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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자동차 마니아의 가슴을 뛰게 하는 차가 있다. 바로 지프(Jeep)의 랭글러다.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장을 누빈 군용차 ‘윌리스 MB’를 잇는 모델로,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주인공 관식이가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타고 싶다고 말한 그 차다. 랭글러의 여러 제품 중에서도 루비콘은 오프로더(험로 주행용 차)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전쟁 영화에서나 볼 법한 국방색으로 꾸민 랭글러 루비콘을 시승했다. 시승 차는 랭글러 루비콘을 기반으로 제작돼 2025년 2월 국내 출시한 랭글러 루비콘 41 에디션으로, 윌리스 MB를 기념하는 모델이다. 숫자 41은 윌리스 MB의 출시 연도이자, 차체 색상인 ‘올리브 동산담보 드랩’을 의미한다. 군용으로 시작한 랭글러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차체 색이라고 할 수 있다. 랭글러 루비콘 41 에디션의 국내 판매 가격은 8740만원, 일반 랭글러 루비콘의 가격은 8590만원이다. 랭글러 루비콘을 기본으로 윌리스의 여러 디자인 요소를 담아 국내 50대만 한정 판매하며, 이 디자인 요소 외 모든 부분은 일반 모델과 동일하다. 지프 브랜드의 전세자금대출 중도상환 상징 디자인인 ‘세븐 슬롯 그릴(7개의 세로 그릴)’이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헤드램프에 링(ring) 모양의 주간 주행등(DRL)과 돌출 펜더(바퀴 덮개)의 DRL이 동시 채택됐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차는 생산 국적에 관계 없이 모두 한국의 안전 규정을 따라야 하지만, 한미 FTA에 따라 수입된 미국 차의 경우에는 미국 차량유지비기준 안전 규정을 만족할 경우 판매가 허용된다. 기존 랭글러는 유럽형으로 범퍼 형태가 얌전해 교체 대상 1위였다. 오프로더 성격에 더 맞는 북미형 범퍼를 채택한 점이 특징이다.전면 유리 아랫부분에는 고릴라 그림이 들어갔는데, 이는 코닝의 강화유리인 고릴라 글라스가 적용됐다는 뜻이다. 눈에 띄는 건 아니지만, 재미 요소로 여겨진다. 고릴라 글라스는 스마트폰에도 사 집주인 용되는 유리다. 기존의 강철 안테나 대신 전면 유리 안에 안테나를 숨긴 점도 변화 요소다. 돌출 펜더는 검은색으로 꾸몄다. 다른 모델이 차체 색을 펜더에 적용하는 것과는 다른 부분이다. 타이어는 올 터레인(전 지형) 33인치다. 타이어 패턴이나 크기에서 험로를 힘차게 주행하는 랭글러가 상상된다. 일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타이어가 러닝화라면, 랭글러 현대차미소금융재단 루비콘의 타이어는 전문가용 등산화인 셈이다. 또 전동식 사이드 스텝(발판)이 적용됐다. 평소에는 차체 아래에 숨겨져 있다가, 문을 열면 자동으로 발판이 펼쳐진다. 차체가 높아 타고 내리기 어려운 단점을 보완한다. 다만 발판이 넓게 펼쳐져 정강이 등을 부딪힐 우려가 있다. 차 뒤쪽에는 전용 휠에 33인치 타이어를 입힌 스페어타이어가 장착돼 있다. 커버는 없는데, 야생의 느낌을 십분 낸다. 이 휠 가운데에는 후방 카메라가 들어가 있어 실내 모니터로 뒤쪽 상황을 볼 수 있다. 제리캔(액체를 담아 운반하기 위해 설계된 용기) 모양의 리어램프(후미등)는 크지 않지만, 발광다이오드(LED)로 돼 있어 밝은 편이다. 방향 지시등은 주황색인 국내 규정을 따르지 않고, 빨간색이다. 이 역시 한미 FTA에 따른 것이다. 이를 모르는 후속 차량은 헷갈릴 가능성이 있다.트렁크 문에 스페어타이어가 달려 있어 여는 방식이 일반적인 것과 다르다. 우선 트렁크 문은 위아래 두 부위로 나뉘는데, 아랫 부분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여닫히는 구조다. 상단 유리 부분은 위로 올리는 방식이다. 필요에 따라 한쪽만 열고 닫는 게 가능하다. 하단 트렁크 문 안쪽에는 랭글러 생산지와 역사 등이 패널로 제작돼 부착돼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이전과 다르게 전자동 시트가 들어간 점이 반갑다. 최근 신차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여러 아날로그 버튼이 들어간 건 레트로 감성이다. 다만 버튼이 너무 많아 눈이 어지럽다는 단점도 있다. 센터 디스플레이는 7인치로, 보다 큰 화면을 채택하는 요즘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 8000만원 이상의 가격을 생각했을 때 이 정도의 디지털화는 다소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차의 전후 측면을 비추는 서라운드 카메라도 없다. 센터페시아 하단에는 록(lock) 디퍼렌셜, 스웨이바 분리 등 오프로드 기능 버튼을 별도로 뒀다. 오프로더여서 필요할 때는 문짝을 뗄 수 있는데, 이럴 때를 대비해 창문 스위치를 모두 센터페시아 아래에 둔 게 특징이다. 기어 레버는 전자식으로 바뀐 지금에도 옛날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레버 위에는 윌리스 MB의 그림을 새겨 놓았다. 랭글러의 스카이 원-터치 파워톰은 스위치 하나로 지붕을 여닫는 기능이다. 시속 96㎞까지 1열과 2열 좌석의 지붕이 완전 자동으로 열린다. 다른 차처럼 지붕 일부만 열리는 게 아니라, 지붕 전체가 완전히 열리는 구조여서 모두 열렸을 때 개방감이 상당하다. 과거에는 이걸 모두 직접 손으로 여닫아야 했는데, 편의성이 높아진 셈이다. 그러나, 지붕이 모두 열리는 특성상 지붕과 차체 간 틈새에서 매우 큰 소음이 발생한다. 차의 속도를 높일수록 들어오는 소음도 커진다. 이런 게 랭글러의 매력이라고 주장하는 랭글러 마니아도 적지 않다. 시승 차에 탑재된 2.0L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은 최고 272마력, 최대 40.8㎏f·m의 힘을 낸다. 출력은 평범한 수준이나, 높은 토크로 순발력이 좋다. 랭글러는 모든 모델에 골격에 차체를 얹은 보디 온 프레임 구조를 적용한다. 그 때문에 온로드(포장도로)를 주행할 때 약간 둔탁한 모습을 보인다. 다만 8단 변속기를 장착해 변속만큼은 매우 매끄럽게 이뤄진다. 33인치라는 거대 타이어 탓에 차가 뒤뚱거리는 느낌도 있다. 코너를 돌 때도 좌우 흔들림(롤링)이 커진다. 큰 타이어지만, 의외로 도로의 굴곡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로드 감성이 그리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는 온로드보다는 오프로드에 집중한 차의 특성 탓이다. 이 때문에 랭글러를 패밀리 SUV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하체 감각은 단단한 편이지만, 오프로더 특성에 맞게 과속 방지턱을 부드럽게 넘나든다. 속도를 높일 경우에는 운전에 다소 무서움도 느껴지는데, 이는 앞뒤 좌우로 흔들림이 큰 랭글러의 본성 때문이다. 운전 초보자는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릴 법하다. 다만 오프로드에 들어서면 ‘물 만난 물고기’가 된다. 조작 범위가 큰 스티어링 휠(운전대)은 큰 돌을 넘거나 웅덩이를 건널 때도 안정적으로 움직인다. 지상고(땅 바닥에서 차 바닥까지의 높이)가 높아 차 하부가 장애물에 걸려 긁힐 염려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수심 76㎝의 물을 건널 수도 있다. 시승 기간 중 약 1500㎞를 주행했는데, 연료 효율은 L당 7.5㎞ 정도였다. 도심의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정체 구간에서는 L당 5㎞ 이하의 효율을 보였다. 시속 80㎞ 이상의 고속 정속 주행 때는 L당 10㎞ 이상의 효율도 보였으나, 전반적으로 뛰어난 효율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고효율의 시대를 거스르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