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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email protected]
일러스트 = 토끼도둑 작가
사실상 양육자는 에치치에게 언제나 사고 치지 말라고 소리치지만 사실상 양육자도 만만치 않게 사고를 치기에 에치치 쪽도 감시를 관두지 못한다. 사실상 양육자가 야무지고 얌전하고 무엇보다 말을 똑바로 한다면 에치치도 지금처럼 상담실 문에 귀를 대고 있지 않을 것이다. 놀이치료 선생님과 사실상 양육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엿듣지 않고 대기실로 가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침묵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기실은
게임몰릴게임 짧은 해방기를 맞았다. 선생님들이 방에서 애들을 내보내고 대기실에 있던 보호자들을 방으로 불러들여 두 집단을 배턴 터치시켰다. 대기실에서 보호자들이 사라지자 아이들은 아이패드를 보며 더없이 조용하고 순순해졌다. 한 아이만이 하드커버 동화책으로 정수기를 부술 듯 내리칠 뿐이었다.
에치치도 할머니만 아니면 당장 대기실로 달려가 아이패드 화면에
릴게임사이트추천 눈을 고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어려서부터 에치치를 키워 주었기에 할머니를 챙기는 것은 에치치의 몫이었다. 에치치는 할머니를 사실상 양육자라고 불렀는데 아빠와 엄마가 종종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살면서 많은 어른이 에치치의 부모와 통화하길 바랐다. 우리 태권도장에, 우리 유치원에, 우리 바둑교실에, 이 아이는 더 이상 다닐 수 없다고 통보하기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위해서였다. 그럴 때마다 에치치의 부모는 ‘이분께 연락해 주세요. 이분이 아이를 키우는 사실상 양육자입니다’라고 적은 메시지와 함께 할머니의 연락처를 전송했다.
“선생님, 죽고 싶어요.” 닫힌 문 너머에서 할머니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성.” 뒤이어 선생님의
오션릴게임 목소리가 들렸다. “문에서 귀 떼요. 어른들 얘기할 때 엿듣는 거 아니에요.” 에치치는 숨을 죽였다. 절대 들키지 말아야지. 그런데 옆을 보니 종이컵이 수북했다. 어느새 대기실에 가 있었던 것이다.
“너 이제 혼난다.” 정수기를 동화책으로 내리치던 아이가 종이컵을 계속 뽑은 에치치를 약 올리며 말했다.
“나 언제 여기
릴게임종류 왔어?” 에치치는 다시 상담실 문 앞으로 가며 생각했다. ‘또 순간이동을 했군.’ 입에 종이컵이 물려 있었다. ‘또 마음의 토를 해 버렸어.’ 정글짐을 올려다보며 절대 올라가지 말아야지 했는데 다음 순간에 깁스를 차고 있는 식이었다. 칠판을 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 정신을 차리니 친구들의 다리를 만지며 책상 아래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여기 있는 줄 알았는데 저기 있는… 언젠가 선생님이 충동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충동은 마음의 토예요. 뱉으면 안 돼요. 꾹 참아야 해요. 친구한테 씨팔이라고 하고 싶은 것도 뱉지 말고 머금고 있어야 해요.” ‘탁월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에치치는 생각했다. 그동안 자신에게 충동이라는 단어를 내뱉은 어른은 많았지만 이해시킨 사람은 선생님뿐이었다.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속으로 ‘탁월해!’ 하고 외쳤다. 아이는 할머니와 선생님을 사랑했다.
“선생님, 제가 쟤 때문에 우울증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할머니의 울음 섞인 말이 이어졌다. “지난 주말에 온 가족이 외식을 하러 가는데 애가 또 차도에 뛰어들었어요. 선생님 저는 이제 정말 살기가 싫어요. 너무 힘들어요. 애가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아요. 선생님, 신고하셔도 되는데요, 제가 애를 변기에 묶어 놓은 적이 있어요. 포로처럼 묶어 놨어요. 바닥에 애 발바닥 스치는 소리를 한 번만 더 들으면 미칠 것 같아서.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깜깜한 화장실 바닥에 앉아 울지도 않고 혼자 디즈니 한 편을 뚝딱 해치웠어요. 혼자 노래하고 연기하고 묶인 몸의 몫까지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는데 선생님, 저 치매 걸리고 싶어요. 정신 나가고 싶어요. 다 놔버리고 싶어요. 에치치 병이 고쳐지긴 하는 거예요? 솔직히 어떨 때는 애가…”
“나오세요.” 선생님이 고개를 숙이곤 에치치에게 말했다. “선생님 발 만지지 말고 올라오세요.” 에치치는 이제 상담실 책상 아래 있었다. 대기실에 있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언제 여기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바닥이 아주 지저분했다. 지우개가루투성이였다. 선생님은 탁월하지 않았다. 거짓말쟁이였다. 선생님은 에치치가 화장실에 다녀오면 손 검사를 했다. 물만 묻히고 손 닦았다고 거짓말할까 봐 손바닥에 코를 대고 비누 향을 맡았다. 그래 놓고 자기는 발밑의 지우개 똥도 치우지 않고 아주 더럽게 사는 것이었다.
“얘가 진짜 왜 이래. 빨리 나오지 못해?” 할머니가 책상 아래로 내려와 손주의 다리를 잡아당겼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안 들어온다고 약속해 놓고 왜 들어와. 왜 갑자기 뛰어들어와 책상 아래로 기어들어 가느냐고. 할머니 죽는 꼴 보고 싶어? 아빠 불러야 정신 차릴 거야?” 할머니가 울면서 손주를 끌어내려 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할머니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자 아이가 몸을 돌려 할머니의 허리를 다리로 감쌌다. 할머니의 목을 양팔로 단단히 감곤 집요하게 매달렸다. “허리, 허리, 할머니, 목, 목! 할머니 목 부러져!”
“내가 먼저 할 거야.” 에치치가 말했다. “내가 먼저 할 거야.” 선생님이 아이를 떼어내려 했지만 머리만 책상에 부딪혀 작은 군인 모형들만 우르르 떨어뜨릴 뿐이었다. “내가 먼저 훈육할 거야. 할머니 잘못했어. 나 에치치 아니고 에이디에이치디인데 할머니 영어도 모르면서 나한테 영어 하라고 해. 할머니 사고 쳤으니까 혼나야 돼. 선생님도 사고 쳤어. 혼나야 돼.” 할머니를 풀어준 아이가 선생님에게 달려들어 머리로 들이받았다. “금쪽이 선생님이 어른은 아이한테 존댓말 쓰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선생님 나한테 ‘요’ 자 붙였어. 혼나야 돼.”
얼마 후, 연락을 받은 의사가 진료를 중단하고 올라와 에치치를 장엄하게 쫓아냈다. 아이는 대기실에 멍하니 앉아 어른들의 처분을 기다렸다.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결승선을 끊고도 멈추지 못해 벽에 부딪힌 사람처럼 걷잡을 수 없이 흥분하고 나면 탈진해 고요해졌다. 졸음이 밀려오는 가운데 이제껏 자신을 버린 곳들을 떠올렸다. 기운을 빼준다는 활동적인 곳들과 기운을 잠재워 준다는 차분한 곳들. 다음 주부터 탁월해 선생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었다. 대기실 정수기에서 종이컵을 뽑아 끄트머리를 깨물어 왕관 모양의 레이스를 만드는 일도 끝이었다.
그때 복도에서 책이 날아왔다. 이어서 에치치와 같은 진단을 받은 아이가 기어 왔다. 언제나 바닥을 기어 다녀 꿈틀이라 불리는 애였다. 꿈틀이가 에치치의 발치에서 얼굴에 꽃받침을 하곤 말했다. “내 옆에 누워. 같이 책 읽어.” 에치치는 순순히 꿈틀이 옆에 배를 깔고 누웠다. “그래, 우리 종족 최고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자.” …교장 선생님이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유관순과 학생들은 학교 담을 넘어 달려나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어린 안중근은 절벽의 꽃을 꺾으려다 죽을 뻔했습니다. 모두가 어린 중근을 두고 무모하다고 말했지만 그런 무모함에 의(義)가 더해져 총을 꺼냈던 것이 아닐까요? … 잔 다르크가 깃발을 들고, 튀어 나갔습니다!
“이분들이 우리의 위대한 선조야.” 꿈틀이가 책을 덮으며 말했다. 겉에 ‘우리들의 튀어나가는 영웅들’이라는 굵은 글씨의 견출지가 붙어 있었다. 견출지를 떼자 진짜 제목이 나타났다. 책의 본래 이름은 ‘어린이 마음의 병 시리즈-ADHD 편’이었다.
“커스텀 북 알아?” 꿈틀이가 말했다.
“커스턴 북? 컨서타 북?” 에치치가 물었다.
“내 마음대로 만드는 책. 제일 싫어하는 책을 제일 좋아하는 책으로 바꿨어.” 여러 위인전에서 위인들이 튀어나가는 순간만을 오려 만든 책이었다. “지금 당장 여기 불이 난다면” 꿈틀이가 말했다. “누가 우리를 구할 것 같아? 누가 겁 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닐 것 같아? 누가 방정맞게 아무 데나 막 들어가서 엄마 나오라고 할머니 나오라고 선생님 나오라고 시끄럽게 굴 것 같아? 너랑 나야. 우리뿐이야.” 잔 다르크와 안중근과 유관순. 튀어나가는 영웅들의 후손.
친구의 상상을 이어받은 에치치의 머리에서 상담소가 불타기 시작했다. 대기실의 안내데스크 합판에서 시작된 불길이 방들을 차례로 잡아먹으려 거세게 이동했다. 방에 있는 사람들은 코만 벌렁거릴 뿐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곧 그들은 방에 갇혀 불타 죽을 것이다. 모두가 꼼짝 못 할 것이다. 두려움에 마비되어 얼어붙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과 꿈틀이만이, 아니 에치치 자신만이, 세 살 때 베란다 창문에 올라가 창틀을 붙잡고 까마득한 아래를 호기심 어리게 바라보던 자신만이, 기름이 튀는 프라이팬에 작고 도톰한 손바닥을 올려 보았던 자신만이, 겁을 모르는 바람에 충동에 겨워 발광하며 사람들을 구할 것이었다, 그러니 본의 아니게 우리를 구할 에치치에게 경배를.
갑자기 에치치의 마음이 한없이 밝아졌다. 최악의 날이 최고의 날로 변했다. 몸 안의 흥분이 지글지글 끓고 모든 것이 희망차고 세상은 최고로 넓은 길을 질주하라며 아이에게 내보였다. 에치치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인도에는 사람이 바글거리고 8차선 도로에는 차들이 빠르게 달렸다. 불이 나면 모두 내가 구할 사람들. 세상이 아이를 환영하며 팔을 벌렸다. 세상 속으로 튀어 나가려는 순간 손들이 튀어나와 아이를 붙잡았다. 아이가 차도에 뛰어들어 죽지 않도록.
‘영특한 생각’을 가진 金처럼 귀한 금쪽이들… 씩씩하게 살아냈으면■ 작가의 말
소설 속 ‘에치치’는 우리 사회에서 소위 ‘금쪽이’라 불리는 아이들이다. 소설가 이미상은 “‘금쪽’의 본래 뜻은 ‘작은 금조각같이 귀하다’라는 것”이라며 “주로 금쪽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만, 우리가 문제라고 보는 일면에 좋은 점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금조각같이 귀한’ 재능을 가진 에치치는 물론 사회와 타협하며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깎여나간 조각 중엔 ‘할머니가 잘못했다’고 외치는 당돌함은 물론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의협심 같은 것, 말하자면 “영웅의 자질”도 포함된다. 그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 작가의 예상은 이렇다. “신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시련을 겪을지도 모르죠. 그래도 나와 동류인 위대한 선조들을 떠올리며 “나는 사람을 구할 사람이야”라고 믿으며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작가는 2018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 ‘잠보의 사랑’ 등을 펴냈다. 젊은작가상 대상과 문지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신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