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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수 기자]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코스피 급등’과 ‘환율 불안’이라는 ‘이중 딜레마’에 빠졌다.
코스피가 급등하면 포트폴리오에서 국내주식 비중이 크게 증가하는 만큼 비중 조절을 위해 매도 압력이 높아진다. 이를 피하고자 해외투자로 시선을 돌리자니 최근 급등하는 원·달러 환율을 더 자극할 우려가 있다.
여기에 한·미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의 환헤지 활용을 자제하기로 합의하면서 국민연금이
운용 전략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분석이다.
(사진=연합뉴스)
코스피 급등에 국내주식 비중 확대…‘매도 압력’ 부담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수익률은 지난달 말 기준 연초 대비 16%로 집계됐다. 대체투자를 제외한 단순 금융자산 기준 수익률은 19%로 더 높다.
지난 8월 말 기준 잠정 수익률(8.22%)과 비교하면 불과 두 달 새 2배로 뛰었다. 지난 9월 이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형 반도체주 중심으로 국내 주식이 급등한 결과다.
특히 국내주식 수익률이 ‘80%’에 육박하면서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크게 끌어올렸다. 각 자산들의 지난 10월 말 수익률을 보면 △국내주식 77% △해외주식 19% △해외채권 3% △국내채권 2% 순이다.
이날 마감한 코스피지수(4150.39포인트)는 지난달 말(4107.50포인트)보다 약 1% 더 상승했다.
다만
이로 인해 국민연금은 ‘딜레마’에 빠졌다. 국민연금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국내주식 목표치가 정해져 있는데, 코스피지수가 4000선을 돌파하면서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평가금액이 빠르게 불어났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자산군별 목표 비중에 따라 기금을 운용한다. 내년도 기준으로 국내주식 목표 비중은 14.4%다. 다른 자산의 목표 비중은 △해외주식
38.9% △국내채권 23.7% △대체투자 15.0% △해외채권 8.0% 순이다.
그런데 지난 7월 말 기준 국민연금기금의 국내주식 투자 규모는 199조6360억원으로, 기금자산 내 금융부문 자산(1303조810억원)의 15.3%를 차지한다.
코스피지수가 지난 7월 말 대비 크게 오른 만큼 국내주식 비중은 더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단순 계산하면 국민연금의 자산군별 목표 비중을 맞추기 위해 내년에는 지난 7월 말보다 국내주식 비중을 0.9%포인트(p)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향후 코스피지수가 4300~4500포인트까지 오르면 국민연금기금 국내주식 비중에 한도가 다 차서 매도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대량 매물 출회로 지수 급락을 초래할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측은 “국민연금기금 중기자산배분은 매년 5월경 진행되지만 리밸런싱은 기금운용본부가 규정에 따라 수행한다”며 “아직 국내주식 리밸런싱(자산 비중 재조정) 여부를 언급하는 것은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기금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향후 국내주식 투자 비중이 줄더라도 절대적 투자 액수는 늘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투자 늘리면 ‘환율 상승’ 자극…운용 전략에 제약
자산별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국내주식 매도 대신 해외투자를 늘리는 방법도 있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원·달러 환율이 최근 1460원을 돌파하며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2.4원 오른 1465.7원이었다. 정오 무렵에는 잠시 1470.0원으로 상승,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최근 1년간 원·달러 환율 추이 (자료=구글)
국민연금은 대규모 해외투자를 하는 핵심 달러 매수 주체 중 하나다. 국민연금이 환헤지 없이 신규 해외자산 투자를 늘리면 달러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환율 상승 압력을 가중시킬 수 있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작년 12월 서울시립대에서 열린 한국국제경제학회 동계학술대회 기조연설에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가 커져 외환시장 영향력이 크게 증대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거주자 해외투자에서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9%까지 상승했다”며 “이는 외환 순매입 확대로 이어져 최근 수년간 원화 절하압력 요인으로 작용해왔다”고 덧붙였다.
올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및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환율 불안의 원인으로 국민연금이 지목됐다.
국민연금 측은 원·달러 환율 상승의 주범이라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원·달러 현물환 일평균 거래 규모에서 국민연금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대 수준”이라며 과도한 해석이라고 반박해왔다.
하지만 환율이 치솟는 상황 속에서 ‘큰 손’ 국민연금을 둘러싼 역할론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한·미 정부 간 환율정책 공조도 국민연금의 운용 전략에 제약을 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미국 재무부는 지난 10월 1일 발표한 ‘한미 환율합의문’에서 “정부 투자기관의 해외투자는 위험조정과 투자 다변화 목적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환율 방어를 목적으로 대규모 환헤지 거래를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환헤지를 통한 손실 방어가 제한되면, 국민연금은 환율 변동에 따라 해외투자 수익률이 변동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새로 달러를 사서 해외에 투자할 경우 과거보다 높은 수준에 사는 것이기 때문에 환손실 위험도 커진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국내주식 비중 조정도 쉽지 않고, 환율 여건상 해외투자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며 “자산군별 분산투자 뿐만 아니라 환율 안정을 위해 한미 통화스왑 확대, 중장기적 원화 국제화 등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성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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