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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월 일본 히로시마대 반도체산업기술연구소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나루히토 일왕의 동생이자 일왕 계승 1순위인 후미히토 왕세제가 이곳을 방문한 것. 그는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슈퍼 클린룸(청정 공간) 등을 견학했다. 이 클린룸은 1989년 일본 대학 중 두 번째로 가동을 시작한 자국 반도체 연구개발(R&D)의 심장 같은 공간이다. 현지에선 국가를 상징하는 왕족이 이곳을 방문한 것에 대해 일본이 반도체산업 부활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란 평가가 나왔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절반을 장악한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 마찰, 한국·대만 등의 부상으로 경쟁력을 잃고 급속히 쇠퇴했다. 2000년대 들어 점유율이 10% 수준으로 쪼그라들며 존재감마저 희미해졌다. 일본은 그러나 법무사 2020년대부터 반도체를 국운이 걸린 사안으로 보고 부활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규슈의 TSMC, 홋카이도의 라피더스를 두 축으로 ‘실리콘 아일랜드’ 재건에 나섰다. 그 뒤엔 1980년대 일본 반도체 영광을 이끌었던 히로시마대, 도호쿠대 등 대학이 있다.
 ◇日 정부 등에 업은 히로시마대


기준금리 인하
최근 찾은 히로시마대 반도체산업기술연구소 클린룸은 500도에 달하는 고온과 높은 방사선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집적회로 연구개발에 한창이었다. 기존 전자기기는 최고 150도, 방사선 1kGy 이상 환경에서 사용하기 어렵지만, SiC 집적회로는 이 범위를 크게 늘릴 수 있다. 구로키 신이치로 연구소 학자금당일대출 부소장은 “전기차 등에 쓰이는 냉각이 필요 없는 집적회로나 금성 탐사 등 우주 개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폐로 작업 로봇 등 다양한 응용이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히로시마대가 반도체 R&D를 본격화한 것은 1980년대다. 일본 반도체업계에선 ‘서쪽의 히로시마대, 동쪽의 도호쿠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두 대학이 양대 산맥을 이뤘다. 대구유니온저축은행 당시 히로시마대는 반도체 3차원 적층 기술 연구의 산실이었다. 현재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원조 기술이다. 일본의 반도체산업이 주저앉으면서 대학도 명성을 잃어 갔다. 히로시마대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클린룸 폐쇄까지 고민했다. 대학 내 위상이 떨어진 데다 유지 비용만 1년에 1억엔씩 소요됐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집권 자민당이 아파트 매매 중개수수료 2021년 ‘반도체전략추진의원연맹’을 출범하면서부터다. 반도체를 경제안보의 핵심으로 보고 대규모 예산 지원을 요청했다. 일본 정부는 2021년부터 3년간 반도체 분야 지원에 3조9000억엔을 투자한 데 이어 2030년까지 10조엔을 더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이 자금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의 일본 규슈 진출로 이어졌다. 첨단 반도체 양산을 추진하는 일본의 ‘반도체 연합군’ 라피더스 지원에도 쓰이고 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히로시마대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2023년 이 대학 반도체산업기술연구소를 중심으로 미국 마이크론 등 지역 반도체 관련 기업 13곳과 히로시마현 등 자치단체까지 참여하는 산·관·학 연계 조직 ‘세토우치 반도체 컨소시엄’이 출범했다. 히로시마대는 이에 맞춰 최신 반도체 R&D 설비를 갖춘 ‘J이노베이션 허브관’을 신설했다. 600도 환경에서 집적회로를 평가하는 시스템, 100㎓ 수준의 고주파 통신·디바이스 평가 설비까지 들여왔다.
 ◇글로벌 대학과도 협력



히로시마대의 반도체 R&D 부활에는 기업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대학에서 5㎞ 거리에 있는 세계 3위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의 히로시마 공장이 대표적이다. 애초 이 공장은 1980년대 일본 전자업계를 이끌었던 NEC의 생산시설이었다. 이후 NEC와 히타치가 합작한 엘피다에 넘어갔고, 2013년 마이크론이 엘피다를 인수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마이크론은 이 공장에 2조엔가량을 투자해 첨단 D램을 양산하는 한편 히로시마대와 함께 R&D에 힘쓰고 있다. 연구소에서 개발한 D램용 재료를 공장에 가져가 활용하는 식이다.
마이크론과 히로시마대는 일본 반도체산업을 이끌 인재 육성에도 나섰다. 기자가 연구소를 찾은 날에도 마이크론에서 나온 엔지니어의 수업이 한창이었다. 구로키 부소장은 “지난해부터 마이크론 엔지니어가 연구소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작년까지는 대학원 양자과학 분야 내 반도체 코스로 진행됐지만, 올해부터 반도체 독립 코스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마이크론의 인턴십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최근엔 글로벌 대학과의 연계도 눈에 띈다. 히로시마대는 2023년 미·일이 맺은 반도체 제휴 파트너십에 참가했다. 이 파트너십은 히로시마대, 도호쿠대, 도쿄공업대, 나고야대, 규슈대 등 일본 5개 대학과 퍼듀대, 보이시주립대, 워싱턴대, 로체스터공대, 렌슬리어공대, 버지니아공대 등 미국 6개 대학이 함께 이끈다.
지난 6월엔 미국 아이다호대가 히로시마대에 캠퍼스를 개설한다고 발표했다. 공학 분야에서 미국 대학이 일본에 캠퍼스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콧 그린 아이다호대 총장은 “미국에서도 반도체 인력 수요가 큰데 아이다호대 공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히로시마대와의 국제적인 인재 양성은 미국 국익에도 연결된다”고 말했다.
히로시마=김일규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