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새벽배송 택배 차량. 쿠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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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까지 배송을 끝내야 하는게 엄청난 압박이예요. 새벽 6시쯤 물건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진짜 손이 벌벌 떨려요.”(경남 쿠팡 택배기사 ㄱ씨)
“배송 물량은 늘어나는데, 단가는 낮아지는 거예요. 쿠팡 쪽에선 ‘단가가 낮아진 만큼, 물량 늘려줄게’라고 말해요. 배송을 더 많이 하란 얘기잖아요.”(광주 택배기사 한남기씨)
유통·택배 업계 1위인 쿠팡에서 일하는 택배노
동자들이 고강도 노동, 낮은 단가 등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쿠팡 이용자가 크게 늘며 쿠팡 물류시스템에 걸린 과부하가 최말단에 있는 택배기사들에게 전가된 결과다. 특히 위험한건 동일한 강도로 일해도 과로사 위험이 큰 야간 택배 기사들이다. 지난해 5월과 7월에도 새벽배송을 하던 쿠팡 택배기사 두 명이 과로사로 숨지는 비극이 반복됐다.
참다 못한 전국택배노동조합은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택배 사회적대화기구’에서 ‘심야시간대(자정~새벽 5시) 배송 제한’을 꺼냈고 “소비자 불편·소상공인 피해”와 “택배기사 건강권”이 충돌하며 새벽배송 논란에 불이 붙었다. 한겨레가 10일 통화 한 쿠팡 택배기사들은 이 상황을 착잡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쿠팡
택배기사인 ㄱ(32)씨는 “사람이 죽으면서 일하지만 소비자가 편한 길과 사람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길을 놓고 논란이 있는 것 아니냐”며 “진짜 무서운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4개월 전에 쿠팡에서 새벽배송을 시작했지만, 한 달 만에 주간으로 옮겼다. ㄱ씨는 “일 끝나고 쉬는 날에는 계속 잠만 잤다. 예전에 하던 동호회도 할 수 없었고, 제 인생이 없
다고 느껴졌다”고 했다.
ㄱ씨는 쿠팡에서 일하지만 쿠팡 노동자는 아니다. 쿠팡 배송은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가 맡고 있다. 쿠팡 택배기사들은 씨엘에스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쿠팡친구)와 노무제공자(특수고용노동자·퀵플렉서)로 나뉜다. 쿠팡·씨엘에스 소속인 정규직·계약직은 약 7천명으로 노동시간 등 노동법 적용을 받는다. ㄱ씨처럼
법 밖에 있는 노무제공자는 주간 1만명, 야간 1만명 등 모두 2만명 정도다. 이들은 각 지역의 대리점과 계약을 맺고, 주당 평균 60~70시간 이상 일해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경기도에서 8개월째 새벽배송을 하는 ㄴ씨(45)는 ‘3회전’ 배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ㄴ씨는 “야간에 ‘3회전’을 돌면, 밤 9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일하게 된다”며 “진짜 너무 힘들다. 계속 피곤해서 입병나고 난리가 난다”고 했다. ㄴ씨가 말하는 3회전은 배달할 물건이 있는 ‘캠프’와 배송지를 오가는 횟수를 말한다.
최근 몇년 사이 쿠팡의 물량이 급증하면서 상당수 쿠팡 새벽배송 기사들은 오후 9시(1차), 오전 0시(2차), 오전 3시(3차) 캠프에 들어가 물건을 직접 분류한 뒤 싣고 나오는 다회전 배송을 하고 있다. 마켓컬리, 씨제이(CJ)대한통운 등 여러 업체가 새벽배송을 하고 있지만, 야간에 ‘3회전 배송’을 하는 곳은 쿠팡 뿐이다. 쿠팡의 물량이 압도적으로 많아서다. 쿠팡 새벽배송 기사들은 하루 평균 250개 정도의 물품을 배달하지만, 씨제이대한통운은 4분의1 수준인 60개에 그친다.
쿠팡 야간 택배기사들 근무 현황.
물품 분류를 배달 기사들이 한다는 점도 문제다. 캠프엔 같은 배송지역을 담당하는 기사들 2~4명의 물량이 섞여 있어, 택배기사들이 각각 물품을 분류해 차에 실어야 한다. 이 작업이 보통 30분 정도 걸리고, 캠프와 배송지까지 오가는 데도 15~20분이 소요된다. ‘3회전’을 뛰는 기사들은 2시간 30분 가량을 허비하게 된다. 서울에서 3년째 새벽배송을 하고 있는 ㄷ(52)씨는 “캠프를 왔다갔다 하고 프레시백 회수하는 시간만 빼도 야간노동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새벽배송은 아침 7시까지 배송 마감이 걸려 있어 택배기사들은 조급한 마음에 걸어다닐 틈이 없다. 배송 시간을 반복해서 못 지키면 영업점 계약이 해지되거나 배송지역을 회수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쿠팡의 ‘프레시백 수거’ 서비스도 택배 기사들을 옥죄고 있다. 쿠팡은 이전에 배송한 신선 제품을 담았던 다회용 박스를 기사들에게 수거하도록 한다. 회수 물량은 많게는 하루 100여개 정도에 이른다. 씨엘에스는 회수율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기사에 대해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 이런 회수 업무도 쿠팡만 하고 있다.
쿠팡 배달기사들은 다회전 배송과 분류, 프레시백 수거 등으로 실제 배송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줄면서 노동 강도는 높아졌는데, 배송 단가는 계속 낮아지고 있어 불만이 크다. 부산에서 새벽 배송을 하는 ㄹ씨는 “2023년엔 1200원이던 단가가 올해는 아파트 800원, 지번(빌라 등) 870원 수준으로 낮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전국택배노조와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쿠팡 배송기사 노동실태 결과를 보면, 아파트 배송 건당 수수료 중위값은 주간이 655원, 야간은 850원이고, 일반 지번은 주간이 730원, 야간이 940원이다. 다른 업체들의 새벽 배송 단가는 건당 평균 약 2천원이다.
기사들 입장에선 기존 수입을 유지하려면 더 많이 배송할 수밖에 없다. 택배기사들이 건강이 악화되는데도 새벽배송을 선택하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경남 배달기사 ㄱ씨는 “돈이 된다고 하니까 군대 다시 왔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배달기사 ㄴ씨도 “아파트가 없는 100% 지번이라 배송이 힘들지만, 단가가 1100원으로 높은 편이라 선택했다”고 밝혔다.
한겨레가 접촉한 새벽 배송 기사들은 월 500만원에서 많게는 700만원을 버는 사람도 있지만, 세금·보험료와 자동차 할부금, 유류비 등 각종 고정비로 월 150만~200만원이 나가고 있어 실수령액은 300만~500만원 정도 된다.
제 발로 쿠팡 택배를 시작한 이들도 ‘구조적 과로’ 상태로 내몰리는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택배기사 한남기씨는 “분류나 회수 업무만 없어져도 노동 강도가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적정 단가도 보장돼야 한”고 말했다. 이런 요구를 대리점을 통해 전달해본 적도 있지만 쿠팡은 요지부동이었다. 한씨는 “쿠팡 본사는 씨엘에스에 위탁했으니 우리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하고, 씨엘에스는 쿠팡에서 받았으니 다 처리해야 한다더라”고 말했다.
이런 목소리에도 현재 새벽 배송의 당사자인 쿠팡은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강민욱 전국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은 “새벽배송 논의가 소비자 편익과 배달기사의 건강권 대립 구도로 가는 것이 안타깝다”며 “정작 노동조건을 총괄하는 쿠팡이 책임있는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쿠팡 쪽은 새벽배송 논란에 대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31일 열린 ‘택배 사회적대화기구 회의’에선 새벽배송 시간 제한에 대해 “수용불가”를 밝힌 상태다.
남지현 기자
[email protected],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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