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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 계기로 20년 만에 경주서 한미 정상회담
경주에서 20년 만의 한미 정상회담 개최가 확정됐습니다. 대통령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부터 30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할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도착, 아마 30일까지 (머물 것으로) 예상이 된다”며 “그 즈음에 한미 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 실장은 “미·중 정상회담이 12월테마주
있다면 그 체류 기간 중에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경주 아·태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 개최 발표는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한국 방문에 대해 확언하지 않아 그가 과연 APEC에 참석할지, 얼마나 머무를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돼 왔습니다. 이 때문에 켐트로닉스 주식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초조한 시간을 보냈는데, 구체적인 회담 날짜와 형식은 여전히 유동적입니다.
트럼프는 외국 정상의 방문 중 가장 격이 높은 ‘국빈 방문’을 한다는데, 이번엔 2017년 방한처럼 성대하게 되지는 않을 전망입니다.
트럼프의 결례
한미 정상회담 관련, 대통령실의 발표가 늦어진 것은 트럼프 광희리츠상장일
대통령 탓이 큽니다. 그는 일본 총리가 교체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도 2박 3일 일본 방문 일정을 확정했지만, 한국의 경우 처음에는 12시간 체류 방안이 거론됐다가 1박 2일로 조정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는 그가 다른 무엇보다 미·중 정상회담을 우선시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동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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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보여 준 ‘친중(親中) 성향’과 여당 운동권 세력의 반미(反美) 전력을 경계하기에 한국 방문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얘기도 들려옵니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동맹 관계인 한국에서 20년 만에 APEC을 다시 개최하는데, 방한 일정 통보를 늦추고, 정작 본회의에는 참석조차 하지 않고 떠나는 것은복재성 카페
미국의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트럼프의 이런 태도는 꼭 20년 전 부산 APEC을 계기로 경주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는 비교가 됩니다.



2005년 11월 17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대화하고 있다./청와대


버시바우 대사 경주 정상회담은 “사상 최악의 회담”
2주 후에 경주 APEC을 계기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2005년 노무현-부시 대통령 정상회담과 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당시 노 대통령 역시 민주당 소속이었고, 부시와 대북 문제 등에서 강하게 충돌했는데, 이번에도 이 대통령과 트럼프가 경주에서 3500억달러 투자 문제 등으로 논쟁할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2005년 경주에서의 노무현-부시 회담에 대해서는 당시 현장에 배석했던 한·미 고위급 관계자들이 목격담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습니다. 그 해 11월 17일, 노 대통령은 전날 국빈 방한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서울 청와대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가진 데 이어 경주 현대호텔에서 부시와 만났습니다. 두 달 전인 9월 19일, 6자 회담에서 ‘북한의 핵 포기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명문화한 공동성명이 채택된 직후였습니다.
그때 한·미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안정돼 보였지만, 내부적으로는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9·19 공동성명 발표 직후 미 재무부가 마카오 방코 델타 아시아(BDA) 은행을 북한의 돈세탁 및 위조지폐 유통 창구로 지목하며 금융 제재를 단행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정부는 “합의가 이행되기도 전에 제재를 가한 것은 미국이 협상을 무력화시키려는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북한 역시 격렬히 항의했습니다. 이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열린 경주 회담은 애초부터 순조로울 수 없었습니다.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는 귀국 후 한미경제연구소(KEI)가 2009년 3월 발간한 ‘대사들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그의 팀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평화 구조에 대한 포괄적 비전을 담은 9·19 공동성명을 기반으로 발전시키고자 했지만, 미국이 북한의 불법 행위 단속을 통해 이 모든 것을 위험에 빠뜨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의견 불일치는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사상 최악의 한미 정상회담의 배경이 되었으며,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BDA 사건을 놓고 한 시간 이상 논쟁을 벌였다.”
버시바우 대사는 자신이 배석한 경주 정상회담을 사상 최악의 한미 정상회담이라고 했는데, 그는 이후에도 공개 석상에서 같은 표현을 수 차례 했습니다.



2007년 9월 7일 아태경제공동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호주를 방문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시드니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빙하는 움직인다'의 저자 송민순 당시 외교부 장관이 두 정상의 뒤에서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노 대통령 “지금 각하와 나는 손이 맞지 않고 있다”
한국 측에서 당시 외교 현장을 구체적으로 기록한 인물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입니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에서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미국이 BDA 문제를 탄력적으로 풀어서 9·19 공동성명이 이행 궤도에 들어가도록 부시 대통령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경주 현대호텔에서 마주 앉은 두 대통령의 심사가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회담을 이끌었습니다. 그는 “지금 각하와 나 사이에 손발이 맞지 않고 있다”고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안에서는 6자 회담을 하면서 밖에서는 압박을 행사하면, 북한은 미국이 자신을 붕괴시키는 것으로 볼 것이다. 그렇게 하면 북한은 문을 걸어 잠그고 변화를 거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시 역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미국 돈을 가장 많이 위조하는 북한을 두고 보란 말인가. 만약 누군가가 한국 돈을 위조하고 있다면 그냥 두겠는가”라고 맞받았습니다. 송 장관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양측 배석자 모두가 두 대통령 사이의 대화가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아 있던 힐 차관보와 눈길을 주고받으면서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애써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현지 대사로 이 모습을 목도하면서 좌불안석이었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 북한은 이라크처럼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고 맞섰고, 부시는 미국의 법 집행은 6자 회담과 별개의 문제이며, 이라크는 전혀 다른 경우인데, 북한은 모든 탓을 미국에 돌리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두 정상의 공방은 새로운 차원으로 이어졌습니다. 노 대통령은 “각하는 철학적으로 김정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고, 부시 대통령은 “맞다. 나는 싫다면 싫다. 둘러대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송 전 장관은 “이를 지켜보며 통나무에 납땜질하는 것만큼이나 힘든 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갈등 속의 합의 굿캅, 배드캅
그런데,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회담은 완전한 결렬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송 전 장관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악한 역(bad cop)을 맡고, 노 대통령은 착한 역(good cop)을 해서 협력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두 대통령은 한·미 동맹, 북핵 문제 등 5개 분야에서 양국 간 중장기 발전 방향을 ‘한·미 동맹과 한반도 평화에 관한 공동선언(Joint Declaration on the ROK-US Alliance and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일명 경주 선언)’도 채택했습니다.
이어서 두 대통령은 점심 식사를 함께 한 후, 부부 동반으로 약 30분간 불국사 경내를 산책했습니다. 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날 두 정상은 걸으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노 대통령은 경주 일대의 역사와 한국 문화에 대해 설명했고, 부시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흥미를 보였습니다. 권양숙 여사와 로라 부시 여사도 나란히 걸으며 정원과 단풍을 감상했습니다. 두 대통령 내외가 함께 범종을 치기도 했습니다. 이 장면은 공식 회담의 냉랭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산책 외교’로 언론에 회자되었습니다.



2019년 5월 23일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참석, 참배를 마친 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 손녀 노서은 씨와 행사장을 나서고 있다./뉴스1


경주에서 두 번째 만나는 이재명-트럼프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지금, 한미 정상은 다시 경주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후 첫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며, 한미 동맹의 재조정과 미·중 패권 경쟁의 한가운데에서 한국의 입장을 확인하려 합니다. 자신이 구상한 ‘아메리카 퍼스트’ 무역 정책에 한국이 따라 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반면 이 대통령은 ‘실용 외교’를 내세우며, 미·중 사이에서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을 유지하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해서든 3500억달러 투자 문제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이때문에 20년 전 노무현-부시 회담 처럼 ‘통나무에 납땜’하는 식의 대화’가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2005년 노무현-부시 대통령은 회담에서 심각한 의견 차이를 보였지만, 동맹을 지키려는 노력은 멈추지 않았고, 공개 활동도 함께 했습니다. 이재명-트럼프 대통령이 경주에서 다시 만나면 “동맹국끼리 협상할 때는 문을 걸어 잠그고 치열하게 논쟁하되, 문을 열고 나와서는 웃으며 악수한다”는 격언을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