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서 〇〇로 연명한 궁녀는 선인(仙人)이 될 뻔 했다

피효빈민 0 59 2022.06.02 19:28
[한동하의 본초여담]



솔잎, 잣, 복령때는 진나라 말기. 자영(子嬰)이 왕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의 주도자는 관동의 항우로 그는 자영왕을 굴복시키고 도성인 함양(咸陽)을 불살랐다. 진시황이 세운 아방궁은 3개월 동안이나 불타올랐고 항우는 궁의 재물과 궁녀들을 모두 거두어 갔다. 이때 다행히 종남산(終南山) 깊은 산속으로 도망친 한 궁녀가 있었다.궁녀는 도적 떼에 잡힐까 무서워 며칠을 쉬지 않고 산속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산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지 벌써 3일째. 정신이 아득해져 깊은 잠에 빠졌다. ‘이제 죽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꿈인지 생시인지 어느 노인이 나타나 물었다. 노인은 “살고 싶으냐? 만약 살고 싶다면 이것을 먹어 보도록 하거라”라고 했다. 되물어 보려고 힘겹게 눈을 떴지만, 그 노인은 온데간데없었다.주나라 때 백이와 숙제도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수양산에 은거하면서 고사리를 캐 먹다 죽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터라 자신도 비슷한 처지가 될 것이라 절망했다. 그러나 궁녀는 그래도 배고픔에 며칠이라도 살아 보고자 노인이 알려준 것들을 찾아다녔다.시간은 흐르고 진나라가 망한 이후 한나라 성제(成帝) 때에 이르렀다. 어느 날 종남산에서 사냥꾼들 여럿이서 사냥에 나섰다. 그들은 산속에서 옷을 입지 않고 있으면서 온몸에 검은 털이 길게 나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런데 모습은 사람인데, 마치 날아다니는 것처럼 무척 빨랐다. 구덩이를 파 놓아도 금세 빠져나와 도망쳤다. 사냥꾼들은 힘을 합쳐 빠져나갈 계곡들을 포위해서 결국 어렵사리 잡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자였다. 여자의 피부는 뽀얗고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었다. 온몸에 난 털과 긴 머리카락의 색은 칠흑(漆黑) 같았고 윤기가 번지르르했다.“너는 누구냐?” 사냥꾼들이 물었다. 당연히 젊은 여자이었기에 반말로 물었다. 그 여자는 “나는 진나라 자영의 궁녀요. 자영이 항우에게 항복을 당하고 아방궁이 불타 두려운 나머지 이렇게 도망쳐 나왔소.”라고 대답했다. 사냥꾼들은 이 여자가 필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역사서를 보면 자영이 죽은 지 벌써 200년이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그럼 나이가 200살이 넘었다는 말이냐?” “말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산속에서 살 수 있단 말인가?”하고 사냥꾼들은 어안이 벙벙해 소곤댔다. 그러나 여자는 항우가 쳐들어 왔을 때의 일을 너무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말하기에 믿을 만 했다.“그럼 무엇을 먹고살았소? 이 산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초근목피(草根木皮)밖에 없는데 말이오.” 여자는 자신이 산속으로 도망 들어와 굶어 죽게 생겼을 때, 한 노인이 나타나 먹으라고 했던 것을 열심히 찾아 먹었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이오?” 여자는 “바로 솔잎과 잣이었소”라고 답했다.여자는 생 솔잎을 뜯어 먹었다. 맛은 쓰고 떫었지만 그래도 점차 익숙해지고 먹을 만했다. 솔잎을 먹으니 배고픔을 잊을 수 있었고 갈증이 해소되었다. 잣은 고소했고 기름졌으며 기운이 났다. 간혹 소나무 뿌리에 붙은 복령(茯苓)을 캐서 먹기도 했다. 복령은 궁에 있을 때 약방에서 봤던 기억이 있었고, 구황식품으로도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다행이었다.여자는 “내가 이렇게 산속에 숨어 들어와 처음부터 계속해서 솔잎과 잣, 복령 등을 먹고 연명을 해 보니 나중에는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겨울에도 춥지도 않고 여름에도 덥지 아니하였고 몸은 범처럼 날래졌던 것이오.”라고 했다.사냥꾼 중에는 마을에서 의원인 자도 있었다. 그 의원은 “비급천금요방에 복령고방(茯苓膏方)이 있는데, 복령, 송진, 잣, 백자인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곡기를 끊고 한끼씩 배불리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눈이 맑아지며 늙지 않는다고 나와 있고, 열선전(列仙傳)에는 악전(偓佺)이란 사람은 잣을 먹기 좋아하였는데 몸에 털이 몇 치나 되었고 빠른 말처럼 달렸고, 독자(犢子)라는 사람은 젊었을 때 흑산에 살면서 잣과 복령을 먹고 수백 살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오만…”라면서 다른 사냥꾼들에게 설명해 주었다.이어서 “특히 의서에는 잣은 오래 복용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수명이 늘어나며 배고프지 않고 늙지 않는다고 했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오장을 좋게 하며 허약하고 여위어 기운이 없는 것을 보한다고 나와 있소. 그래서 이 궁녀분이 이렇게 젊은 몸을 유지하면서 나이 들어도 죽지 않고 오래 살게 된 것 같소.”라고 했다.사냥꾼들은 궁녀를 데리고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원래 마을 사람들이 평소 먹던 대로 궁녀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그런데 궁녀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의 냄새를 맡자마자 헛구역질했다. 그리고 음식을 한 입 입에 넣자마자 바로 구토했다. 향이 강하고 짜고 맵고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궁녀 자신도 놀랐다. 아물거리는 옛 기억으로 자신이 궁에 있을 때 그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소금과 조청으로 버무리고 갖은양념을 하면 할수록 독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의 음식이 독이나 다름없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어쩔 도리 없이 하루 이틀 조금씩 사람들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궁녀는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음식에 익숙해졌고 하루 3번의 식사를 하지 않으면 배고파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몸에 난 검은 털들은 서서히 빠지면서 얼굴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은 느려졌으며 이제 빠르게 달음질할 수도 없이 점차 늙어갔다. 결국 궁녀는 마을로 잡혀 내려와 사람의 음식을 먹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여느 할머니의 얼굴을 하고서 죽었다.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워하던 차에 의원이 도착했다. 의원은 “만약 이 궁녀가 우리에게 잡히지 않았다면 곧 선인(仙人)을 이루었을 것이요. 과거 신선이 되는 길은 음식에 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것도 우리가 먹는 음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오.”라고 했다. 그때 함께 사냥에 나섰던 이가 “그럼 우리도 궁녀처럼 솔잎과 잣을 먹어보는 것은 어떻겠소?”라고 물었다.의원은 “솔잎이나 잣, 복령이 문제가 아니지요. 보다 중요한 것은 가능한 조미를 덜 한 채로 담백한 자연식을 하는 것이 건강에도 이로울 것이요. 우리는 사람의 음식을 더 짜고 더 달고 더 맵게 만들고, 숯불에 굽고 기름에 튀겨서 먹고, 동물의 기름도 너무 많이 먹는 것이 문제요. 그래서 과거 주나라 관직에서도 식의(食醫)를 질의(疾醫; 내과의)나 양의(瘍醫; 외과의)보다 높이 평가한 것이었소.”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일렀다. 그리고 마을 이름도 궁녀 마을로 바꾸고 앞으로 해마다 오늘 궁녀가 돌아가신 날을 기려서 제를 올리자고 했다.마을 사람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 자극적인 맛을 내는 ‘사람의 음식’을 모두 내버렸다. 그리고 화식(火食)보다는 생식(生食)으로 가급적 자연 상태의 식자재를 먹으면서 된장이나 식초 등 자연의 힘으로 발효 숙성이 된 음식까지는 허락했다. 약 100여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궁녀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120세까지 천수(天壽)를 누리며 무병장수했다. 궁녀 마을 사람은 진정한 약식동원(藥食同源)을 실천한 것이다. 이로써 음식 때문에 죽기도 하고 음식 때문에 살 수도 있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한동하 한동하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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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인 3월 4일 경북 울진군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이재민 보호소를 방문해 산불에 대피한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3월 15일 오후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3리 마을회관에서 산불피해 이재민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기사 대체 : 2일 오후 6시 40분] 경남 밀양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이 '조기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라'는 메시지만 반복해 내놓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울진 산불 현장을 방문해 이재민을 위로하며 "대통령은 헬기를 타고서라도 와야 한다"라고 강조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밀양 산불, 동일한 메시지 반복해 내놓은 대통령실 



▲ 밀양 산림화재 현장 2일 오전 0시께 경남 밀양 산림화재 현장. [소방청 제공]ⓒ 연합뉴스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은 2일 오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산림청과 소방청 등 산불 진화 기관뿐 아니라 국방부와 경찰청 등 유관 부처는 산불을 조기에 진화할 수 있도록 가용 인력과 자원을 적극 지원하고 총력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고 전했다.또한 윤 대통령은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으나 진화가 지연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산불 진화 과정에서 안전사고, 특히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기 바란다"라고 강조하며 "산림청 등 관계기관은 이번 산불 대응과정 전반을 철저히 분석하여 미비점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와 함께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라고 덧붙였다.하지만 이런 메시지는 지난달 31일 대변인을 통해 밝힌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산림청 등 관계 기관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장비와 인력을 신속히 투입하여 산불 조기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라며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인근 주민들을 신속히 대피시키고, 산불 진화대원들의 안전에도 각별히 유의할 것을 당부한다"라고 밝혔다.소방청이 2일 오전 9시 30분을 기해 전국 소방동원령을 1호에서 2호로 격상했고, 헬기 53대, 장비 303대, 인력 1783명 등 '역대급 자원'을 동원하고 있음에도 진화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윤 대통령의 반복된 메시지는 공허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소방동원령 1호가 발령된 지난 3월 4일 울진 산불 당시, 유세를 마치고 오후 10시 40분께 이재민 대피소를 급히 찾아 위로한 것과도 비교된다. 윤 대통령은 당선 후에도 3월 15일 현장을 방문해 "새정부가 출범하면 세심하게 챙기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밀양 산불 발생 첫날인 지난 5월 31일 윤 대통령은 부산을 방문해 오전에 제27회 '바다의 날' 기념식을 참석하고 오후에는 자갈치시장에서 상인·어업인과의 오찬간담회를 가진 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행사에 참석했다. 그러나 부산에서 멀지 않은 밀양 산불 현장은 둘러보지 않고 바로 서울로 이동했다.또한 다음날 1일 오후에는 시민에게 전면 개방된 청와대에서 윤 대통령의 모습이 관람객들에게 포착되기도 했다. 천안함 로고가 그려진 검은색 티셔츠와 모자 차림이었으며, 부인 김건희 여사와 동행하지 않고 혼자서 경내를 둘러봤다. 



▲  윤석열 대통령이 5월 31일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을 찾아 산낙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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