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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표정을 빠진 것이다. 단정한 미용실을 간단하다.“책 고픔 채워준 인천, 소년시절 나와 만나려 늘 혼자 갑니다”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가천대 석좌교수. 2025.10.13 /조재현기자 [email protected]



작가에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일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가천대 석좌교수)는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으로 손꼽히는 화가다. 그를 향한 대중의 사랑은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트 바젤(Art Basel), 피악(FIAC) 등 세 보험비 계 유수의 아트페어와 세계 유명 비엔날레가 그의 활동 무대다. 대중의 사랑을 받으면서 평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 이유가 뭘까. 김병종의 작품세계를 보면 눈치챌 수 있다. 그의 작품과 만나면 눈이 먼저 가고, 뒤이어 마음 따라간다. 그가 의도한 것이든 그렇지 않았든. 그는 전통과 현대, 구상과 비구상을 끊임없이 넘나들며 때로는 평단을, 때로는 대중의 전세자금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남원서 태어나 중학생때 인천으로 이사
“책방 많아 읽는 재미, 학교 공부도 뒷전”
집보다 시립도서관에서 더 오랜 시간
“향나무 보이는 창가 좋아 통학하듯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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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가천대 석좌교수. 2025.10.13 /조재현기자 [email protected]



작품뿐 아니라 그의 태도에서도 매력이 묻어난다. 그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 파산폐지 기 위해서라면, 너무나 유쾌하게 스스로를 ‘환쟁이’라 칭하고 자신의 활동 무대를 ‘업소’라고 부르며 스스로를 낮출 줄 아는 작가다. 그림뿐 아니라 글에서도 빛을 발한다. 대학 시절 전국대학생미전 대통령상을 받아 두각을 나타냈고, 주요 일간지 신춘문예에서 평론과 희곡으로 등단했다. 범인(凡人)이 보면 신기함과 부러움이,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 궁금증 앞으로 집값 을 풀고 싶어 김병종을 만났다.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안산에 있는 더헤븐 리조트 더헤븐CC 클럽하우스 접견실에서 그를 만났다. 접견실에는 그의 작품 ‘풍죽’이 걸려 있었다. 그와 친분이 두터운 이곳 권모세 회장, 이성덕 이사장 부부와 자주 만남을 갖는 장소라고 한다. 권모세 회장 부부는 배대용 건축가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이 건물을 세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건축물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가 인천에 머문 시간은 1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인천은 그에게 ‘두 번째 성장’의 바탕이 된 장소다. 그는 전북 남원 태생으로 1969년 초겨울,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될 시기 기차를 타고 처음 인천 땅을 밟았다.
18만명 인구가 살던 고향 남원에서 40만명이 넘는 인천으로 온 소년에게 인천 곳곳에 있던 책방들이 눈에 들어왔다. 남원에는 문화시설이라고 해 봐야 서점 두 곳과 극장 몇 개가 전부였다.
“여기 와서 거의 헌책방에서 살다시피 했죠. 30여개 헌책방을 순례하면서 재미가 없는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어요.”
읽을거리에 굶주려 있던 문학 소년이었던 그는 학교가 끝나면 배다리 헌책방 한 곳에 죽치고 앉아 책을 읽고, 그것도 부족하면 몇 권씩 사오기도 했다. 그는 집현전과 한미서점 등의 간판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간판이 걸려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척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옛 인천시립도서관






이때 경험 영향 “그림은 밥, 글은 반찬”
글쓰기도 애정… 두 차례 신춘문예 당선
“그림 신체적 행위, 글 고도집중의 행위”


율목동에 있던 옛 인천시립도서관도 그의 읽기에 대한 허기를 채워줄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는 비교적 그때 풍경을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일본인 목조주택 별장 근처였어요. 일본인이 심었다는 마당의 향나무도 그대로였고,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일본식 현관 너머 너른 서재 등이 그대로였어요. 인천시는 이 곳을 도서관으로 꾸며 일반에 공개했는데, 저는 그 고목이 된 향나무가 보이는 창가의 넓은 책상을 특히 좋아했죠. 학교에서 오면 거기 앉아 책을 읽고는 했어요. 나중에는 아예 학교를 며칠씩 빼먹고 통학하듯 도서관으로 가고는 했어요.”
김병종은 집보다 목조 건물 시절 인천시립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오래된 나무 냄새와 책걸상이 얌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언제든 손으로 쉽게 뽑아볼 수 있는 책이 다양하게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는 목조 건물이던 시립도서관의 흔적이 사라진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학교를 빼먹은 날이면 돌계단 아래 일본식 절 해광사를 거쳐 큰 길가에 있던 ‘세계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고는 했다. 그가 기억하기로 관객이라고는 서너 명이 전부였다. 어두운 영화관에서 밖으로 나오면 눈부신 햇살에 어찔했다. 책가방을 들고 하교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의 인천고 재학시절 즈음이다.



김병종의 대학졸업 전시장에 찾아온 소설가 최명희.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최명희는 소설분야에, 김병종은 희곡분야에서 각각 수상했다. /김병종 제공


이때 경험은 그가 미술뿐 아니라 글쓰기로 이름을 알리는 데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한 번 받기도 힘든 신춘문예에서 두 차례나 상을 받았다. 평소 ‘그림은 밥이고 글은 반찬’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다. 그는 “(그림과 글은) 일란성 쌍생아처럼 같이 붙어 다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는 것과 쓰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굉장한 신체적 행위입니다. 붓질을 하는 것이, 특히 대작을 할 때에는, 하루 종일 (신체를)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 글을 쓰는 것은 고도로 집중된 행위입니다. 하나가 풀어내는 일이라면, 다른 하나는 죄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림만 그리다 보면 지적 공허감 같은 것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림은 ‘피지컬’을 쏟아내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시 책을 읽고 글쓰는 쪽으로 오면 남의 서사를 기억해보는 일이고요… 이걸 되풀이하는 겁니다.”
김병종은 숭의동 109번지와 율목동 등지에서 살았다. ‘옐로우 하우스’라고 불리던 유곽의 불야성이 그의 기억에 남아 있다. 율목동 살던 시절 집 근처에 ‘서울대 출신 여의사’가 개업했다는 한 산부인과 병원이 화제였다. 이길여 산부인과였다.

율목동 옛 집 근처에 ‘이길여 산부인과’
보증금 없고 ‘야반도주’ 산모 그냥 보내
“어머니가 그런 분 본받아야 말씀하셔”
서울대 미대 학장 재직때 소중한 인연







2024년께 이길여 가천대 총장과 함께. /김병종 제공



그의 기억에 이길여 산부인과는 세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첫째 엘리베이터가 있는 현대식 건물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인천에 엘리베이터는 흔치 않았다. 그는 그것이 너무도 신기해 그곳을 지날 때마다 현관 쪽에서 병원 안쪽을 구경하곤 했다. 그리고 하얀 가운을 입은 당차게 보이는 여의사가 병원 스태프를 이끌고 분주히 오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길여 산부인과는 최첨단 초음파 진단 장비를 갖추고 있었고, 보증금이 없어도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으로 이름을 알렸다. 병원비가 없어 초저녁에 아이를 낳은 산모가 새벽녘에 핏덩이를 안고 도망쳐도 붙잡는 사람이 없었고, 병원 수위가 그러한 장면을 목격해도 오히려 의자를 돌려 보지 못한 척했다는 것이었다.


50여년간 매달 한 두 차례 꼭 인천 찾아
“소년·청년시절 감성·방황 그대로 남아”
“지역 문화예술 지켜나가는 이들 존경”


김병종은 그의 어머니를 통해 이러한 이야기를 접했다. 그의 모친은 “그런 일이 원장이 시키지 않는다면 어찌 가능한 일이겠느냐. 너(김병종)도 그런 분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당시 이길여 원장은 그가 다니던 인천고등학교 내에서도 늘 이야깃거리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시기가 아니었고, 그가 재학 중이던 인천고는 남자 고등학교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학교 교사들이 늘 “여자도 가는 서울대인데 사내인 너희들이 못 간다면 말이 되겠느냐, 그런 분을 본받아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통에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 김병종의 이야기다. 그는 이길여 산부인과가 현재 ‘이길여 신화의 탯자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김병종과 이길여 가천대 총장과의 인연은 퍽 깊다. 1969년 김병종과 어머니가 인천으로 올라와 처음 정착해 머물던 곳이 옥련동이었다. 그가 살던 곳은 현재 가천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김병종이 서울대 미대 학장을 하던 2000년 무렵 이길여 가천대 총장과 만남의 시간을 자주 갖게 됐다. 이 총장이 마침 서울대 의대 동창회장을 맡아 공식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일이 빈번했다. 이 무렵 김병종은 문인이자 학자로 문체부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선생과 이길여 총장과 함께 오찬이나 저녁 만찬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병종은 “두 분 모두 진취적이고 창의력이 뛰어난 리더여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고 그는 기억했다.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가천대 석좌교수. 2025.10.13 /조재현기자 [email protected]


김병종의 부친은 그가 초등학생 시절 세상을 떠나셨다. 조선일보 기자였던 큰형, 누이가 있었다. 멀리 남원에서 와 인천에 정착한 계기는 가장 역할을 하던 형님의 의지였던 것으로 그는 기억하고 있다. 그의 기억 속 옥련동 풍경은 송도역이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사라진 수인선 협궤열차가 멈춰서는 곳이었다. 어느 날 배우 문희가 나오는 영화 촬영이 송도역에서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려와 하교 후 책가방을 집에 던져 두고 구경을 갔던 경험도 그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이다. 집 주변 배밭에서 배꽃이 흩날릴 때는 그 어떤 풍경보다 장관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지금도 가슴이 저릿하도록 그리워지는 풍경들”이라고 했다.
“종종 학교에 가는 대신 철커덕거리며 움직이는 느린 기차를 타고 석양과 염전의 풍경을 보곤 했는데, 지금 너무 그립습니다. 왜 그리운 것들은 그토록 신속하게 사라져버리는지, 지금이라도 인천시가 수인선 열차를 복원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980년대 어느 날 작업실에서 작업 중인 김병종. /김병종 제공


그는 지금도 많게는 한 달에 한두 차례 홀로 인천을 찾는다. 그가 외국에 머물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지난 50여년을 그렇게 보냈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끊임없이 인천을 찾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만의 이러한 내밀한 사연이 얽혀 있어서죠. 첫 고향이 유년 시절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면 인천은 내 두 번째 고향입니다. 내 소년과 청년 시절 감성과 방황 그리고 다양한 추억들이 기억 속 창고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인천이거든요.”
그는 도시가 성장하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문화인데, 인천이 그렇지 못해 늘 아쉽다고 한다. 특히 척박한 지역 여건임에도 꿋꿋이 인천의 문화예술을 지키는 이들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과 심정구 전 선광문화재단 이사장, 지역 청년 미술가들을 후원해온 이경호 영림목재 회장, 최병국 전 인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등이 있어 감사하다는 것이 그의 마음이다.
“문화는 도시의 모세혈관과 같아요. 그 모세혈관이 제 역할을 해야 도시가 건강하게 성장합니다.”

[약력]
▲1953년 전북 남원 송동면 출생
▲인천고등학교 졸업, 서울대 미술대학 및 대학원 동양화 전공
서울대 미술대학 학장, 서울대 조형연구소장, 서울대 미술관 관장
▲동아일보·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81), 미술기자상(1989), 한국미술작가상(1991), 녹조근정훈장(2018), 대한민국문화훈장(2014) 등
▲서울·파리·시카고·브뤼셀·도쿄·오사카·바젤 등 개인전 수십회
FIAC, 아트 바젤, 베를린, 마이애미, 두바이 등 아트페어 다수 참가
베이징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방글라데시 비엔날레 참가
▲대영박물관, 로열온타리오뮤지엄, 국립현대미술관, 청와대 등 작품 소장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개관(2018년)
▲화첩기행(전5권), 시화기행(전2권) 등 30여권 저서 출간








/김성호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