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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간 한국 미술계에서 많은 관람객의 발길을 모으며 화제가 된 전시를 꼽으라면, 가장 먼저 론 뮤익과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가 떠오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론 뮤익 전시는 과장된 사실주의 조형물로 주목받았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강렬한 이미지와 스펙터클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즉각적인 감성 경험을 선사했다. 리움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는 또 다른 방식으로 대중적이었다.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여놓은 작품은 언론과 SNS에서 화제가 되었고 전시장은 마치 거대한 밈(meme) 제조 공장처럼 작동했다. 방향은 다르지만 론 뮤익과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에는 각각 긴 설명 없이도 대중을 사로잡는 압도적 이미지와 직설적 유머동양종금ELW
라는 감각적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9월 초 리움에서 시작된 이불(Lee Bul) 전시는 론 뮤익이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와는 전혀 다른 당혹스러움을 대중에게 안겨준다. 전시장 입구로 이어지는 내리막길 천장에 걸린 거대한 비행선에 이어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나타나는 낯설고 불친절한 구조물, 맥락 없이 널려있는 수많은 거울 파편, 자개증권뉴스
와 아크릴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생경한 빛을 발하는 회화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는다. 그 앞에 선 순간, 많은 이들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건 도대체 뭐지? 어떻게 봐야 하지?”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 2015-2016, 2020 / 사진. ⓒ리움미술관시원스탁



바로 이 당혹스러움을 넘어서는 지점에 이불 전시의 감상 포인트가 있다. 많은 사람이 느꼈을 이러한 반응은 전시 감상을 막아서는 장벽이라기보다는 역설적으로 현대미술의 감상법을 되새기게 해주는 친절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세 권의 책이 알려주는 현대미술 감상의 세 가지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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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질문은 단지 리움에서 이불의 작품을 마주한 관람객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마르셀 뒤샹이 평범한 남성 소변기에 가상의 작가 이름(R. Mutt)을 서명하고 <샘 (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시하며 미술계를 뒤흔든 것이 1917년이었다. 미술사를 새로 쓰게 만들었던 이 전시 이후 백여 년 넘는 긴 세월바다이야기pc버전다운
동안 수많은 비평가와 연구자들이 현대미술을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를 논의해 왔다. 여기서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은 이러한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대중들의 전시 관람을 돕기 위해 쓰인 일종의 가이드로서, 이번 이불 전시를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마이클 핀들리의 <예술을 보는 눈 (The Value of Art)>은 미술을 보는 관점을 상업적·사회적·본질적 측면으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작품의 가치는 가격이 아니라 관객 각자의 고유한 경험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작품이 수십억 원에 거래되든, 무료로 공개되든, 결국 내가 그것을 봤을 때 무엇을 느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존 버거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 (Ways of Seeing)>에서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은 알고 있는 것 또는 믿고 있는 것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미디어, 광고, 전시장의 권위 속에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훈련받는다. 따라서 작품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고착화된 내 시선 자체를 의심하고 질문하면서 새로운 방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존 버거 , 오시안 워드 / 사진출처. 예스24"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09/29/ked/20250929154549935tcsz.jpg" data-org-width="1200" dmcf-mid="1FVl5bwMTI"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29/ked/20250929154549935tcsz.jpg" width="658">

(왼쪽부터) 마이클 핀들리 <예술을 보는 눈>,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오시안 워드 <현대미술의 여섯가지 키워드> / 사진출처. 예스24


오시안 워드는 <현대미술의 여섯가지 키워드(Ways of Looking)>에서 현대미술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계적 접근법을 제안한다. 선입관이 없는 백지와 같은 상태에서 시간을 들여 보고(Time), 시각적 끌림을 통해 흥미를 갖고 관계를 맺으며(Association), 배경을 탐색하고(Background), 이해하며(Understand), 다시 보고(Look again),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하는(Assessment) 과정이 그것이다. 이는 낯선 현대미술을 놀이처럼 탐험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법이다.
이 세 가지 관점을 기억해두면, 이불의 전시에서 느끼는 당혹스러움은 오히려 다양한 해석과 풍요로운 경험으로 채워진 행복한 기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나 - 이불의 거울 연작
리움 전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거울을 활용한 대형 설치 작품이다. 이불은 거울 조각을 불규칙하게 이어 붙여 미로 같은 집을 지었다. 내부로 들어가 끝을 알 수 없는 공간을 탐색하는 동안 분절된 나의 모습이 끝없이 증식하며 나를 둘러싼다. 거울 속의 시선은 다름 아닌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어지럽지만, 동시에 빈 공간에서 낯선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다.



비아 네가티바, 2022 (2012년 작 재제작) / 사진. ⓒ리움미술관


핀들리의 말대로 중요한 건 미술사적 맥락이 아니라 내가 느낀 감각이다. 파편화된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낯설게 다가올 때 느껴진 그 감각이 곧 작품의 가치다. 불안이든 매혹이든, 그것은 나만의 경험이다. 그 경험 과정에서 느껴진 미묘한 감정선이 그 후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전시는 제 값어치를 한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버거의 시각이 떠오른다. 거울은 단순히 얼굴을 비추는 물체가 아니라,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의식하는가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현대적 시선의 정치학을 드러낸다.
워드의 접근법을 따른다면, 한참 동안 거울 미로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Time), 언젠가 보았던 영화 속 장면이나 소설 속 이미지를 연상하며(Association), 1990년대부터 인간과 기계, 욕망과 권력의 긴장을 탐구해 왔다는 작가론적 배경을 떠올리고(Background), 작품에 내재된 의미를 좀 더 깊이 되새겨본다. (Understand) 그러고 나서 다시 한번 작품을 보면(Look again), 처음의 혼란스러움은 조금씩 사라지고 새로운 의미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Assessment)



비아 네가티바, 2022 (2012년 작 재제작) / 사진. ⓒ리움미술관


반짝이는 표면의 충돌 - 자개와 아크릴의 혼성 회화
자개와 아크릴을 겹쳐 만든 일련의 회화 작품은 또 다른 강렬한 체험을 선사한다. 자개는 한국의 전통 수공예에서 흔히 쓰이던 재료다. 그러나 이불은 그것을 평면 회화에 들여와 산업적 재료인 아크릴과 혼합하여 새로운 질감과 미감을 만들어낸다. 그 두 재료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반짝임은 익숙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그 결과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빛과 색이 부딪히며 이제껏 만나지 못했던 미적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퍼듀XVII, 2019 / 사진. ⓒ리움미술관


핀들리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개와 아크릴의 혼합체를 앞에 두고 당신이 떠올린 기억이 곧 작품의 가치다.’ 누군가는 할머니 댁 장롱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도시의 밤을 떠올릴 수 있다. 각자의 경험이 작품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버거의 관점으로 보자면 자개와 아크릴의 충돌을 색다른 ‘시선의 훈련’으로 읽을 수 있다. 뭔가 귀하고 전통적인 느낌의 자개와 어쩐지 싸구려 공산품 느낌의 아크릴이 뒤섞이며 상반된 두 가지 고정관념을 뒤흔들고 또 다른 미학적 관점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워드는 단계별 접근을 권할 것이다. 이 색다른 추상 작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그 과정에서 떠오른 개인적 기억을 되새기며, 작가가 왜 이 두 가지 재료를 섞어서 작품의 재료로 삼았는지를 탐색하고 이해하면서, 작품을 다시 보면, 미묘하게 화려한 느낌으로 반짝이는 표면 너머에 시대와 정체성이 충돌하는 색다른 장이 펼쳐져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무제(취약할 의향–벨벳 #15), 2021 / 사진. ⓒ리움미술관


이러한 양가적 특성의 재료 활용이나 이질적 가치의 충돌을 통한 새로운 미감의 표현은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아왔다. 2008년의 베니스 비엔날레, 2018년의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2019년의 베를린 마틴 그로피우스 바우 등 일련의 주요 전시에 대해 분열된 주체에 대한 은유나 유토피아와 불안이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긴장에 대한 평가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도 불구하고 이불의 전시에 대한 비평에는 상반된 가치나 모순적 감각에 대한 묘사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론: 현대미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해외 주요 미술관과 매체에서의 지속적인 주목과 긍정적 비평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당혹스러움으로 다가오는 이불 전시를 관람객은 어떻게 경험할까? SNS에 즉시 올릴 수 있는 ‘포토존’적 효과는 론 뮤익이나 마우리치오 카텔란에 비해 적을 수 있다. 물론 거울을 매체로 활용한 몇몇 작품이나 자개 화면의 반짝임이 어떤 관람객에게는 충분히 매혹적인 배경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셀카 배경으로 활용된 사진 속 작품들이 단순히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기록과 과시를 넘어, 내가 그 사진 속에 담긴 순간 어떻게 보였고, 그 모습을 만들기 위해 나를 어떻게 연출했으며, 더 나아가 특정 작품을 배경으로 삼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가를 반추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이불_1998년 이후》 전시 전경 / 사진. ⓒ리움미술관


론 뮤익이 보여준 감각적 압도나 마우리치오 카텔란에 선사한 유머러스한 풍자와는 달리 이불은 섣부르게 판단하기 힘든 혼란함을 감상자에게 제공한다. 거울 속에서 낯설게 분절된 나, 자개와 아크릴이 충돌하는 표면에서 느껴지는 이질감. 어쩌면 그런 작품들 앞에서 느껴진 당혹스러움 자체가 바로 현대미술의 진정한 즐거움일 수 있다. 이불의 작품 앞에서 “난 잘 모르겠는데…”라는 느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바로 그 순간이 현대미술 감상의 시작인 것이다.
핀들리의 경험 중심적 태도, 버거가 강조한 시선의 의심, 워드가 권하는 단계적 접근을 따라간다면, 혼란은 곧 풍요로운 발견이 되며, 당혹스러움은 감상의 장애가 아니라 오랜 기억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불은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니?” 그 질문 앞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곧 현대미술 감상의 진정한 즐거움일 것이다.
▶▶[관련 리뷰] 우리만 몰랐던 현대미술의 전설...이불의 철학, 리움이 품다
용호성 문화예술평론가·前 문체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