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와 맺어질 수 없어 생기는 마음의 병 상사병은 인간을 죽음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동시에 살아있음의 기쁜 표식이기도 하다. 게티이미지뱅크
청나라 때 소설 ‘홍루몽’의 가련한 여주인공 임대옥은, 사랑하던 이가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지금에 와서는 슬프다는 생각보다도 오직 한시바삐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고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을 말끔히 끝맺고 싶었다.”(안의운 외 역) 그리고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리는 그 시간에 그녀는 세상을 떠난다. 상사병(相思病)은 이토록 강력하다. 그것은 모든 감정을 극도의
릴게임모바일 혼란에 빠트리고 생활을 중단시키며 육체를 죽음으로 이끈다.
상사병은 사랑하는 이와 연애, 결혼 등을 통해 맺어질 수 없어 생기는 마음의 병이다. 의학적인 병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이 실존하는 방식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종종 치료가 불가능하며, 기이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 사랑의 병을 일종의 ‘광기’
야마토게임무료다운받기 로 분류한다. 플라톤의 사랑론을 담은 대화편 ‘파이드로스’는 상사병 또는 광기에 휩싸인 이를 이렇게 묘사한다.
“혼은 그 상태의 이상함에 괴로워하고, 어쩔 줄 몰라 미쳐 버리고, 광적인 상태에서 밤에는 잠들지 못하고 낮에는 자신이 있는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지 못하고, 아름다움을 지닌 이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곳이면 어디든 그리운 마
바다이야기게임 음에서 달려가지. 보고 나서 혼은… 당분간 가장 달콤한 이 즐거움을 새삼 누리지. 혼은… 어머니와 형제와 벗들 모두를 잊고, 재산을 소홀히 해서 탕진해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그전에 자랑스러워했던 규범들과 몸가짐 전부를 다 하찮게 여기고서는 자신이 갈망하는 자에게 가장 가깝게 있도록 허락되는 곳이기만 하면 어디에서든 노예가 되어 잠들 작정이지. 이
사아다쿨 는 아름다움을 지닌 자를 혼이 경외한다는 이유에 더해서 그가 가장 위중한 고난의 유일한 치료자라는 것을 혼이 발견했기 때문이지.”(김주일 역) 마지막 구절이 인상 깊다. 상사병에 걸린 이에게 사랑하는 사람은 병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유일한 치료자”이다. 그렇기에 그는 고통받으면서도 달콤하게 치료받으며 죽어가는 것이고, 이 죽음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바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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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기록된 이 상사병에 걸린 이의 모습은 재미있게도 우리 대중가요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명월이에게 빠진 비단 장수 왕서방 말이다. 그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재산을 다 탕진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 병들어 눕기도 한다. “비단이 장사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 비단이 팔아 모은 돈/ 퉁퉁 털어서 다 줬소/…/ 밥이나 먹어 해도 명월이/ 잠이가 들어 해도 명월이/ 명월이 생각이 다 나서/ 왕서방 병들어 누웠소.”(김정구의 ‘왕서방 연서’(1938, 박시춘 작곡·김진문 작사))
상사병은 재산과 건강을 앗아가고 목숨마저 빼앗기도 한다. 이런 사실은 상사병이 고약한 질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어떤 운명을 알려주는 것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문학은 늘 상사병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 가운데 상사병이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존재 방식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작품이 바로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이다. 이 작품은 루치노 비스콘티가 영화화하면서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된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과 함께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토마스 만이 상사병의 본질을 겨냥하면서 플라톤의 ‘파이드로스’를 자기 관점에서 다시 쓰려 했다는 사실이 영화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소설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와 마찬가지로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베니스가 전염병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상사병을 앓는 주인공은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음의 도시가 그를 도와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한데, 명성을 얻은 작가인 주인공이 베니스에 여행을 왔다가 같은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한 소년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는 이야기다. 작가와 소년 사이에는 어떤 적극적인 교감도 없지만, 작가는 홀린 듯 소년의 뒤를 밟기도 하고, 소년 곁에 머무르기 위해 위험한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베니스에서의 체류를 무모하게 늘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죽는다. 상사병 또는 전염병 때문에.
에로스적인 사랑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이며, 주인공 역시 소년의 아름다움에 대해 연정을 품게 된다. “그의 얼굴은 가장 고귀했던 시대의 그리스 조각품을 연상시켰다.”(박동자 역)라고 화자는 소년에 대해 말한다.
주인공은 소년의 아름다움에 도취되는데, 마치 플라톤이 아름다운 한 구체적인 사람과 아름다움의 이데아(아름다움 그 자체) 사이의 관계를 사유하듯이, 도취된다. 다음 구절은 주인공이 어떤 태도로 소년의 아름다움에 몰두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열렬한 황홀감에 빠져 이 형상을 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 아름다움은… 정신 속에서만 사는 유일하고도 순정한 완전성이었다. 그런데 그 완전한 아름다움의 한 비유적 모상이 한 인간으로 화하여 여기 경쾌하고도 아리땁게 우뚝 서서 경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도취였다. 그리하여 그 늙어가는 예술가는 여러 생각할 것 없이, 아니, 탐욕적으로 그 도취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구체적인 한 인간인 소년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또는 이 소년은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참여’함으로써 아름다워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랑에 빠진 자는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아니라, 오직 구체적인 한 아름다운 인간을 사랑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애인의 아름다움이지, 익명적인 아름다움 자체(이데아)가 아니지 않은가? 누가 아름다운 애인보다 아름다운 이데아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토마스 만은 사랑하는 소년을 두고, “완전한 아름다움의 한 비유적 모상이 한 인간으로 화”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이데아를 사랑할 수는 없고, 이 이데아가 구체적인 한 인간으로 화했을 때만 사랑할 수 있다.
가다머의 ‘진리와 방법’에는, 우리가 읽은 토마스 만의 플라톤적 생각을 명확하게 하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름다움이 ‘이념’(이데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다시 말해 아름다움은 덧없이 흘러가는 현상계를 초극하여 그 자체로 항상적인 존재질서에 속해 있다. 또한 분명한 것은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현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아름다움이 자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할 때 ‘아름다움 자체’와 그것의 모상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는다.”(임홍배 역)
아무리 인간이 이념적인 완전한 아름다움 자체를 지향하더라도, 인간은 현상계의 아름다운 한 애인을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위해선 현상계를 초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계에 머물러야만 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랑은, 현상계의 피와 살을 가진 인간들의 사랑답게, 이데아와는 다른 것, 즉 온갖 육체적인 정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토마스 만은 쓴다. “현혹, 모든 것을 마비시키는 정욕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의 영혼은 파멸의 음탕과 광분을 맛보았다.” 또 ‘파이드로스’의 늙은 소크라테스가 미소년에게 말하듯, 또는 베니스의 소년에게 말하듯 이렇게 쓴다. “우리가 필연적으로 잘못된 길로 빠져들어서는 필연적으로 방종해지고 감정의 모험에 빠진다는 걸 알았니?”
사랑에 빠진 이는 현상계를 넘어 아름다움의 이데아로 가는 것이 아니라, 현상계 안에 머물면서 육체적 정념을 가지고서, 역시 정념을 가진 상대를 사랑한다. 그리고 정념은 늘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며 우리를 노예처럼 괴롭힌다. 이 괴로움이 상사병이다.
전염병으로 죽음의 도시가 된 베니스와 상사병에 오염되어 죽어가는 주인공은 결국 같은 것이다. 주인공이 곧 베니스이다. 상사병은, 아름다움의 이념을 건너다보지만, 오로지 육체적인 것의 장애에 부딪히고서만 그럴 수 있는 인간의 필연적 운명이다. 육체적 열정이 아름다움의 이념을 향해가는 자를 붙잡고서 그 열기로 불태워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상사병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리라. 그것은 살아있음의 기쁘고도 괴로운 표식이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 베니스에서의 죽음
토마스 만이 1912년에 출판한 소설로,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마의 산’ 등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가 베니스로 여행을 가 있던 도중 친분이 있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부고를 듣고 영감을 받아 저술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주인공 구스타프 폰 아셴바흐가 호텔에서 만난 한 미소년에게 빠져 그를 사랑하다 죽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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