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2/mk/20251112162407125feuv.jpg" data-org-width="700" dmcf-mid="3TmxLNe4W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2/mk/20251112162407125feuv.jpg" width="658">
지난 10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사진=AFP 연합뉴스>
지난 10일 열린 일본 다카이치 내각의 ‘성장전략 회의’가 눈길을 끕니다.
이 회의는 지난달 21일 사상 첫 일본 여성 총리로
취임한 다카이치 사나에가 주재한 신설 협의체로, 강한 일본 경제를 만들고자 부처 장관들은 물론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 등 민간 경제 산업 전문가가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국내 언론에는 이날 회의 결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방위산업 등 17개 전략 분야 지원 방안을 주로 보도했는데 일본 매체 보도를 보면 회의 방점은 이 6
글자에 찍혀 있습니다. ‘노동시장 개혁’이 그것입니다.
“덜 일하고 월급 줄면 부업에 더 혹사”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취임과 함께 일관되게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9~10월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죠. 그녀
가 이 문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근로 시간을 더 늘려 소득을 높이는 게 기업과 가계 모두에 윈윈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난 정부에서 무리하게 법으로 근무 시간을 강제하면서 근로자 월급이 작아졌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무리하게 부업을 하다가 근로자가 오히려 건강을 잃고 있다는 게 다카이치 총리의 현실 인식입
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법정 근로시간은 어떨까요. 과거 경제 호황 시절 과로 근무의 대표 국가였던 일본은 현재 근로기준법을 통해 근로 시간 상한을 크게 줄인 상태로 ‘1일 8시간, 주 40시간’입니다. 한국과 같습니다.
그런데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초과 근로가 필요할 경우 일본은 ‘월 45시간, 연간 360시간 이내’로 허용합니다. 반면 한국은 이를 주 단위로 관리하는데 ‘12시간’을 넘으면 위법이 됩니다.
한국 산업계는 이 경직된 ‘주 52시간’ 규제를 풀어 기업 가동 현실에 맞게 유연성을 확보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유연하게 초과 근로를 월 혹은 연 단위로 허용하지만 현 다카이치 내각에서 이를 더 수술하려 합니다. 현 노동시간 규제는 일본 경제와 가계 모두에 유리하지 않은 ‘과잉보호’라는 게 그녀의 인식입니다.
최근 다카이치 총리 발언을 빌리자면 “잔업비가 줄어서 생활비를 벌고자 무리하게 부업을 하고 이에 따라 건강을 해치는 분이 나오는 게 걱정(중의원 본회의)”이며 “좀 더 일할 수 있음에도 기업이 과잉 반응하는 괴리 현상이 있다(참의원 예산위원회)”라는 것입니다.
취임 첫 일성으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상황을 개선하자”고 관계부처에 던진 그녀의 당부에선 혁신이 멈추면 일본이 쓰러질 수 있다는 ‘피크 재팬’의 긴장이 느껴집니다.
일본보다 더 엄격한 주 52시간 규제로 움직이는 한국은 정부와 여당, 노동계가 이 문제를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영역으로 보호하는 흐름입니다.
AI·자동화에 빨라지는 ‘주니어 종말’
이런 가운데 얼마 전 한국은행 분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국민연금 가입자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적해보니 인공지능(AI) 기술에 많이 노출된 테크 업종에서 중장년보다 주니어(29세 이하) 고용 감소가 더 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술 변화에 더 빠르고 수용적인 주니어가 왜 더 큰 일자리 피해를 봤을까요.
한은은 상대적으로 정형화한 주니어 업무가 AI에 쉽게 대체된다고 평가합니다. 이를 ‘연공 편향(seniority-biased)’이라고 부르며 한은은 이처럼 주니어 레벨의 고용이 줄면 장기적으로 그 기업의 인재 파이프라인이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호기심이 발동한 기자가 삼성전자 지속가능보고서를 통해 임직원 통계를 살펴보니 이 글로벌 테크 기업 역시 지난 4년간 한은 보고서가 언급한 것과 유사한 편향이 감지됩니다.
전체 직원 수는 2020년과 2024년 각각 26만명대로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이별로는 20대 직원이 4년 새 36.4%(3만6292명) 줄고 40대 이상은 50.9%(2만8701명) 늘었다. 회사가 부쩍 나이를 먹은 것이죠.
최근 사업 재편 및 미래사업 준비 과정에서 젊은 신입보다 경력 채용을 늘렸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자동화와 AI의 물결 속에서 시니어가 집중 피해를 볼 것이라는 관념과 달리 현실은 이처럼 주니어 일자리 붕괴가 더 빨라지는 모습입니다.
지난 자본주의 발전 역사를 보면 기술 혁신은 불가피하게 산업 재편과 고용 감소를 야기하고 이는 소득 불평등을 키우게 됩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새로운 기업과 서비스가 출현하면서 과거에 없었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이는 다시 소득 불평등 압력을 낮추는 기제로 작용합니다. 경제학에서 ‘창조적 파괴’로 부르는 여정입니다.
이 시소게임이 가능해지려면 정부와 기업, 근로자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먼저 정부는 각종 올가미 규제를 풀어 시장의 도전을 장려해야 합니다. 기업의 야성적 도전에 노동계도 힘을 보태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경제는 ‘주 52시간’이라는 노동시간 규제 딜레마와 만나게 됩니다.
반도체부터 게임사에 이르기까지 테크 기업의 연구개발직은 ‘크런치 모드’로 불리는 일시적 집중 근무가 없으면 창조적 파괴는 형용모순이 됩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크런치 모드에 상대적으로 열린 시니어를 더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혁신에 무임 승차하려는 여당과 노동계의 단견이 주니어 일자리 붕괴를 재촉하고 있다는 걱정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더 일하자’는 日 vs ‘더 쉬자’는 韓, 누가 창조적 파괴 승자될까
다시 다카이치 총리로 돌아와서 보자면, 그녀는 성장 전략 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지난 7일 ‘새벽 3시 출근’ 행보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의회 예산위원회 답변 준비를 위해 꼭두새벽에 출근한 것이죠.
당장 야당에서는 “총리가 3시부터라면 직원들은 1시 반, 2시부터 대기해야 한다”는 쓴소리가 나왔습니다. 세상은 그녀의 행보에 “책임감 있다”와 “보좌진 등 근로자를 혹사하는 것”이라는 반응으로 양분됩니다.
기자는 다카이치 총리의 일관된 행보에 비춰 그녀가 상당히 책임감 있는 정치인으로 보입니다.
민심에 민감한 정치인이 근로자를 자극할 수 있는 워라밸 이슈를 거침없이 얘기하는 동시에 자신과 장관 월급 중 국회의원 세비를 초과하는 부분을 스스로 깎으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관 배지와 의원 배지를 동시에 달 수 있는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과연 이들이 세비에 더해 각료 월급을 추가로 가져갈 만큼 비례해 일하느냐는 질문을 다카이치 총리는 용감하게 던지고 있습니다.
한국 경제는 저출생과 꺼져가는 경제 활력 위기로 과거 일본의 침체 경로를 밟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노동 문제 만큼은 워라밸에 무게를 실으며 일시적 집중 근무 논의에 눈을 감고 있습니다.
새벽 3시에 출근하며 국민들에게는 ‘쉴 시간’보다 ‘더 일할 시간’을 압박하는 다카이치 총리의 일본과 주 52시간 규제를 양보 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하는 한국 중 어느 쪽이 ‘창조적 파괴’의 여정에 성공할지 5년 뒤 두 나라의 모습이 궁금할 따름입니다.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