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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지지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는 게 있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정치에서 지지도는 모든 것입니다. 지지도가 높아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선거에서 이겨 집권한 뒤에도 지지도가 받쳐줘야 국정을 이끌어갈 동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지지도가 낮아서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을 ‘레임덕’이라고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지지율)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든든학자금 상환 한국갤럽이 12일 발표한 정례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는 58%였습니다. 1주일 전 63%보다 5%포인트 떨어졌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취임 100일 58% 지지율은 꽤 높은 수치입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취임 100일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사람은 김영삼 대통령이었습니다. 무려 83%였습니다. 취임 초 전세자금대출 집주인 동의 청와대 앞 길과 인왕산 개방, 공직자 재산 공개, 하나회 숙청 등 고강도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문재인 대통령 78%, 세번째는 김대중 대통령 62%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100일 성적표는 네번째입니다. 참고로 꼴찌는 이명박 대통령 21%였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8%로 꼴찌에서 기업은행 주택담보대출금리 두번째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이 꽤 높은 이유가 뭘까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이를테면 ‘윤석열 반사 효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역대 최악의 대통령입니다. 후임자는 반사 이익을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김대중· 미소금융사업 문재인 대통령의 100일 지지율이 높았던 이유도 전임 대통령의 실정에 따른 반사 효과로 일정 부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구속 이후에도 여러 악행이 드러나며 국민의 분노를 끊임없이 부추기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바로 윤석열·김건희 부부입니다.
고등학교 기숙사 반사 효과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소비 심리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상승세입니다. 기업과 노동을 모두 중시하는 ‘양 날개 전략’이 긍정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외교·안보 분야의 안정성도 돋보입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한-일 정상회담, 한-미 정상회담을 무난히 마쳤습니다. ‘조지아 사태’라는 엄청난 악재를 신속히 해결했습니다. 앞에 소개해 드린 한국갤럽 여론조사의 분야별 정책 긍정 평가는 복지 52%, 외교 47%, 경제 43%, 노동 43% 순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 실용주의 노선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와 한국정당학회가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STI)에 의뢰해 9월3일부터 7일까지 ‘2025~2026 유권자 패널조사(2차)’를 실시해 11일치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 실용주의 노선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국정 운영 긍정 평가자(62.7%) 가운데 23.1%는 6·3 대통령 선거 이후에 새로 유입된 ‘뉴 이재명’ 유권자로 밝혀진 것입니다.
‘뉴 이재명’ 유권자는 남성, 30대, 중도층이 많았습니다. 대선 전부터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했던 ‘올드 이재명’ 유권자의 주축이 여성, 40~50대, 진보층인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만약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62.7% 중에서 ‘뉴 이재명’ 유권자를 제외하면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48.2%로 낮아집니다.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새로 유입된 ‘뉴 이재명’ 유권자 덕분에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계속 유지하려면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강화해 ‘뉴 이재명’ 유권자를 붙잡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서 3대(김건희·내란·채 상병) 특검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조짐이 나타났습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0일 회담에서 민주당은 3대 특검법 개정안을 일부 완화하고 국민의힘은 정부조직법 개정에 협력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없던 일이 됐습니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과 당원들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입니다. 정청래 대표는 11일 아침 출근길에 “어제 협상안은 제가 수용할 수 없었고, 지도부의 뜻과도 다르기 때문에 바로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몇 시간 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벌어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란 특검을 연장 안 하는 조건으로 정부조직법을 통과시켜주기로 했다면서, 그게 ‘이재명이 시킨 것 같다’는 여론이 있다. 뒤에서 슬쩍 (대통령이) 시킨 것 같다고 저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게 하길 바라지 않는다. 협치는 야합과 다르다.”

“내란의 진실을 규명해서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서 다시는 대한민국에서 내란이라는 군사 쿠데타가 벌어지는 일이 결코 있으면 안 된다. ‘이 당연한 걸 어떻게 맞바꾸나’ 하는 게 제 생각이다.”

정청래 대표보다 이재명 대통령이 훨씬 더 비타협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강경론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의 강경론에는 문제가 좀 있습니다. 이런 논리라면 앞으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어떤 정치적 합의도 불가능합니다. 협치와 야합을 구별할 수 있는 기준이 뭘까요? 이재명 대통령이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만나서 회담한 것은 협치일까요, 야합일까요?
무엇보다도 이런 식의 강경론이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에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될까요? ‘내란 척결’을 지나치게 밀어붙이면 중도층이 이탈할 위험이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뉴 이재명’ 유권자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은 절반 이하로 무너지게 됩니다. 이게 과연 바람직할까요?
이재명 대통령은 늘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요구를 따랐습니다. 지난해 5월 국회의장 후보자 선출을 앞두고 당원들은 추미애 의원을 지지했습니다. 추미애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과 가장 강하게 맞서 싸운 정치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추미애 의원이 아니라 우원식 의원을 선택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권리당원들의 탈당이 잇따르자 민주당은 국회의장 후보자와 원내대표를 선출할 때 권리당원 투표 20%를 반영하도록 당헌·당규를 개정했습니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개별적으로 물어보면 국회의장 후보자나 원내대표 선출에 권리당원의 참여를 허용한 것은 잘못이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국회의장 후보자나 원내대표 선출에 권리당원을 참여시키는 것이 정당하다면 아예 권리당원들에게 국회의장 후보자나 원내대표 선출권을 넘겨주자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이렇게 되면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은 존재의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정치의 기본인 대의민주주의 원리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저는 김병기 원내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의 합의를 거부한 정청래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의 결정도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민의힘이 아무리 싫어도 대화와 타협의 상대로 인정하는 것이 정치의 기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는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2017년 대선 1호 공약은 ‘적폐 청산’이었습니다. 대선 뒤에도 적폐 청산을 앞세워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습니다. 민주당은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러나 적폐 청산은 반대 진영을 결집시켰습니다. 민주당은 2021년 4·7 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내줬고, 2022년 3·9 대선에서 패배했습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최근 ‘벼랑 끝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라는 책을 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니라, 상호 적대적이던 정치 세력이 새로운 경쟁의 규칙에 합의함으로써 가능했던 정치적 타협의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은 이와 같은 협약의 정신을 무시했고, 그로 인해 1987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온 핵심 가치인 ‘공존과 상호 인정’의 토대를 흔들었다.”

“1987년 민주화가 이룬 타협과 공존의 정신을 훼손한 적폐 청산은 사회를 선악의 이분법으로 갈라놓았다. 적폐 청산은 그들의 지지층 결속에는 기여했을지 모르지만, 반대편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악’으로 규정되는 데 깊은 분노를 느꼈다.”




어떻습니까?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4일 취임 선서 뒤 대국민담화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를 갈라놓은 혐오와 대결 위에 공존과 화해, 연대의 다리를 놓고 꿈과 희망이 넘치는 국민 행복 시대를 활짝 열어젖힐 시간입니다.”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지킬 것으로 봅니다. 이재명 대통령 말처럼 대통령은 ‘국민을 크게 통합하는 우두머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