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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입법부의 권력 감시 기능인 국정감사를 사유화(私有化)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정감사가 국회의원들의 사적인 분풀이, 사과 요구, 지역구 민원 해결, 가정사 해명의 장(場)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치가 엔터테인먼트화(예능화)되면서 그간 국회에서 통용되던 기초적인 규범 자체가 무너졌다”고 했다.
국회는 국정감사를 “입법부의 감시로 국정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3일 시작된 이재 담보대출금리 명 정부 첫 국정감사에서 일부 의원은 개인적인 문제 해결에 질의 시간을 사용했다. 의원이 증인들을 세워두고 “내게 사과하라”고 다그치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지난 21일 국회 법사위 고등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김학의 전 법무 차관의 ‘불법 출국 금지 사건’으로 자신을 기소했던 송강 광주고검장에게 “지금이라도 ‘검찰 수사가 신한은행 대출 잘못됐습니다’라고 사과하라”고 했다. 국정감사장에서 당시 수사 지휘 라인에 있던 송 고검장에게 개인적인 사과를 요구한 것이다. 송 고검장은 “책임을 회피할 생각이 없다”고 답변했다.



그래픽=백형선


이보다 앞선 지난 취업후상환 16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선 민주당 전현희 의원이 최재해 감사원장에게 “저에게 사과할 의사가 없나, 사과해야 하지 않나”라고 질의했다. 전 의원은 “(국민권익위원장 재직 당시) 저에 대한 감사와 관련해서 감사원에서 모두 무혐의·불문 처리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자 유병호 감사위원은 “사실과 다른 말씀을 하면 곤란하다”고 반박했다.
국회 돈빌려드립니다 과방위 국정감사에선 ‘분풀이성 제재’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비공개 국정감사 도중에 과거 자신에 대한 보도를 문제 삼아 MBC 박장호 보도본부장을 퇴장시킨 것이다. 최 위원장은 딸이 국감 기간 도중에 국회에서 결혼식을 올린 일과 관련해 야당 질의가 이어지자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신경을 못 썼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파산신청절차 김성수 한양대 교수는 “여야가 분기마다 돌아가면서 상임위원장을 맡거나, 국회 외부 인사로 구성된 심의 기관에서 증인 채택을 논의하는 등의 국정감사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나를 비판? 퇴장” “당신 탓에 기소당해”… 개인 분풀이 장 된 국감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 17곳 가운데 민주당 의원이 상임위원장으로 배치된 곳은 10군데다. 나머지 상임위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과반 의석(166석)을 바탕으로 국정감사 의사 진행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적인 이유로 ‘국감 사유화’도 민주당 의원들이 주도하는 형국이다. 정치권에선 “의사 진행 권한이 있는 상임위원장부터 국감 사유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제 민주당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감사원 국감에 김동철 한국전력 사장을 증인으로 추가해서 논란이 됐다.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하남시 감일동 동서울변전소에 고전압 변환소를 설치하는 배경에 대해서 따져 묻겠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지역구 민원에 적극적인 것은 당연하지만 소속 상임위 소관도 아닌 증인을 부르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산자위 피감 기관인 한전 사장을 법사위에 불러낸 건 지역구 민원 해결용”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김동철 사장도 “같은 날 다른 상임위(기후환노위)에 출석해야 한다”면서 법사위에 출석하지 않았다.
민주당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MBC 보도본부장을 국감장에서 일방 퇴장시킨 여파도 이어지고 있다. 이 일로 MBC 기자회가 “국회 상임위원장이 공영방송의 업무 보고 자리에서 보도 관련 임원을 상대로 퇴장을 명령한 행위는 명백한 부적절함을 넘어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판 성명을 냈다. 이에 최 위원장은 22일 페이스북에 “MBC 보도본부장은 비공개 국감에서의 ‘한 문장’ 지적조차 못 견디나”라고 썼다. 그러면서 “MBC 보도본부장은 여전히 특권이며 성역인가”라며 “국민의힘 행태를 한마디 지적도 못 하면서 무슨 언론의 자유 운운하느냐”고도 했다. 이 직후 한국기자협회는 최 위원장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일부 상임위에서는 국민의힘 일부 의원까지 민주당이 주도하는 ‘국감 사유화’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지난 13일 국토교통위 국감에서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를 상대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이 1년 이상 지연된 것에 대해 (부지 조성 공사에 불참한 현대건설의) 책임이 없느냐”고 질의했다. 같은 당 김희정 의원도 이 대표에게 “도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건지 답변하라”고 했다. 두 사람은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인 부산 지역 의원들이다.
지난 14일 과방위 국정감사 도중엔 여야 의원들의 사적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민주당 김우영 의원이 “지난달 국민의힘 박정훈 의원이 내게 ‘에휴 이 찌질한 놈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고 공개한 것이 발단이었다. 박 의원은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된 것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김 의원을 향해 “한심한 XX야”라고 했다. 이 장면은 생중계로 그대로 전파됐다. 이후 비공개회의 때도 두 의원은 “한 주먹거리” “너 내가 이겨” 등 원색적 비난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국감 사유화 현상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이번 국정감사에서 특히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는 “강성 지지층의 팬덤을 바탕으로 정치가 엔터테인먼트화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서 “다수의 대중은 정치에 관심이 없고, 정치인들이 오로지 소수인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반응하다 보니 국정감사의 공적인 의미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정치학회장인 김범수 서울대 교수도 “여든 야든 국회의 품격이 사라졌다”면서 “감시·비판이라는 국정감사의 본연의 기능이 퇴색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국감 무용론(論)’까지 제기되고 있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BBS라디오에서 “(국감 영상은) 정말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면서 “국감 제도를 폐지하자는 얘기도 있다”고 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도 “국감을 아예 없앨 수는 없겠지만 (횟수를) 분산시킨다든지 제도 개선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국회의 한 보좌진은 “어느 순간부터 국정감사에서 정책 질의보다는 의원 개개인의 ‘쇼맨십’이 더 화제가 되고 있다”면서 “공사(公私) 구분이 안 되는 의원들을 보면서 ‘꼭 저래야 하나’라는 허탈감이 느껴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