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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핀란드 헬싱키로 가는 가장 낭만적인 방법은 초대형 여객선을 타고 2시간 동안 발트해를 건너가기입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와 북유럽, 동유럽, 중앙유럽, 그리고 덴마크의 섬으로 둘러싸인 이 바다는 칠흑같이 어두운 색이었습니다.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다를 초여름 날씨에 배 타고 건너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9층 크기의 배에는 식당과 카지노는 물론이고 면세점까지 있었고, 외부 도크에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더군요.
핀란드는 주류세 덕에 술값이 비쌉니다. 때문에 당일치기로 탈린으로 와서 박스채로 술을 사서 돌아가는 이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마트에서도 1캔에 만원을 웃도는 맥주 가격을 보니 그동영상황금성
럴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웨덴에 출장을 왔던 걸 제외하면 제가 여행으로 북유럽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핀란드 근대 미술의 성지, 아테네움





아테네움 미술모바일황금성
관의 전경. 건축물 상단 페디먼트에 적힌 라틴어는 살루스티우스(Sallust)의 말로 ‘조화 속에서 작은 것들이 성장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김슬기





미술관 입구 기둥에 장식된 팔라스 아테네 조각상 ©Ateneum Art MuseIMBC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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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해를 항해한 지 2시간만에 점점이 박힌 헬싱키의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쾌적한 대중교통을 갖춘 헬싱키는 길거리에 꽁초 하나 보이지 않는 깨끗한 모습이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런던에서 온 저에게는 이 쾌적한비티앤아이여행그룹 주식
환경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거든요. 핀란드는 첫 인상부터 무척 좋았습니다. 우선 날씨가 너무 좋았고, 디자인 강국답게 식당이나 작은 상점의 간판 하나까지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트램을 타고 핀란드 중앙역에 도착하니 바로 맞은편에 보이는 미술관이 있었습니다. 핀란드 대표 국립 미술관이자, 근대미술의 1번지인 아테네움 미술관(주식처음시작
Art Museum Ateneum)입니다. 핀란드 국립 미술관은 아테네움 미술관, 키아스마 현대 미술관, 시네브리호프 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구의 도시에 붙여진 미술관의 이름부터 신기했습니다. 아테네움은 아테나의 신전 또는 신전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 전쟁과 지혜의 여신이자 국가의 수호자였던 팔라스 아테네에서 따온 이름인데요. 핀란드 예술과 건축이 서양 미술의 전통과 연결된다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미술관 입구의 기둥에서부터 여신의 조각을 만날 수 있더군요.
크지 않은 미술관이지만 약 3만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1750년대부터 1950년대 초기까지의 회화, 조각, 판화, 드로잉 650여점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건축가 테오도르 회예르(Theodor Höijer)가 설계한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이 미술관은 1887년에 완공됐는데요. 이듬해 대중에 공개된 이후에는 핀란드의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1980년대까지 이 건물 안에 위치한 미술 학교에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이 미술 학교의 특별한 점은 처음부터 여학생과 남학생 모두에게 문이 열려 있었다는 점입니다. 핀란드의 저명한 예술가와 디자이너 중 다수는 1980년대까지 아테네움에서 공부했을 정도입니다.
2세기에 걸친 핀란드 예술의 발전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이 미술관에서 가장 큰 난관은 읽을 수 없는 알파벳들이었습니다. 화가의 이름을 더듬더듬 읽으면서 ‘내가 북유럽에 왔구나’라고 체감을 하게 되더군요.



아테네움의 식당은 실내 인테리어도 음식 맛도 정말 좋다. 북유럽 미술관들의 가장 큰 장점이다. ©김슬기




‘무민’ 엄마 토베 얀손의 당당한 자화상





Tove Jansson [Self-Portrait], 1942 ©Ateneum Art Museum





토베 얀손이 그린 만화 속 무민 가족들



이름도 읽기 쉽지 않은 낯선 예술가들 속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핀란드 미술관의 첫 ‘구면’은 토베 얀손(1914-2001)이었습니다. 핀란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국민 캐릭터 무민의 작가죠.

더듬더듬 근대미술의 계보를 따라가는 길목의 초반에 그가 20대였던 1941년에 그린 자화상이 걸려 있었습니다. 동화 작가로만 알고 있던 저에게는 당당한 자세의 자화상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얀손은 자화상을 많이 그렸는데 이 자화상들은 그녀가 단순히 아동문학의 작가임을 넘어서, 본격적인 현대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가진 예술가임을 보여줍니다.
조각가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 받은 덕분인지 얀손은 아주 어릴적부터 그림을 잘 그렸습니다. 10대때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미술 교육을 받게 됩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39년 겨울, 그녀는 옛날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반드시 주인공은 왕자나 공주가 아니어야 했고, 그녀는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에 ‘무민트롤’이라 이름을 붙이죠.
한동안 잊고 있던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 1945년 완성한 이야기가 바로 <무민 가족과 대홍수>입니다. 지금은 뚱뚱한 몸집에 귀여운 하마같은 모양새지만, 처음의 무민은 뿔달린 붉은 눈의 괴물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을 위한 만화도 아니었죠. 그럼에도 만화는 대성공을 거둡니다.
더 이상 빚과 월세 걱정에 시달리지 않게 되자 얀손은 다시 화가의 꿈을 키우게 됩니다. 지금 남아있는 그의 유화들은 화가 얀손의 열망이 만들어낸 작품들이죠. 개인전도 열고 열심히 그림을 발표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대신 사람들은 무민 만화를 너무 사랑했습니다.
1955년 토베 얀손은 ‘세기의 사랑’을 만납니다. 말년까지 반세기를 함께 하는 연인 툴리키 피에틸레를 만난거죠. “사랑해, 나는 뭐에 홀린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차분해졌어. 우리에게 닥쳐올 어떤 일도 겁나지 않아”라는 편지를 쓸정도로 툴리키를 사랑했습니다.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지 않은 시대인지라, 두 사람은 세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핀란드 만에서 한참 나간 곳에 위치한 클로브하룬이라는 작은 섬에 둘만의 오두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평생 함께하며 얀손은 무민 이야기를 써내려갔죠.
1942년의 얀손은 자신의 미래를 예측했을까요. 젊은 예술가의 자화상을 보는 것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그 빛나는 미래와 성공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미술관에 하나 뿐인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오베르 쉬르 우아즈 거리], 1890 ©김슬기





핀란드에 가장 어울리는 풍경화도 발견했다. H Ahtela [Boats Waiting], 1955 ©김슬기




잊을 수 없는 헬레네 슈에프벡의 자화상





Helene Schjerfbeck [Self-portrait, Black Background], 1915 ©Ateneum Art Museum



또 하나의 눈에 익은 그림이 있었습니다. 헬레네 슈에프벡(Helene Schjerfbeck, 1862-1946)의 <검은 배경, 자화상>(1915)이었습니다. 그녀는 핀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이자 19~20세기를 걸쳐 최고의 모더니스트 화가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아테네움 미술관은 200점 이상의 헬렌 슈예르프벡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걸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계단에서 넘어지는 사고로 평생 장애를 갖게 된 화가였지만 80대까지 활동하며 40여점 이상의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그녀의 자화상의 변천을 쭉 따라가보면 정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만년에는 표현이 단순해지고 텅빈 모습으로 표현되어 <핀란드의 뭉크>로도 불렸죠.
검은 배경의 이 초상은 그림에서 외부 요소를 제거해 완전히 독특하고 현대적인 표현에 도달한 만년의 대표작입니다. 미술관에서 그녀의 초기 사실적인 작품들을 함께 보면서, 얼마나 대담한 변화를 거쳐 여기에 도달했는지 알게 되어 더 놀라웠습니다. 풍경화, 초상화, 정물화에 능숙해 붓놀림으로 사과의 영혼을 포착할 수도 있었던 화가가 예술가로서의 후반기에 텅빈 표정의 자신의 얼굴을 검은 바탕 속에 그려 넣은 겁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서 그려진 가장 유명한 자화상일겁니다.
런던 왕립 예술 아카데미에서도 2020년 이 화가를 조명한 바 있고, 올해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입성을 앞두고 있습니다. 헬레네 슈예프벡의 첫 작품부터 마지막 자화상까지 포함하고 초상화, 정물화 및 풍경화를 포함한 약 60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성대한 전시입니다.
<침묵을 보다: 헬레네 슈예프벡의 그림(Seeing Silence: The Paintings of Helene Schjerfbeck)>라는 제목처럼 뉴욕에서 건너간 그녀의 침묵하는 자화상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국민 화가의 메트 입성에 핀란드인들도 무척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Helene Schjerfbeck [The Convalescent], 1888 ©Ateneum Art Museum




국경을 넘어서 홀로서기를 한 여성 예술가들





특별전 [국경을 넘다(Crossing Borders)] 전시 전경 ©김슬기



아테네움 미술관에서는 특별한 볼거리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특별전 <국경을 넘다(Crossing Borders)>(3월 7일–8월 24일)가 열리고 있더군요. 전시는 여성 작가 55명의 그림, 조각 및 드로잉을 대규모로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민나 히렌, 이다 실프버베르크, 알라 에르드만, 엘리자베스 제리초 바우먼 등 하나같이 낯선 이름들이었습니다.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 1800년대 유럽의 많은 여성 예술가들은 독일의 뒤셀도르프, 드레스덴, 뮌헨, 베를린과 같은 다른 나라의 도시로 여행을 떠나야 했습니다. 여성이 공부할 수 있는 예술 학교는 무척 드물고 문이 좁았기 때문입니다.



알마 에드만의 초상화 ©김슬기





여성으로는 풍경화를 그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많은 풍경화를 남긴 빅토리아 오베리 ©김슬기



이들의 인생을 건 여행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때로는 위험했으며 여성이 혼자 여행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은 작품의 주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풍경화 대신 여성에게 더 적합한 주제는 정물화 및 초상화였습니다. 실외보다 실내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더 쉬웠으니까요.

전시에 등장한 많은 용감한 예술가들은 헬레네 슈예프벡과 표현주의 화가 엘렌 시슬리프(Ellen Thesleff)와 같은 후기 여성 예술가들의 롤 모델이 되었죠. 북유럽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예술가와 그들의 관계를 조명하는 전시는 많은 연구를 통해 이들의 이동 경로와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은 관계도 밝혀내고 있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그들의 예술도 정말 흥미진진했습니다. 런던에 와서 첫 주에 만났던 영국의 여성 미술가 특별전이 생각이 나더군요. 유럽 미술관들은 정말 부지런히 미술사를 다시 쓰고 있었습니다.


런던에서 만나고 온 유럽 미술관 도장 깨기를 서울에서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신문 김슬기 기자가 유럽의 미술관과 갤러리, 아트페어, 비엔날레 이야기를 매주 배달합니다. 뉴스레터 [슬기로운 미술여행]의 지난 이야기는 다음 주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https://museumexpress.stib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