를 찾는 데 성공했다. 친엄마는 고교 시절에 여자아이를 낳아 입양 보냈고, 현재는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었다.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 친엄마는 멀리 유럽에서 찾아온 딸을 만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과거'가 아들에게 들통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
쌍바닥종목 었다.
이를 알게 된 입양인의 이모, 즉 친엄마의 여동생은 화가 났다. 부모가 딸을 외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 이모는 고민 끝에 언니의 아들, 즉 조카한테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다. "네 엄마가 고교 시절에 아이를 낳아서 몰래 입양 보냈고, 현재 그 딸이 유럽에서 왔는데 안 만나려 한다"고 했다.
KINDEX삼성그룹EW 주식 그 아들은 훌륭한 사람이었다. 아들은 엄마한테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느냐"면서 "그동안 나는 혼자여서 외로웠는데, 누나가 생겼으니 너무 좋다"고 했다.
이는 입양 가족을 찾는 단체 FPF(Find Parents Family)의 공동대표인 류동익 박사(사회복지학)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한 실제 사례다.
인터뷰는 9
챠트의맥 월 9일부터 세 차례 진행됐다.
건강할 때의 프랑스 입양인 장성탄 씨와 부인 로리안 씨 잠을 못 자는 희소 질환에 걸린 장성탄 씨는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 한국에 있는 친부모의 유전자 정보가 필요했지만 친엄마는 끝내 만남을 거절했다[부인 로리안 씨 사진 제공]
신텍 주식 류 박사는 인터뷰에서 "일부 부모는 입양 간 자녀가 성인이 돼서 찾아왔을 때 외면하기도 한다"면서 "입양인은 상봉을 거절당했을 때 상심이 커서 많이 운다"라고 했다.
그는 "현행 입양특례법은 친부모가 자신들에 대한 정보의 제공을 거부하면 입양인은 아동권리보장원(NCRC) 등으로부터 부모의 주소나 연락처를 확보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이 때문에 심각한 질병에 걸린 입양인이 치료를 위해 친부모의 유전자 정보가 절박하게 필요한데도 속수무책의 상황에 빠진다"면서 "근원적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령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 박사는 17년째 입양인 가족 찾기 일을 하고 있다. 그는 2009년부터 네덜란드 방송사의 입양인 가족 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근래에 이 프로그램이 중단됐지만 류 박사는 FPF 등을 통해 가족 찾기 일을 계속하고 있다.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류 박사는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 학과를 졸업했고,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레이던 대학에서 범죄 언어학 박사 과정에 들어가 수료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한국에 돌아왔으며 한국의 캘빈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류동익 박사 [윤근영 기자 촬영]
다음은 류동익 박사 인터뷰 2차 기사의 질문-답변
-- 아이를 입양 보낸 사람들은 대체로 저소득층인가.
▲ (류 박사)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입양 결정에는 경제문제 외에 사회적 낙인, 양육 부담, 제도적 환경 등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일부는 혼외자를 출산한 뒤 입양을 선택했는데, 이는 특정 직업군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나타났다.
-- 한국 특유의 남아선호 때문에 딸을 입양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던데.
▲ 어떤 집은 딸 7명을 낳아서 넷째부터 일곱째까지 입양 보냈다. 8번째에는 아들을 낳아서 키웠다. 다른 집은 딸 셋을 내리 낳았는데, 네 번째도 딸이 나오자 시어머니는 "엎어라"라고 말했다. 엎어 놓으면 아기는 죽을 수밖에 없다. 엄마는 이 넷째 딸을 살리기 위해 입양을 결정했다. 다행히 다섯번째에는 아들을 낳았다.
가족 찾는 벨기에 입양인 김대숙 씨 1976년 대전 출생, 1977년 벨기에로 입양
-- 본인에게 삶의 목표는 입양인 가족 찾기인가.
▲ (류동익 박사) 입양인들에게 한 가족이라도 더 찾아주는 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됐다. 사랑하는 가족은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한다. 그리고 신 외에는 누구도 가족을 떼어놔서는 안 된다. 나는 입양인 가족 찾기 일을 하면서 이걸 확실히 깨달았다.
-- 어렵게 찾아온 입양인을 거부하는 친부모들이 많나.
▲ (류 박사) 절반 정도는 만남을 거부한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는데, 그것이 드러나면 현재의 가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본인은 입양인의 친부모를 찾는 과정에서 모욕당하는 경우가 꽤 있었나.
▲ (류 박사) 어떤 부모는 "이제 겨우 슬픔을 잊고 잘살고 있는데, 왜 네가 와서 자꾸 들쑤시느냐"고 한다. 다른 부모는 "너는 가정 파괴범"이라면서 강하게 항의한다. 이때 그분들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한국 문화에 대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그분들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네덜란드 입양인 미샤 블록의 친어머니는 특별한 사람이다. 미샤의 친어머니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자녀들과 함께 미샤를 만났다. 이런 사례는 흔하지 않다. 입양인-원가족 관계가 갈등이나 거부로만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네덜란드 입양인 미샤 블록과 축구감독 출신 거스 히딩크 미샤는 친어머니를 찾기 위해 거스 히딩크한테 도움을 요청했고, 그는 기꺼이 응했다. [류동익 박사 제공]
-- 미샤 블록은 어떤 사람인가.
▲ (류 박사) 네덜란드에서 방송 활동을 활발히 하는 한국 출신 입양인이다. 만 2살 때 입양됐는데, 성인이 돼서 한국의 친부모를 찾고 싶어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전국 곳곳을 다니며 탐문했다. 먼저 친아버지를 찾았고, 그다음에 친엄마를 찾아 나섰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친아버지가 일부러 친엄마에 대한 정보를 숨겼기 때문이다.
-- 친아버지는 왜 그랬나.
▲ (류 박사) 그 입양 과정에서 부끄러운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미샤의 친부모는 20대 초반에 혼전 동거를 했고, 그때 미샤가 태어났다. 그런데 친아버지는 친엄마가 잠깐 고향에 간 사이에 다른 여성을 집안에 들였다. 그 여성은 임신 상태였다. 친엄마는 그 여성에게 "나에게는 이미 태어난 아이가 있고, 당신은 아이가 배 속에 있으니 물러나달라"고 부탁했지만, 그 여성은 수용하지 않았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 (류 박사) 미샤의 엄마는 그 집에서 나왔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미샤의 친할머니 집에 갔다. 거기에 미샤를 맡기고 돈을 벌기 위해 수도권의 한 지역으로 갔다. 얼마 후 아이를 보러 내려왔는데, 미샤는 없었다. 미샤의 친아버지가 입양 보냈기 때문이다. 친아버지는 입양에 대해 친엄마와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 어떤 기관을 통해 입양 보냈는지, 아이는 어느 나라로 갔는지도 알려주지 않았다.
'나는 해외 입양인입니다' 미샤 블록이 2025년 6월 발간한 책의 표지
-- 본인은 미샤가 쓴 '나는 해외 입양인입니다'라는 책을 번역했는데.
▲ (류 박사) 해외 입양인들의 삶, 그리고 뿌리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번역을 자처했다. 나는 미샤와 함께 부모를 찾으러 전국을 다녔기에 그 스토리에 대해 잘 안다. 그래서 이 책 번역에 누구보다도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 본인은 미샤를 어떻게 알게 됐나.
▲ (류 박사) 처음 알게 된 것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였다. 그녀는 네덜란드 방송국의 기자 자격으로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 나에게 취재를 도와달라고 했다.
-- 입양인에게 뿌리 찾기는 왜 그렇게 중요한가.
▲ (류 박사) 어떤 생명체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근원이 있다. 사람은 이런 뿌리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 입양인에게는 이것이 사라진 상태다. 이는 평생 트라우마다.
-- 입양인은 결혼하고 나서 친부모 찾기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 (류 박사)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엄마의 엄마는 누구야?"라고 묻는데, 이런 질문이 계기가 된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배진시 대표 [윤근영 기자 촬영]
-- 입양인이 천신만고 끝에 친부모의 주소를 파악했는데도 상봉이 안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 (배진시 대표) 어떤 프랑스 여성 입양인은 친아버지의 주소를 찾아냈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임대 관련 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 아버지는 결혼했고 아들과 며느리도 있었다. 나는 입양인과 함께 지난 5월에 그 집에 찾아갔는데, 부인이 부녀 상봉을 막아섰다. 남편의 건강이 안 좋아서 갑자기 딸이 나타나면 충격받아 쓰러진다고 했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
▲ (배 대표) 그냥 임대하려는 고객인 것처럼 해서 아버지 얼굴을 보기로 했다. 부인은 남편과 함께 마당의 평상에 앉아 있을 테니 잠깐 옆에 앉아 있다가 가라고 했다. 드디어 그 아버지가 방에서 나와 평상에 앉았다. 입양인도 그 옆에 앉았는데, 말이 안 통하니 대화를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옆에 있는 여성이 딸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1분 정도 지났을 때 그 부인은 이제 됐으니 그만 가라고 했다. 나는 부인의 이 말을 입양인에게 통역해줬다. 입양인은 "그러면 떠나기 전에 아빠 손 한번 잡아봐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내가 이 말을 전했더니 부인은 "모르는 여자가 손을 잡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 안 된다"고 했다.
가족 찾는 프랑스 입양인 조현아 씨 1981년 춘천 출생, 1984년 프랑스로 입양
-- 그 입양인은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손도 못 잡아 보고 떠났나.
▲ (배 대표) 우리가 그곳에 머물렀던 시간은 3분밖에 안 됐다. 다행히 나는 그 아버지와 딸이 같이 앉아 있는 모습을 휴대전화로 찍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보내줬고, 그 입양인은 프랑스로 돌아간 후 나한테 편지를 보내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와 같이 찍은 사진을 갖게 돼서 정말 고마워요. 지난 50년간의 설움이 해소되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해요"
-- 그 부인은 왜 부녀 상봉을 막았을까.
▲ (배 대표) 나의 추정이긴 한데, 상속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고 판단한 듯하다. 상봉이 무산됐지만 핏줄을 향한 딸의 마음은 간절했다. 그 입양인은 아버지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것을 알고는 오히려 좋아했다. 그는 "나 조울증 있는데, 아빠 닮았나 봐"라고 기쁘게 말했다.
-- 이 입양인의 친부모는 어떻게 입양인을 낳게 됐나.
▲ (배 대표) 친부모는 연애했고, 미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 직후에 아빠가 군대에 가게 되자 고모들이 돌아가면서 아이를 키웠다. 아버지가 군대에서 제대하고 돌아왔을 때 입양인의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장가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그 아이는 입양 가게 됐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류동익 박사 [윤근영 기자 촬영]
-- 부모가 자녀 입양인 만남을 거부한 다른 사례가 있나.
▲ (류 박사) 어떤 여성은 남편이 일하러 중동에 간 사이에 고위 공무원과 바람을 피웠다. 남편은 대기업 간부였다. 이 여성은 불륜의 결과로 아이를 낳았고, 키울 수 없으니 입양 보냈다. 어느 날 입양 간 딸이 성인이 돼서 찾아왔다. 입양인은 친아버지도 만나야 했기에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친엄마는 입양인의 친아버지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심지어 그 엄마는 "네가 아빠를 만나면 나는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 자식이 친아버지를 만나겠다는 것인데, 친엄마가 왜 그렇게 반대했을까.
▲ (류 박사) 나도 그 이유를 모른다.
-- 그래서 그 입양인은 친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나.
▲ (류 박사) 당시 나는 이미 알고 있는 정보로도 그 아버지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입양인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입양인은 "엄마가 저렇게 반대하는데,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친부모보다 그 자녀가 훨씬 성숙한 경우가 꽤 있다.
-- 입양인-친부모가 한번 만났다가 멀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 (류 박사) 어떤 부부는 딸 3명 중에 셋째 딸을 입양 보냈다. 첫 상봉은 괜찮았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부터 친엄마가 노골적으로 싫은 기색을 드러냈다. 나는 그 입양인과 부모의 식사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통역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딸은 엄마한테 사랑받으려고 가진 노력을 다했다. 애교도 부렸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싸늘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있는 게 아주 고역이었다.
-- 그 어머니는 친딸에게 왜 쌀쌀했을까.
▲ (류 박사)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재산 문제도 아니었다. 입양 간 딸은 유럽에서 법조인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소득수준이 높았다. 친부모 재산의 상속에 관심을 가질 필요조차 없었다.
가족 찾는 미국 입양인 김지영 씨 1988년 대전 출생, 1989년 미국으로 입양
-- (류 박사) 본인은 입양인 가족 찾기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 입양인들이 가족을 찾은 후에 우울증에서 점차 벗어나는 것을 볼 때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매번 연락해오는 입양인들이 있는데, 가족을 찾아서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 기쁘다.
-- 국회와 보건복지부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
▲ (류 박사) 여러 가지 법령과 규제 때문에 입양인들이 친부모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 입양인들에게는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공개토록 하는 개인정보보호 예외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담당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입양인 부모를 찾도록 하는 행정규정도 만들었으면 한다.
(류동익 박사 인터뷰 2차 기사 끝)
입양인 700명 이름표가 걸려있는 '기억의 벽' 2025년 6월 경기 파주 엄마품동산 내 가장자리에 있는 기억의 벽에서 한 입양인이 입양인들의 이름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해외입양인들을 위한 '기억과 치유의 공간'인 엄마품동산은 8년여의 준비 끝에 6월 공식 개장했다. [연합뉴스 사진]
<유동익 박사 인터뷰 1차 기사 요약>
[삶] "얼른 입안 좀 보자"…입양간 아들 30년만에 만난 아버지 첫마디(9월19일 송고)
60대 아버지가 유럽으로 입양 갔던 아들을 30년 만에 만났다. 갓난아기가 30살이 돼서 한국에 온 것이다. 아버지가 만나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아들의 입 안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입을 열어보라고 하더니 구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했다. 아들을 입양 보낸 것은 아들의 구강 수술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코와 입 사이에 구멍이 뚫려있어 음식을 삼킬 수 없었다.
입양 가게 된 것은 케이스가 다양하다. 보육원에 맡겨졌는데 입양 간 경우가 있고, 친부모가 입양을 원한 경우도 있었다. 1970년대까지는 가난, 그 이후에는 불륜이나 혼전 동거로 아이를 낳아서 입양 보낸 경우가 많았다.
입양 가게 된 것은 입양인들의 잘못이 아니다. 입양인들은 그 어떤 힘든 일이 있더라도 꼭 이겨내시기 바란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반드시 가족 찾을 길이 열릴 것이다.
친생부모들은 용기 내어 자녀들을 만나시길 바란다. 모든 사람은 실수할 수가 있다. 슬픈 과거를 가질 수 있는데, 이를 치유할 방법이 있다. 자녀들은 결코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친부모의 건강과 경제 여건을 걱정한다. 그들을 꼭 만나주시고 그들을 꼭 안아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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