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목 기자]
▲ <콩나물> 스틸
ⓒ CGV아트하우스
서울의 어느 변두리, 재개발을 비켜난 산비탈 동네에 오랜만에 대가족이 모였다. 할아버지의 제사가 있는 날이다. 가족을 따라온 7살 소녀 '
바다이야기오락실 보리'는 제사상 준비로 분주한 엄마와 친척들을 그저 바라만 보며 지루하던 중이다. 마침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콩나물을 빠트린 걸 보고 보리는 엄마를 돕고자 자신이 사 오고자 한다. 어른들이 바쁜 틈을 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보리는 대문 앞을 나선다. 엄마는 심심한 딸이 근처에 놀러가는 줄만 안다.
아마도 태어나 처음으
릴게임하는법 로 소녀는 어른들 없이 대문 밖으로 홀로 외출했을 테다. 콩나물을 사러 나왔지만, 엄마와 함께 다닐 때는 익숙하던 길이 혼자 나서니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든든한 어른의 보호막 없이 시장을 찾으려니 온통 위험하고 무서운 것 투성이다. 과연 보리는 무사히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
전설의 그 단편영화가 돌아왔다
골드몽릴게임▲ <콩나물> 포스터
ⓒ CGV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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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이 돌아왔다. 그것도 제한적이나마 극장 개봉 형태다. 영화제와 상영회에서 숱하게 소개되긴 했어도 10년도 훌쩍 지난 과거의 단편영화가 소환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문 예외적 사례다. 한 시대를 대표하거나 소위 '고전' 반열에 오르지 않고는
골드몽사이트 불가능한 일이다.
독립영화를 꾸준히 지켜봐 온 이들이라면 대강 이유는 짐작할 만하다. 작품을 연출한 윤가은 감독의 신작 <세계의 주인>이 개봉해 범상치 않은 평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감독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출발점이라 할 <콩나물>의 귀환은 '윤가은 월드'의 창세기를 다시 보고픈 이들이건, 전설처럼 전해지던 영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픈 이들에게건 환영받을 일이다.
하지만 극장 개봉은 대개 장편영화의 독차지였다. 단편이 극장에 입성하려면 옴니버스 연작 형태로 비슷한 작품들이 헤쳐 모여야 가능하다는 게 정설처럼 통해 왔다. 그러나 조금씩 변화가 일어난 건 역시나 현재 극장 환경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은 코로나19 이후다. 예전 관객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극심한 운영난에 처한, 상영관의 9할을 훌쩍 넘긴 3대 복합상영관 체인은 온갖 자구책을 모색해야 했다.
그 결과로 게임이나 스포츠 단체관람에 대관 문호를 개방함은 물론, 예전엔 고려 대상이 아니던 단편 개봉에 착수한다. 티켓 가격은 저렴하지만, 복합상영관에서 영화를 볼 때 10분 전후 차지하던 광고 회전율 제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른의 사정'이 <콩나물>을 비롯한 단편 개봉의 핵심 동력임은 부인할 수 없다. 독립예술영화의 재개봉 열풍도 그와 비슷한 궤를 따른다. 신작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낮은 위험 부담으로 대박은 포기해도 적절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입증되자 개봉작 뺨치게 많은 구작이 극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강제된 변화의 현재태는 무척 흥미롭기도 하다. 이제 복합상영관에는 1950년대부터 2025년 최신작까지, 10여 분 전후 단편부터 3시간 전후 블록버스터 대작까지 시공간을 초월하는 진용이 상시 가동 중이다. 우스갯소리로 독립예술영화판에서 그토록 꿈꾸던 극장의 '시네마테크'화가 (실질은 차치하고라도) 기이한 형태로 실현된 듯 보이는 탓이다. 영화산업 전반으로 봐선 죽을 맛이겠지만, 관객 개별로는 여태껏 경험하지 못한 체험이 활짝 열린 셈이다. 그렇게 변화와 위기의 롤러코스터에서 반가운 작품과 뜻밖의 만남을 갖게 되었다.
소녀 보리 앞에 펼쳐진 낯설고 위험한 세계
▲ <콩나물> 스틸
ⓒ CGV아트하우스
다시 <콩나물>로 돌아오면, 아이들이 주인공인 동심 충만, 추억 보정의 이야기로 흘러가기 딱 좋은 설정과 구성이다. 20분 채 안 되는 적당한 상영시간 동안 7살 여자아이가 집을 떠나 산전수전 치르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게 전부다. 배우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연기를 어지간히 잘하나보다 정도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이후 '정변'하며 한국 영화계의 기대주가 된 '보리' 역 배우 김수안이 해당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이름을 세상에 떨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지금까지 끝없이 언급되는 현상을 설명할 순 없다. 이 단편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영화 속 골목과 동네의 풍경은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안성맞춤이지만, 아이의 입장으로 각도를 조금만 비틀면 주인공이 얼마나 마음 졸이며 위험에 노출되고 있나 깨닫고 아연실색할 판이다. 누구나 자기 나이대의 경험과 지식에 맞춰 세상을 응시하며 상대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지 못하게 마련이긴 해도, <콩나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역지사지의 자세가 유독 절실한 건 그런 사고의 전환이 관객에겐 필수 교양으로 다가오는 탓이다.
소녀는 용기백배 의기양양하게 집을 나선다. 그러나 모든 모험은 예상하고 준비한 걸 사뿐히 초과하게 마련이다. 엄마 따라 다니던 작은 동네 길은 대충 다 알고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인생이란 대장정은 정해진 코스로만 갈 수 없다. 이를 은유하듯 보리는 모험 시작부터 좁디좁은 골목을 통째 가로막은 보수공사에 당황한다. 알던 길을 이용할 수 없다. 무서운 인부 아저씨가 틈새로 잠입하려는 아이에게 호통친다.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샛길 골목에는 중형견이 지키고 서 있다. 소녀는 자신이 가진 지혜와 자원을 총동원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
무서운 위협을 헤쳐 나오면 다음은 금단의 유혹이 기다린다. 위기는 여러 얼굴을 갖고 보리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도움을 청하다 주인공의 예정된 일정을 훼방하는 어른, 아이가 나이를 먹을수록 노출될 달콤한 타락(?)이 가는 곳마다 숨어서 기다린 듯 즐비하다. 든든하게 자신을 지켜주던 어른의 부재는 아직은 7살 소녀가 홀로서기엔 너무나 거대한 공백이다.
그래도 화면 분위기가 밝은 데다, 서울 도심이라곤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한 동네 풍경이 위험한 징후를 적당히 중화하는 바람에 관객이 놓치기 쉽지만, 낯선 타인의 접근은 어린 소녀에겐 절체절명의 위협이다. 길을 잃은 주인공을 도우려는 택배기사 아저씨의 손길은 보리에겐 엄마가 늘 신신당부하던 공포로 보일 수밖에 없다. 조금만 영화가 궤도를 벗어나면, <콩나물>의 설정을 고스란히 적용해 극단적 사회 고발물이 나와도 할 말 없을 정도다. 다행히 관객 일부가 가슴 졸일 뻔한 국면을 소녀는 다시 한번 슬기롭게 벗어난다.
낭만적 회고와 선을 긋는 출사표로서의 작업
▲ <콩나물> 스틸
ⓒ CGV아트하우스
물론 주인공의 버거운 여정을 그저 감독과 카메라가 방관하진 않는다. 현실의 7살 여자아이가 홀로 길을 헤맨다면 어른, 그리고 사회는 당연히 관심과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사회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그나마 서울에선 보기 드물게 '마을' 형태를 간직한 동네이기에 소녀는 포기하기 직전에 오아시스에서 목을 축이듯 절실한 도움을 약소하게나마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모험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속 시원한 해결책은 주어지지 않는다. 마치 앞으로 보리가 걸어갈 세계의 본질을 알려주듯.
집 떠나 온갖 고생을 경험한 주인공이 한나절 꼬박 보내며 위태로운 세상 나들이를 거듭할수록, 관객은 보리의 무사 귀환만 소망하게 될 법하다. 너무 사실적으로 현실에 도사린 도시의 위험요소를 나열하면 호러 장르로 변할 위험을 감독은 마치 자신이 어릴 적 겪어본 경험치 풀어가듯 슬기롭게 연결한다. 그 과정에서 (은근히 한국 독립영화에서 보기 드문 시도에 속하는)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을 은근히 첨가해 7살 주인공의 입장으로 본 낯선 세계의 풍경을 해석하려 한다.
영화는 험난한 모험을 거친 보리가 집에 돌아와 할아버지 제사를 의젓하게 지내며 마무리된다. 바쁜 어른들의 시선으로는 철없는 아이가 집 나가 고생하고 다행히 별 탈 없이 돌아온 해프닝으로만 기억되겠지만, 소녀의 모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감과 염려 속에 동행한 이들이라면 보리에게 일어난 변화와 성장을 흐뭇한, 심지어 뭉클한 시선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을 테다. 이 작품이 세상에 선보인 후로 몇 해가 지나 본격적으로 대두한, 20대 창작자들이 조부모와 얽힌 자전적 경험담을 대거 작업으로 선보이는 '노스텔지어' 열풍의 효시이자, 후속작들이 뛰어넘기 힘든 경지에 일찍이 도달한 궁극의 원형질이 <콩나물>이다.
그렇게 낯설고 위험한, 그러나 홀로서기에 도전해야 도달 가능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7살 주인공의 모험은 아동 모험물의 정해진 경로와는 사뭇 다른 형태로 완성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감독은 이후 거듭 차갑고 무서운 세상에 던져진 유·청소년의 눈높이로 본 세계의 풍경을 화면에 담으며 어른들에게 경종을 울려 왔다. 그 일정하게 완성된 형태이자, 어쩌면 보리가 겪을 수 있었을 위기를 돌파하는 주인공의 현재로 <세계의 주인>이 사자후를 토한다.
그런 '윤가은 월드'의 원형으로서 <콩나물>의 귀환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만에 보게 된 크레디트 속 제작진 명단에도 이후 10여 년 동안 감독과 동료로 작업한 이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신작과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의의가 출중하다는 소감이다. <세계의 주인>에 감화받았다면, 그 출발의 작업으로 <콩나물>을, 그리고 다시 불굴의 성장 서사로 <세계의 주인>으로 돌아와 보시라. 놀라운 두께로 직조한, 촘촘하고 정교한 '세계'를 만나게 될 테다.
▲ <콩나물> 스틸
ⓒ CGV아트하우스
<작품정보>
콩나물Sprout2013 한국 드라마/코미디202511.12. 개봉(CGV아트하우스 단독) 19분 전체관람가감독/각본 윤가은주연 김수안(보리 역), 김소진(엄마 역), 오동주(아빠 역)출연 정옥광(임산부 역), 김형중(인부 역), 김은영(아가씨 역),김종숙(슈퍼주인 역), 박영(빨래녀 역), 손석배(택배남 역),이은지(소녀 역), 이옥석(할머니 역), 김수복(할아버지 역)제작 김세훈 촬영 백현오 조명 이준일 음악 연리목편집 정병진 음향 고아영 미술 최윤 의상/분장 신희주, 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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