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미국에서 오른손 절단 산업재해를 입은 리형호(오른쪽)씨가 오기나(가운데)씨와 배우자 어요나(왼쪽)씨를 찾아 위로했다.
산업재해로 두 팔을 잃은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오기나(37)씨 이야기를 다룬 한겨레21 보도(제1582호 참조)가 나가고 한 달쯤 지난 2025년 10월 중순께, 전자우편 한 통이 한겨레21 취재팀에 도착했다. “제 아버님(아버지처럼 모시는 선생님)도 미국 시카고 철강회사에서 일하시다가 오른손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기사를 보여드렸더니 ‘남 일 같지 않다’ 하시면서 오기나씨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시네요.”
오기나씨를 만나서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해주고 싶다는 리형호(84)씨의 의사를 대신 전한 전자우편이었다. 오기나씨는 2019년 12월22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양광 패널 설치 작업을 하던 중 2만2900V의 고압 전류에 감전되는 중증 화상으로 양팔을 잃었다. 산재는 회사 대표 등이 송전을 멈추는 데 들어가는 비용 50여만원을 아끼기 위해 한
국전력에 전기 흐름 차단을 부탁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다. 회사의 잘못이 명백하고 법원도 이를 인정했지만, 회사는 오기나씨에게 배상액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오기나씨는 치료 중에만 유효한 비자를 갖고 있어, 그를 포함해 배우자와 두 딸 등 가족 체류도 불안정한 상태다.
오기나씨도 리씨를 만나보고 싶다고 답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됐다.
2025년 11월3일 한겨레21 취재팀은 리형호씨 일행과 함께 충북 청주의 오기나씨 집을 방문했다. 리씨는 거주지인 대전에서 제자의 도움을 받아 청주로 왔다. 리씨와 그의 제자는 짐을 한가득 들고 있었다. 고구마와 감 등 먹거리와 함께 오기나씨 딸들에게 줄 인형도 있었다.
기초 수급자 노인이 두 딸 선물과 약간의 현금까지 준비
오기나씨 집으로 들어선 리씨는 “만나보고 싶었다”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오기나씨도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맞이했다. 리씨는 “기사를 보고 내가 목이 메고 가슴이 먹먹해서, 눈물이 났다”며 오기나씨를 직접 만나서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리씨는 오기나씨의 두 딸을 위한 선물과 함께 약간의 현금이 든 흰색 봉투도 오기나씨
앞에 꺼내놓았다. “사실 내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거든. 그런데 빈손으로 올 수는 없잖아.” ‘생활비에 보태 쓰라’는 그의 말에 제자가 덧붙였다. “여기 선생님(리형호씨)도 어려우신데, 어려운 일 겪은 이주노동자분들 보시면 돕고 싶어 하세요. 아무래도 본인이 미국에서 이주노동자로 계시다가 다친 것 때문에요.”…
리씨는 오기나씨가 “37살”이라고 나이를 알려주자, “내가 딱 그 나이쯤에 다쳤다”며 본인의 이야기를 전했다. 1941년생인 그는 대학생 때부터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에서 정치적 탄압이 심해지자 미국 유학을 떠났다. 학비가 없었던 그는 시카고의 철강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그러다 1977년 철강 처리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는 산재를 당했다. 그는 “2분만 응급처치가 늦었으면 죽는다”고 하는 고비를 넘겼다. 열세 번의 수술을 거쳤다. 발가락 일부를 이식해 손에 집게손가락처럼 잇는 수술도 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이미 한쪽 눈이 실명된 그는 산재를 입은 뒤 다리 신경에도 문제가 생겨 몸 곳곳이 아프다고 했다. 리씨는 회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해서 배상액을 받았지만, 법무법인과 계약을 잘못하는 바람에 돈이 거의 남지 않았다. 산재를 겪은 이후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선교사로 일하며 노동자와 탈북민을 돕는 일을 해왔다.
어요나씨가 감사의 표시로 리형호씨 일행에게 몽골 음식을 만들어 내놓았다.
타향서 산업재해 당한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
오기나씨와 배우자 어요나씨가 답례로 몽골 음식을 대접하자, 리씨는 식사에 앞서 오기나씨 가족을 위해 기도했다. “제가 1970년대 미국에서 다쳐서 비참하고 비참했던 그때를 다시 떠올립니다. (…) 한국의 회사들이 어찌 되어 있길래 이렇게 양팔을 다치게끔 하는지 (…) 슬프고 비극된 것이 오히려 새로운 출발점이 돼서, 가정에 항상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리씨와 오기나씨는 같은 산재 피해 이주노동자로서 공감되는 말을 나눴다. 먼저 둘은 신경 통증을 앓는 공통점이 있었다. 오기나씨가 “통증이 심해서 약을 먹는다”고 하자, 리씨는 “수십 년이 지났는데 (나도) 아직 아프다. 겨울에 너무 추운데, 마찬가지일 거 같다. 건강 조심하라”고 위로했다. 또한 오기나씨 자녀들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어 치료비가 많이 들고, 회사가 책임지지 않아 여전히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는 오기나씨의 이야기에 리씨는 함께 분노하고 안타까워했다.
몽골 출신 이주노동자 오기나(왼쪽)씨와 젊은 시절 미국에서 오른손 절단 산재를 입은 리형호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억원 넘는 손해배상액에 여전히 회사는 “돈 없다”
오기나씨 가족이 안정을 찾기에는 아직 남아 있는 문제가 많다. 회사는 여전히 “돈이 없다”며 2억원 넘는 손해배상액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또한 오기나씨는 임시 비자인 G-1비자를 지니고 있다. G-1비자는 난민 신청, 소송, 질병 치료 등 다른 체류 자격에 해당하지 않는 인도적 사유로 한국에 체류해야 하는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임시 비자다. 오기나씨가 치료 중일 때만 그와 그의 가족 비자가 연장되기에, 체류 자격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다만 보도 이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은 변화들은 있었다. 그가 받지 못한 손해배상액과 관련해 법률 조력이 시작된 상태다. 또2025년 10월2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오기나씨를 찾아 “오기나씨를 비롯한 산재 피해 노동자의 안정적인 체류 방안 및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오기나씨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시민들로부터 소액의 후원금도 계속 모이고 있다.
리씨는 오기나씨 집을 나서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부터 용기를 안 잃어야 해요. 그리고 자꾸 미안하다 생각 말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연락을 줘요.” 오기나씨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청주(충북)=글·사진 박준용 기자
[email protected] ■산재 피해 입은 오기나씨 후원해주실 곳
하나은행 153-910561-30607
예금주(오기나 본인): MUNKHERDENE UUGANBAYA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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