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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대륙, 거대한 얼음의 대륙. 남극은 오랫동안 인간의 발길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영하 수십 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와 몸을 가누기 어려운 강한 바람, 살아 움직이는 듯한 거대한 얼음 덩어리와 크레바스(빙하 표면에 깊게 갈라진 틈) 등 극악의 환경과 곳곳에 도사린 위험 탓이다.
한국인이 최초로 남극에 발을 디딘 건 1978년이다. 이후 연구를 목적으로 한 세종기지와 장보고기지가 남극대륙 한켠에 터를 잡았다. 장보고기지에서 7년간 안전요원으로 활동한 진주 출신 산악인 이영호(56) 씨의 남극 이야기와 그의 삶을 들어봤다.
남극으로 향하는 꿈을 이루다
8000m급의 고산이무료인터넷바다이야기
즐비한 히말라야를 등정하는 국내 산악인들에게 있어서 남극 탐험 도전은 꿈과 희망의 대상이다. 남극 탐험에는 막대한 돈과 인력, 시간이 동반되기에 유명 산악인이라도 도전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국내에서는 올해 1월 아시아 최초로 남극 단독 스키 도보 횡단에 성공한 산악인 김영미 대장 등 몇몇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주에서 생계 수단으성공투자
로 건설업을 하며 20년 넘게 히말라야 등 고산 등정에 도전해왔던 산악인 이영호 씨에게도 남극 탐험은 가슴에 늘 품은 버킷리스트 같은 꿈의 대상이었다. '꿈꾸는 자에게 기회는 온다'는 말처럼 그 기회는 지인의 제안으로 갑자기 찾아왔다. 비록 최종지가 남극점을 향하는 탐험이 아닌 안전요원이라는 직함이었지만, 남극으로 가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1오스템임플란트 주식
0여 명의 지원자 중 안전요원 한 명을 뽑는 면접을 통과했다.

"2013년 세종기지에 근무하던 연구원이 실종해서 사망했다. 이 사고가 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어서 안전요원을 파견하기 시작했다. 2016년쯤 전국산악구조협회에서 남극 안전요원을 선발했는데 다행히 합격했고, 2017년 1월 남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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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쇄빙선인 아라온호. /이영호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여기서 장보고기지로 가려면 교통수단 중 하나인 배를 타야 한다. 한국 최초의 쇄빙선황금성온라인
인 아라온호를 타고 10여 일간의 긴 여정 끝에 가슴 속에 품었던 장보고기지가 있는 남극에 도착했다.
사우스셰틀랜드제도 킹조지아섬에 있는 세종기지(1988년 건립) 부근은 월동지로 바다에 접해 있다 보니 접근성이 좋아 다른 나라 연구기지가 많이 집결해 있다. 빅토리아랜드 테라노바만에 있는 장보고기지(2014년 건립)는 세종기지보다 내륙에 가까운 곳에 있으며, 여기도 월동지가 있다.
긴 여정 탓일까. 생전 처음으로 대면한 남극의 풍경을 느낄새도 없이 장보고기지에 마련된 잠자리에서 깊은 잠에 빠졌다. 바쁜 일정 때문에 풍경이 눈에 들어온 건 며칠 지나서였다.

"사방이 얼음으로 덮여 있어서 오히려 큰 감흥이 없었다. 고산 등반할 때 많이 봤던 비슷한 풍경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남극 장보고기지. /이영호


남극 장보고기지서 안전요원으로 활동
1월, 북반구는 겨울이지만 남극은 여름이다. 백야 현상으로 하루 종일 낮이었다. 연구원들의 현장 안전을 지키는 유일한 안전요원이었기에 시작부터 눈코 틀 새 없이 바빴다. 당시 명확한 안전 매뉴얼이 없는 상태여서 안전에 관련한 사항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챙겨야 했기에 긴장의 연속이었다.
특히 연구원들이 헬기를 탈 때면 캠핑 장비와 식량을 챙기는 일부터 이착륙까지 모든 안전 관련 일을 혼자서 해야 했다. 시료 채취 등 연구 목적으로 연구원들과 함께 먼 곳으로 가면 얼음을 뚫는 등 연구 활동도 거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안전요원 일은 그 다음 해에도 이어졌다. 2018년 10월, 남극대륙에서 연구·보급 활동 등을 목적으로 개척하는 코리안루트(K-루트)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도 안전요원으로 다시 합류했다. 20년이 넘은 고산등반과 경남산악구조대 대원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안전요원으로서의 충실한 역할과 성실함을 인정받은 것이다.
"남극점으로 이동하는 길을 만드는 일은 매우 힘들고 위험하다. 여름인데도 영하 20~40도에 이르는 추위를 견뎌야 하고, 태풍 이상의 강풍 때문에 몸을 버틸 수가 없다. 길을 내는 바닥의 얼음 속으로 탐침봉을 찔러서 안전한지 일일히 확인해야 하는데, 고된 작업이다. 특히 얼음바닥을 제대로 확인하더라도 종종 크레바스에 설상차나 사람이 빠지는 위험한 순간도 있다. 히말라야 등정 과정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간 척박한 환경과 제한된 공간에서만 움직여야 하는 장보고기지에서의 반복적인 일상생활도 쉽지 않다. 외로움에 더해 육체적·정신적으로 고통이 따른다. 그렇기에 80여 명의 연구원과 다양한 직종의 직원들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고산 등반으로 단련된 경험 때문인지 다른 이들보다 쉽게 적응했다.

"불편한 건 없었다. 고산 등반 때를 생각하면 완전히 고급 호텔이라고 생각했다. 식사 때마다 나오는 먹거리도 풍족했다. 다양한 음식이 나왔는데, 홍어가 가장 인기 많았다. 곳곳에 위험이 있다 보니 제한된 공간에서만 움직여야 해서 운동을 마음 놓고 못하는 게 좀 힘들긴 했다."




남극에 서식하는 펭귄 모습. /이영호


척박한 환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극식 야구'
여기에서 휴일은 따로 없다. 체류하는 기간 안에 일을 처리해야 하고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갑자기 일을 할 수 없는 날도 있어서 정해놓고 쉴 수 없었서다. 간간이 찾아오는 휴일에는 독서나 음악감상, 노래방에서 여가를 즐긴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2 명이 두 팀으로 나눠 했던 '남극식 야구'라고 했다.

"저녁을 먹고 날씨가 좋으면 남극식 야구를 했다.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야구 배트는 곡괭이였다. 작업 때 사용하는 장갑을 돌돌 뭉쳐 테이프로 감아서 야구공으로 이용했다. 무거운 방한화를 신어서 제대로 뛰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이영호 씨가 연구 활동 중 발견한 펭귄과 사진을 찍었다. /이영호


그는 2024년까지 7년간 가을이나 겨울이 되면 남극으로 떠났다가 봄이면 한국으로 돌아오는 철새 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그 세월 동안 남극은 그에게 제2의 고향 같은 존재가 됐다.
그래서 올해도 당연히 떠날 줄 알았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남극 연구도 타격을 받았다. 예산이 축소되면서 파견 인력이 줄고 연구 규모도 쪼그라들었다. 그도 제외 대상이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족들도 이제 반대하면서 남극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의 머리와 가슴은 남극으로 향하고 있다.
"남극으로 못 가게 되면서 그곳 경험을 살려서 남극 내륙기지를 짓는 사업을 하려고 생각했었는데, 다 접었다. 남극으로 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앞으로 갈 기회가 있다면, 관광 목적으로 아내와 함께 가고 싶다."
/허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