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바다거북 엉덩이에 붙어 있는 콜럼버스게. 위키피디아
1492년 9월17일, 신대륙을 찾아 대서양 사르가소해(Sargasso Sea)를 항해하던 콜럼버스는 해수면에 수없이 떠도는 갈색 해조류 무더기와 함께 그 속에서 작은 게 한 마리를 건져 올렸다. 그의 항해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강에서 나는 풀처럼 생긴 해초가 많이 떠다니는 것이 보였고, 그 속에서 살아 있는 게 한 마리를 발견해 제독이 그것을 보관했다. 그는 이런 게들이 육지가 가까이 있다는 확실한 징후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독의 예측은 빗나갔다. 게를 건져 올린 서경 37도, 북위 28도 지점은 유럽과 아메리카 사이 대양 한가운데였고, 북아메리
broker 카 대륙까지 최단거리로 잡아도 약 2860km가 남아 있었다. 콜럼버스가 마주했던 게는 오늘날 ‘콜럼버스게’(Columbus crab)로도 불리는 플라네스 미누투스(Planes minutus)로 추정된다. 보통 게는 해안가 모래나 갯벌에 서식하기 때문에 육지가 가까워졌다는 징후로 추정할 수 있지만, 콜럼버스게는 해안과 멀리 떨어진 대양에 살며 해초와 부유물
주택담보대출 소득공제 서류 , 그리고 다른 해양동물의 몸에 의지해 살아간다. 몸 크기가 불과 1~2cm 남짓한 소형 갑각류이지만 대서양을 비롯, 지중해, 인도양, 태평양까지 전 세계 바다에 퍼져 있다. 그런데 정작 스스로 헤엄치는 능력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수면에서 40분쯤 헤엄칠 수 있지만 지구력이 떨어져 어딘가 붙어 있을 만한 곳이 필요하다. 다리에 굵은 가시가 나 있어서
쌍용자동차 채용 무엇이든 매달리기에 적합한데, 이중에서도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가 바로 바다거북이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동쪽 인도양에 위치한 레위니옹섬의 콜럼버스게. 위키커먼스
콜럼버스게가 특히 자주 애용하는 이동식 숙소는 붉
취업지원대상자 은바다거북(Caretta caretta)이다. 연구 사례를 살펴보면 거북 128마리 가운데 82퍼센트인 105마리에서 이 게가 확인됐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게는 낮 동안 거북 등껍질에 붙은 따개비 유생이나 기생성 요각류를 뜯어먹어 ‘청소부’ 역할을 하고, 밤에는 해수면 근처에 떠다니는 크릴 등 동물플랑크톤이나 조류를 먹는다. 바다거북은 기생성 유착 생물
제일은행이율 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콜럼버스게에게는 먹이와 이동 숙소가 한꺼번에 제공되는 셈이다. 대양을 떠다니는 극한 환경에서 서로의 조건을 개선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공생 전략이 오랜 세월 작동해 온 결과다.
외로이 바다를 떠다니는 생존 전략은 번식에 불리하다. 부유물에 의존한 채로 대양이라는 광활한 무대에서 작은 게가 짝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콜럼버스게는 ‘히치하이킹 도중 기회가 오면 재빨리 갈아탄다’는 전략을 쓴다. 홀로 바다거북에 매달려 다니다가 만약 파트너가 있는 다른 바다거북이 근처를 지나가면 짧은 수영 실력을 발휘해 건너가 교미에 성공하는데, 거북이 제공하는 ‘피난처의 크기’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회적 일부일처가 형성된다는 연구도 있다. 바다 한가운데서도 나름 효율적인 짝짓기 전략을 마련해 번식을 이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바다에 떠다니는 운동화에서 발견된 콜럼버스게. Marine Pollution Bulletin
최근 들어 이 게가 사용하는 이동 숙소가 하나 더 늘었다. 바로 플라스틱 쓰레기다. 운동화나 샌들과 같은 해양 부유 쓰레기에서도 콜럼버스게가 관찰됐고, 플라스틱 조각 사이를 점프하며 이동하는 모습까지 보고됐다, 대양 표면을 떠다니는 인공 뗏목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면서 콜럼버스게는 새로운 발판을 적극 활용하는 생물로 부상했다. 적응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놀라운 유연성이지만, 그 배경엔 인간이 만든 플라스틱 세상이라는 점이 씁쓸함을 남긴다.
서부 지중해 해저 1200m에서 회수된 트롤망에 서식하는 콜럼버스게. Impact f Plastic Pollution
콜럼버스게가 발견된 곳을 기록한 지도. Marine Biodiversity Records
콜럼버스 항해록에서 콜럼버스게는 육지가 가까워졌다는 징후로 오해받았지만, 실제로 이 게는 콜럼버스에 비견될 만큼 뛰어난 탐험가이자 항해가이다. 극한 환경에서 희소 자원을 최대치로 활용하며 공생하는 능력과 인간이 만든 쓰레기까지 서식지로 바꿔 버리는 신속한 유연성으로 훌륭하게 살아남았다. 스스로 바다를 건너지는 못하지만 바다가 그를 실어 나르게 만드는 대양의 히치하이커. 이 작은 게는 표류하지만 길을 잃지 않으며, 의지하지만 고착되지 않으며 바다에 적응했다.
아주 극한의 세계는?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줄기러기를 아시나요? 영하 272도에서도 죽지 않는 곰벌레는요? 인간은 살 수 없는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고 살아가는 동물이 많은데요. 여름엔 북극, 겨울엔 남극에서 동물행동을 연구하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지구 끝 경이로운 생물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아주 극한의 세계(https://www.hani.co.kr/arti/SERIES/3304?h=s)에서 만나보세요!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동물행동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