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수령 나무로 불리는 조몬스기. /사진 최인한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 12월 첫째 주. 야쿠시마(屋久島) 조몬스기(繩文杉) 종주에 다시 도전했다. 12월 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서 가고시마공항까지 비행기를 탄 뒤 다음 날인 2일 아침 가고시마를 떠나 야쿠시마로 향했다. 가고시마항에서 페리를 타고 4시간 걸려 야쿠시마 미야노우라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꼬박 하루 반이 걸렸다. ‘신비의 섬’ ‘신들의 섬’으로 불리는 야쿠시마는 규슈 최남단 오스미반도에서 60㎞ 남쪽에 있는 외딴섬이다. 제주도 4분의 오션파라다이스사이트 1 크기이며 1만여 명이 살고 있다. 이 섬 중앙에는 일본 ‘백명산’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미야노우라다케(1936m)를 비롯해 해발고도 1500m를 넘은 고산이 즐비해 ‘해상 알프스’ 로 불린다. 야쿠시마는 1993년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자연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다. 필자가 방문한 5박 6일간 야쿠시마 평균기온은 8~20도 정도로 늦가을과 사이다쿨바다이야기게임 비슷했다. 이번 야쿠시마 자연 탐방은 운이 좋았다. 네 번째 도전 끝에 조몬스기를 봤고 야쿠시마를 대표하는 야생동물인 야쿠자루(원숭이), 야쿠시카(사슴), 우미가메(바다거북)를 모두 만났다. 조몬스기 종주를 마치고 숙소인 사마나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무지개도 여러 차례 떴다. 지난 5박 6일간의 야쿠시마 탐방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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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한 -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숙명여대 미래교육원 강사,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세계 최고 수령 나무 조몬스기야쿠시마는 오기도 힘들지만, 릴게임손오공 조몬스기를 찾아가는 길은 더욱 험난하다. 미야노우라다케의 깊은 산속에 숨어 있기 때문에 등산로 입구에서도 왕복 22㎞ 거리다. 평소 산행으로 단련된 성인도 8~10시간 정도 걸린다. 게다가 폭우나 눈이 오면 입산 금지 조치가 자주 발령된다. 지난 2월에도 전날 밤 내린 폭설로 갑자기 등산로가 폐쇄돼 산행을 포기해야 했다. 12월 3일 오전 4시쯤 숙소에서 바다이야기무료 주먹밥을 먹은 뒤 점심용 도시락을 챙겨 출발했다. 안보(安房)마을에서 산으로 향하는 임도를 타고 아라카와구치에 도착하니 오전 5시가 조금 지났다. 깜깜한 새벽이지만 조몬스기를 보려는 등산객이 벌써 몸을 풀고 있다. 조몬스기 종주는 아라카와(荒川) 등산로 입구에서 시작한다. 조몬스기는 1967년 발견 당시 수령 7200년으로 추정됐으나, 정확한 수령을 놓고 약간의 이견이 있다. 그럼에도 ‘세계 최고 수령 나무’라는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각국의 트레킹 애호가를 야쿠시마로 찾아오게 하는 가장 상징적인 존재다. 야쿠시마를 알리는 포스터에는 어김없이 눈 쌓인 설경을 배경으로 하는 조몬스기가 등장한다.8㎞ 좁은 철도 구간 이어 급한 오르막길고대하던 조몬스기 등정의 시작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일행과 체조로 가볍게 몸을 푼 뒤 헤드 랜턴을 켜고 오전 5시 30분쯤 산행을 시작했다. 지난 2001년 토롯코(물자 수송용 좁은 철도) 길이 조몬스기로 가는 공식 등산 루트로 확정됐다. 출발 후 8㎞ 구간은 철길을 따라가는 좁은 길이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긴 철교를 건넌다. 어두워서 계곡 아래가 잘 보이지 않지만,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 소리로 제법 공포감을 느낀다. 철도 침목 위에 널빤지가 걸려 있지만, 그 틈새 아래 까마득히 먼 밑바닥에 강물이 콸콸 흐르고 울퉁불퉁한 바윗돌이 희미하게 보인다. 철교를 건너자, 20m 길이의 터널이 나타난다. 1920년대 중반 사람이 수작업으로 뚫은 터널이다. 굴속에서 뭔가 으스스한 기운과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고스기다니초등학교 터를 지나서 산다이스기(三代杉) 조금 못 미친 고스기다니산장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걷기 시작한 지 1시간 반쯤 지나자, 먼동이 튼다. 주변의 울창한 숲과 바위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길을 걷다 보니 뾰족한 작은 텐트가 보인다.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임시 화장실이다. 조몬스기로 가는 마지막 3㎞ 급경사토롯토 길이 끝나는 지점에 급경사 등산로가 기다린다. 양손과 두 발을 사용해야 할 정도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오키나스기(翁杉)가 보이는 구간까지는 주위를 둘러볼 여유가없을 만큼 ‘난코스’가 이어진다. 현지 등산객에게 물으니 “에도시대 사람은 이런 급경사면을 무거운 스기를 짊어지고 오르내렸다” 고 한다. 조금 더 올라가 수령 3000년으로 알려진 ‘윌슨그루터기’를 만나 잠시 피로를 푼다. 나무 그루터기에서 위쪽을 쳐다보면 하트 모양 하늘이 보여 등산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조몬스기까지는 급경사 오르막길이지만 몇 년 전 목제 계단이 만들어져 오르기가 수월해졌다. 등산로가 잘 정비돼 초보자도 크게 헷갈리지 않고 목표지를 찾을 수 있다.
조몬스기 위용에 저절로 고개 숙여져산행을 시작한 지 4시간쯤 지나자, 수령 2000~3000년으로 추정되는 니오스기, 다이오스기가 잇따라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더 이동하자 세계 자연유산 등록 간판이 나타난다. 마침내 기다리던 조몬스기가 멀리 보인다. 나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견학로로 올라가니 조몬스기의 10m 앞에 도착했다. 이 견학 코스는 방문객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목책이다. 1시간 전부터 내리던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비옷을 입은 채 조몬스기를 관찰했다. 웅장하고 신비로운 나무를 천천히 둘러보는 길지 않은 시간에도 두세 차례 날씨가 바뀐다. 잠시 비가 그치자 조몬스기가 또렷하게 보이는가 싶더니, 금방 산안개가 끼며 뿌옇게 모습을 감춘다. 조몬스기는 보통 삼나무와 달리 껍질이 흰색이며 울퉁불퉁한 표피로 인해 긴 세월을 견뎌내고 살아남은 강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조몬스기에 절을 올린다. 조몬스기를 만난 뒤 돌아오는 하산길은 아주 순조롭다.




(위) 야쿠시마 남쪽 해안에서 만난 우미가메. (아래) 야쿠시마 산길에서 만난 야쿠자루. /사진 최인한



야쿠자루·야쿠시카·우미가메까지 만나12월 4일에는 야쿠시마의 섬 일주 도로 가운데 최근 길이 열린 서부 임도를 따라 탐방했다. 야쿠시마는 본섬에서 멀리 떨어진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고유종이 많다. 이 섬을 대표하는 야생동물은 야쿠자루, 야쿠시카, 우미가메 등 3종이다. 토양이 척박해 동식물의 성장이 더뎌 야생동물도 본섬 동물에 비해 작은 편이다. 야쿠시마에는 대략 야쿠시카 3000마리, 야쿠자루 3000마리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한다. 야쿠자루는 니혼자루(일본원숭이)의 한 종류로 본섬에 사는 원숭이와 기본 습성은 같다. 30여 마리 정도가 무리로 모여 살고 몸집이 작고 털이 긴 게 특징이다.야쿠시카로 불리는 사슴은 본섬 사슴보다 작고 귀엽다. 이날 서부 임도에서 여러 차례 야쿠자루와 야쿠시카 무리를 만났다. 이들은 좁은 산길 도로 가운데 무리지어 있다가 차량이 와도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걸어서 다가가도 딴청을 피운다. 사슴은 보통 사람을 보면 달아나는데 야쿠시카는 도망가지 않고 사람 주위를 맴돈다. 산길을 내려와 섬 남쪽 해변에서 우미가메를 만났다. 겨울철은 산란기가 아니어서 우미가메가 해안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데 이날은 여유롭게 헤엄치는 한 마리를 발견했다. 여러 가지로 행운이 잇따르는 야쿠시마 자연 탐방길이다. 인간은 유한하고 자연은 영원하다외딴섬 야쿠시마에는 자연 생태계가 그대로 남아있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수천 년 된 삼나무와 야생동물, 바다에는 우미가메 등 바다 생물이 평화롭게 산다. 이번 야쿠시마 탐방에서 지구의 주인은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우리가 모르는 깊은 산속과 바닷속은 신비로운 생명체가 진짜 주인이다. 인간이 욕심을 부리지 말고 겸손하게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는 진실을 새삼 일깨워준다.인생을 살아가면서 목표로 하는 일은 한번 만에 되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조몬스기를 보기 위해 여러 차례 도전 끝에 뜻을 이뤘다. 도전하고 인내하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이 야쿠시마의 순수한 자연을 부디 망치지 않기를 기원하며 야쿠시마를 떠났다. 조몬스기를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