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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안에서 모든 걸 시작하고 끝내야 했어요. 그래서 지옥 같은, 절망 같은 날들을 보냈습니다. 처음 악보와 음원을 드렸을 땐 심사, 채점 받는 초등학생 같은 기분이었어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에서 ‘인페르노(Inferno·지옥)’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곡가 정재일은 23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신작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창작의 고통을 토로했다. 서울시향은 오는 25~26일 롯데콘서트홀 정기연주회에서 그의 신작 인페르노를 초연한다. 정재일이 주택청약가점제 오케스트라 곡을 쓴 적은 많지만 대부분 영화의 OST였다. 소재 선정부터 곡의 기승전결까지 모든 음악적 요소를 본인의 내면에서 이끌어낸 관현악곡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재일은 장르를 넘나드는 연주자이자 작곡가다. 17세 때 베이시스트로 밴드 ‘긱스’에 참여한 그는 패닉·박효신·아이유의 작곡과 프로듀싱을 맡았고, 영화 ‘기생충’, ‘옥자’, 상공인지원센터 ‘브로커’ 등의 음악을 담당했다. ‘오징어 게임’으로 미국 할리우드 뮤직 인 미디어 어워즈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왼쪽)이 23일 서울 종로구 더프리마아트센터에서 열린 '2025 서울시향 신작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9월 청약 . 오른쪽은 작곡가 정재일. 연합뉴스


그런 그도 브람스, 파가니니 등이 연주되는 클래식 무대에 신곡을 올리는 건 처음이다. 도전의 시작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얍 판 츠베덴은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임명된 직후인 2023년 1월 기자회견에서 “오케스트라는 재능 있는 작곡가들에게 작곡의 기회 한국정보화진흥원 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그 예로 정재일을 들었다. 한 달 뒤 정재일은 앨범 ‘리슨(Listen)’ 발매 기념 기자회견에서 츠베덴의 제안에 대해 “부담은 되지만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러브콜에 화답했다.
이후 4월 츠베덴이 입국했을 때 둘의 ‘오프라인 만남’이 이뤄졌다. 정재일은 “자리에 나가면서도 ‘나는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한 햇살론 자격조건 사람도 아니고, 콘텐트를 위한 음악을 작곡했던 사람이라 단 하나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은 못 만들지 않을까’ 하며 선생님을 뵈러 나갔다”며 “그런데 마에스트로께서 ‘네가 할 수 있는, 잘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고 격려하셔서 곡을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수락은 했지만,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약 1년 간 ‘창작의 고통’이 이어졌다. “영감을 받았던 소설(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속 대사를 나레이션으로 삽입할 지를 두고 곡을 쓰는 내내 고민”했고, 어떤 때는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안갯 속을 걷는 듯 막막”했다. 그럴 땐 그냥 피아노 앞에서 버텼다. 때론 영화 ‘미키 17’ 이후 함께 일한 오케스트레이터(관현악을 위한 편곡자)들의 도움도 받았다. 고통의 고리를 끊은 건 마감이었다. 정재일은 “계속 실험, 학습하다가 약속 기간이 다가오면 초인적인 힘이 나온다. 그렇게 해서 완성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악보를 넘기고 나서도 조마조마했다. 정재일은 “(클라이언트와 즉각 소통하며 만드는 영화 음악 작업과 달리) 악보를 드리고 바로 반응을 받지 못했고, 감히 묻지도 못했다”며 “전날(22일) 리허설은 정말 100명의 연주자들이 내 시험지를 채점하는 선생님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군대 갔을 때도 브람스 심포니 1번 미니 스코어(악보)를 몰래 숨겨서 갔었는데, 이번 공연에 그런 브람스와 한 무대에 선다고 생각하니 ‘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정재일은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받고 쓰는 게 아닌, ‘음악만을 위한 음악’을 쓰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우연찮게 제가 함께 작업했던 영화들이 해외 성공을 거두며 유럽에서 공연할 기회가 많아졌다”며 “무대의 주인공으로 서는 건 너무 무서운 경험이지만 한편으론 ‘라이브 음악’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을 다시 느끼게 됐다. 앞으로도 저의 음악만을 위한 음악, 쇼들은 계속 더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