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설명이 필요 없는 삶을 살아라!”
내가 기계공고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어머니가 우리 삼남매를 불러 앉혀 놓고 설파한 철학이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출산하면 아무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왜 대학 안 갔어?” “왜 결혼 안 했어?” “왜 자식 안 낳아?” 같은 질문이 없는 삶이야말로 편안한 삶일지어다.
하지만 어머니는 몰랐다. 그 평범함의 기준이 ‘인 서울 대학, 대기업, 자가 아파트 딸린 결혼’이 될 줄은. 평범은커녕, 비 범한 노력으로도 힘들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구구절절 설명해야 한다. 온 나라가 불행하다.
11년 전 중소기업에 다닐 때, 대기업 안 간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월급은 적지만, 효능감과 책임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어요.” 솔직히 ‘안 간‘ 게 아니다. 스펙 부족으로 ‘못 갔’다. 목수가 된 지금은 변명이 필요 없다. 목수들의 대기업은 없으니까.
지금은 대기업 대신 쿠팡과 비교하는 질문을 마주한다. 답변으로 과거의 변명문을 그대로 써도 문제가 없다. 다만 대기업은 못 갔지만 쿠팡은 진짜로 갈 수 있다. 청년들은 중소기업에서 배울 게 없다고 느끼면, 쉽게 말해 쿠팡 알바보다 나을 게 없으면 어렵지 않게 ‘EXIT’를 결정한다. 쿠팡은 일하는 청년들의 ’안전 기지‘가 됐다. 듣기 거북해도 현실이다.
불경기가 회사에도 드리운다. 공사도, 가구 제작 주문도 줄었다. 나는 가끔 ‘쿠팡’을 생각한다. ‘혹시 어려울 때 무급 휴직하고 쿠팡 알바를 하면 버텨질까?’ 내 삶 하나는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동산·코스피와 무관한 자는 이 선택이 차라리 든든하다.
청년 국회의원 류호정은 “왜 정치를 하나?”라는 질문에 곧잘 “달라도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답했다. 못 해냈다. 청년 생활인 류호정은 정치가 해야 했던 일을 다시 본다. 더 많은 EXIT를 만들자. 꼭 대기업이 아니어도 효능과 책임을 배우며, 나를 지킬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중소기업을 육성하자. 서울보다는 지방에서 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안 되면 쉬이 해외로 나갈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청년들의 EXIT 선택지가 많아지면 기업이 염원하는 ‘노동 유연화’도 자연스레 이뤄진다.
어울리지 않는 세상 걱정에서 돌아와 나는 설명할 수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다. 뜻밖의 전직에 놀란 이들이 왜 그러고 사는지 묻는다. 질문이 피곤하지 않다. 얻지 못한 ’평범함‘을 변명하지 않는다. 나는 먹고산다, 능히 나를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내 선택을 즐겁게 설명할 수 있는 삶은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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