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환 기자]
▲ 영추문에서 마주 보이는 풍경. 예쁘게 물든 은행나무아래 다양한 사람들이 재미있다.
ⓒ 오창환
서울의 가을이 깊어가는 주말, 일요일마다 서울을 그리는 '선데이 서울' 어반스케쳐
스가 경복궁으로 향했다. 이번 주 주제는 '단풍'. 그중에서도 노란 은행잎이 절정인 경복궁 영추문 일대가 오늘의 스케치 무대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고궁박물관 마당이다. 마당을 따라 몇 걸음만 걸으면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는 그 나무를 마음속에 점
찍어두고 모임 장소인 영추문으로 향했다.
경복궁의 동쪽 문은 봄에 해당하여 봄 '춘(春)'자를 써서 건춘문(建春門)이라 하였고, 가을에 해당하는 서쪽 문은 가을 '추(秋)'자를 써서 영추문(迎秋門)이라 하였다. 경복궁에 근무하던 관료들이 일상적으로 출입하던 문으로, 바로 서촌으로 통하는 길이다.
영추
문은 말 그대로 하면 '가을을 맞이하는 문'이라는 뜻이니, 가을 스케치 장소로는 참으로 적절한 곳이라 하겠다.
▲ 영추문앞에 자리 잡은 선데이 서울 어반스케쳐스.
ⓒ 오창환
영추문에 당도해 보니 문 옆으로 이미 몇 명의 스케쳐들이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아 맞은편 은행나무를 그리고
있었다. 햇살은 눈부시게 맑았고, 하늘에는 먼지 한 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광객이 점점 늘어났다. 연인과 가족들, 어린아이와 노인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가을을 사진으로, 눈으로 담느라 분주했다.
나도 스케치북을 펼쳐 들었다. 길에는 자전거를 탄 무리들이 지나가고, 달리기 하는 사람들은 가을 공기를 가르며 달렸다. 은행잎은 이미 절정이었고 길바닥은 노란 카펫처럼 깔렸다. 사람들은 그 위에서 포즈를 잡고 연신 셔터를 눌렀다. 영추문 앞의 짧은 길목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빛나던 순간이었다.
▲ 왼쪽은 영추문 사진이고 오른쪽은 영추문 건너편 전경이다.
ⓒ 오창환
오전 10시부터 정오까지 두 시간 정도 그림을 그렸다. 대상은 같지만, 그리는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은 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구경했다. 다들 그림이 멋지다고 칭찬해 주어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보니, 필리핀,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림 앞에서는 많은 대화가 필요 없다. 그저 엄지 척과 미소로도 충분히 통한다.
스케치를 마친 뒤 우리는 서촌 골목으로 향했다. 분위기 있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을 먹었다.
▲ 고궁박물관 마당에 있는 거대한 은행나무. 수많은 사람들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즐기고 있다.
ⓒ 오창환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인파가 더욱 늘었다. 서울의 단풍을 보러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다니, 놀랍기까지 했다. 특히 외국에서 온 젊은이들은 은행잎이 두껍게 쌓인 차도 바닥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고궁박물관 옆, 처음 보았던 그 은행나무 아래로 갔다. 여기도 인산인해다. 나는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오전에 한 장을 그렸으니 이번에는 좀 더 과감하게 밑그림 없이 수채화로만 그림을 그렸다. 은행잎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햇빛은 잎사귀 사이로 금빛 조각을 뿌렸다.
은행나무도 보고 사람 구경도 하며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오후 4시. 날씨가 금세 싸늘해졌다. 함께 그리던 스케쳐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오늘의 스케치 모임을 마쳤다. 한국에서 가을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수백 년의 시간을 품은 경복궁 영추문 앞에 심어진 노란 은행나무를 감상하는 것이다. 물론 그 은행나무를 '그린다면', 그것은 한국의 가을을 즐기는 더 좋은 방법일 것이다.
▲ 왼쪽은 고궁박물관 마당의 아름드리 은행나무. 오른쪽은 개성인 가득한 선데이 서울 어반스케쳐스의 그림들.
ⓒ 오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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