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최진성(58) 영업이사의 사무실 책상. 판매 대수만큼이나 많은 서류들이 책상에 쌓여 있다. 백재연 기자
“제가 명함이 좀 큽니다.” 지난 16일 오전 10시,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서대문중앙지점에서 만난 최진성(58) 현대차 영업이사는 A4 크기의 전단지를 건넸다. 전단지에 적힌 이름은 ‘최진실’. 29년 전 영업을 시작하며 만든 가명이다.
외우기 쉽도록 그 당시 가장 유명했던 배우 이름을 따왔다는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휴대전화가 울렸다. 최 이사는 곧바로 목소리 톤을 높여 고객을 응
바다이야기2 대했다. 이날 확인한 그의 휴대전화에는 오전 8시10분 고객에게서 걸려온 첫 전화가 찍혀 있었다. 그로부터 약 3시간 동안 걸려온 전화만 서른 통에 달했다.
전화는 끊임없이 울렸다. 한 통화에서는 계약 이야기를 하다, 다음 통화에서는 리스·렌트 방식과 옵션을 따졌다. 또 다른 통화에서는 “내일 오전에 들를게요”라고 못을 박기도 했다. 그의
바다이야기오리지널 카카오톡 친구 수는 4065명이다.
‘열혈 장사꾼’ 최 이사의 전단지 명함 앞면과 뒷면 모습. 백재연 기자
현대차 최초로 누적 판매 8000대를 달성했지만, 그는 스스로를 “모래알 같은 존재”라고 표현했다. “후배
우주전함야마토게임 들에게 늘 ‘현대자동차에는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동시에 ‘내가 아니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는 겸손함도 함께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고요.”
오후 12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에서 고객 강모(41)씨를 만났다. 고객을 만나러 가는 길, 그는 자신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12월 구매 혜택·이벤트’ 전단지를 상가
게임몰릴게임 곳곳에 뿌렸다. 숨 쉬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이렇게 뿌리는 전단지는 한 달에 약 5000장이다. 물론 모든 반응이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항의 문자도 종종 받는다.
강씨는 최 이사의 3년 단골 고객이다. 주변 소개로 최 이사를 알게 됐다는 강씨는 이번에도 업무용 차량 구매를 위해 그를 찾았다. 강씨는 “보통은 뭔가 궁금한 점이 생겨
릴짱릴게임 문의하면 ‘확인하고 연락드릴게요’라고 하지 않나”라며 “최 이사는 다르다. 문의를 하는 즉시 확인해 바로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최 이사와 고객 강모(41)씨가 미팅을 하고 있는 모습. 백재연 기자
최 이사는 “자동차는 필요해서 사는 물건이지, 저를 안다고 사주는 물건은 아니다”라며 “제가 할 수 있는 건 성의를 보이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성의는 고객을 영업사원으로 만든다. 강씨 역시 포항에 사는 처남에게 최 이사를 소개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최 이사가 광주·강원·대구·제주 등 전국을 오가는 이유다.
오후 12시 30분, 미팅을 마친 최 이사는 곧장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신차 선팅 업체 아이나비를 찾았다. 이날 출고 예정인 제네시스 GV70 탁송을 위해서다. 전준수(68) 아이나비 종로점 사장은 “20년째 봐왔는데, 한결같이 성실하다”고 말했다.
선팅 과정에서 차량에는 미세한 얼룩이 남기도 한다. 지난 10월 출고한 SUV 차량도 그랬다. 차량을 확인한 고객은 인수를 거절했다. 최 이사는 선팅 업체를 탓하는 대신, 어떤 세정제가 좋은지부터 물었다. 전 사장은 다음 날 오전 7시, 세정제를 들고 나타난 최 이사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직접 얼룩을 지운 그의 노력 덕에 차량은 문제없이 출고됐다.
연미복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혈압 재던 영업사원
최 이사의 차량 현대 아이오닉6 뒤편에 놓인 박스들. 박스 안에는 매년 11월부터 돌리는 새해 달력이 박스째 놓여 있다. 너무 바빠 차의 비닐을 아직 뜯지 못했다고 한다. 백재연 기자
최 이사의 전단지 명함에서 볼 수 있는 연미복을 입고다니던 시절의 사진들. 백재연 기자
전 사장이 20년 전 처음 본 최 이사는 하얀색 연미복에 빨간색 나비넥타이를 매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선배의 “안 입는 연미복이 있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받아온 옷이었다. 자켓 등판에 ‘현대자동차 최진실’을 큼지막하게 새겼지만, 막상 밖에 입고 나가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는 일주일 동안 사무실에서 연미복을 입고 지내며 ‘부끄러움’부터 길들였다.
눈에 띄는 옷만으로는 사람들이 전단지를 봐주지 않았다. 당시 주 무대는 남대문·동대문·중문 등 서울 내 시장. ‘말을 걸 이유’가 필요했던 그는 혈압계와 혈당계를 샀다. 개인이 단순 측정을 해주는 행위가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뒤, 수축기·이완기, 공복·식후 혈당 같은 기본 지식을 공부했다. 전단지를 내미는 대신 상인들의 손목을 잡고 숫자를 읽어줬다.
그는 ‘궂은 날’을 특히 좋아한다. 눈이 퍼부어 차도 오토바이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날, 오히려 더 악착같이 움직인다. “이런 날씨에 왜 왔어요”라는 말이 나오면, 말은 핀잔 같아도 마음은 이미 풀린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광화문 일대처럼 집회·시위가 잦은 곳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고 어떻게 왔어”라는 말에 그는 “두 발로 걸어왔지요”라고 받아쳤다.
이제는 연미복을 입지 않는다. “너무 강하면 부러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객 소개로 강남의 외국계 회사에 방문했다가 “그 복장으로 회사에 나타나 난감했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시장에서는 재미가 되지만, 회사에서는 무례로 읽힐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변한 게 아니라 바뀐 거지요. 나비넥타이는 아직도 챙겨 다닙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영업 현장이다”
최 이사가 이날 숨 쉬듯 뿌리고 다닌 전단지. 보통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툭 얹어 놓고 간다. 백재연 기자
1998년, 연미복을 입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어느 날 광화문 일대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쇄골이 부러져 수술대에 올랐지만 다리는 멀쩡했다. 정형외과 병동을 둘러보니 교통사고 환자가 많았다. 그는 그 자리에서 ‘새 차가 필요한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실마다 명함을 돌렸다. 같은 환자라는 공통점 덕에 경계심도 빨리 풀렸다. 의사가 “제발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하면, 그는 “명의가 고쳐줬는데 제가 빨리 나가야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3개월 동안 병원에서 차 8대를 팔았다.
경찰 고객이 생긴 것도 그 무렵이다. 사고 처리로 경찰서를 드나들다 문득 생각했다. ‘여긴 영업사원이 잘 안 오겠네.’ 일반인은 사건 당사자나 민원인이 아니면 쉽게 발을 들이기 어려운 공간이다. 그는 그 틈을 ‘현장’으로 봤다. 이후 서울 시내 경찰서를 찾아다니며 민원실 등 접근 가능한 공간에 전단지를 놓고 말을 걸었다. 경찰 고객은 하나둘 늘었고, 지금은 서울 시내 경찰서 13곳이 그의 ‘관할’이 됐다.
오후 2시35분, 새 번호판을 단 제네시스 GV70을 타고 경기 일산 탄현동의 한 아파트에 도착했다. 20년간 구형 SUV를 몰아온 중년의 고객에게 최 이사는 1시간 넘게 ‘디지털 스마트키’ ‘엉뜨’ 같은 기본 기능부터 운전자 없이도 차량이 스스로 앞뒤로 움직이며 주차해주는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기능까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이순안(65)씨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게 차근차근 설명해줬다”며 “문의하기도 전에 폐차 시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까지 미리 확인해 알려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할 일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최 이사가 이순안(65)씨에게 제네시스 GV70 기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기능이 너무 많고 어렵다"는 이씨의 말에 최 이사는 "세상에 어려운 차는 없어요. 재미있으실 겁니다"라고 답했다. 백재연 기자
최 이사는 이런 ‘영업의 디테일’이 결국 사람을 움직인다고 봤다. “집은 부동산이고, 자동차는 동산이죠. 동산도 등기를 합니다. 취등록세, 명의 이전, 등록, 말소…. 고객이 모르는 게 당연해요. 호텔이 좋은 이유가 인포메이션 때문이잖아요. 거기에 가면 다 해결되니까요. 저는 고객이 차를 사고팔 때 번거로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씨가 폐차할 구형 SUV를 타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니 오후 5시 30분이 훌쩍 지났다. 빠르게 자신의 차로 갈아탄 최 이사는 곧바로 또 다른 선팅 업체로 향했다. 서울 영등포구 가마산로에 위치한 선팅 업체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7시를 막 넘긴 시각이었다. 번호판을 업체에 넘긴 그는 다음 날 일정과 이동 동선을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정리했다.
고객 앞에서는 천천히,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지만 그의 생활 리듬은 이처럼 전반적으로 빠르다. 걸음걸이도, 식사 속도도 남들보다 배는 빠르다. 내일 해도 될 일이라도 오늘 처리해 시간을 벌고, 그렇게 남은 시간에 다시 시장·경찰서·병원으로 향한다. 한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를 거는 것도 그때다. 다음 날 전달해도 될 새 번호판을 굳이 이날 넘긴 이유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22일 현대차 서울 강남대로 사옥에서 진행된 ‘현대 호프 온 휠스 톱 클래스 매칭 그랜트 기증식’에서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최 이사는 왼쪽에서 다섯 번째. 현대자동차 제공
회사 동료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현대차 수원지점 권길순(57) 부장은 최 이사에 대한 솔직한 첫인상을 먼저 꺼냈다. 그는 “주변에 별난 사람이 있으면 솔직히 멀리하고 싶지 않나. 처음엔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생각은 시간이 지나며 완전히 바뀌었다. 권 부장은 “가까이서 보니 ‘반전 매력’이었다. 저렇게 강한 사람이 어떻게 차를 잘 팔까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그 강함이 전부 자기 자신을 위한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권 부장이 가장 크게 인식을 바꾸게 된 계기는 7년 전 최 이사가 주도해 시작한 기부 활동이었다. 연간 판매 실적에 따라 전국 상위 1~10위를 선정하는 ‘전국판매왕’에 17년 연속 이름을 올린 최 이사는, 판매왕들이 모여 있는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2019년 모임에서 “먹고 마시지만 말고, 좋은 일을 해보자”며 기부를 제안했다. 차량 1대를 팔 때마다 2000원씩 적립해 연말에 모아 기부하자는 방식이었다.
이 작은 약속은 해마다 이어져 올해로 7년째를 맞았다. 영업사원들의 제안에 회사도 화답했다. 판매왕들이 모은 금액만큼 현대자동차가 동일한 액수를 더해 초록우산에 기부하는 매칭 방식이었다. 그 결과 지난해에는 6420만원, 올해는 5780만원이 모였다.
최 이사의 꿈은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의 높이(8849m)보다 딱 1대 더 파는 것이다. 지난 10일 현대차 최초로 누적 판매 8000대를 달성하며 그 목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세상에 본래 내 것은 없다”고 말한다.
“기존 고객이 다른 곳에서 차를 산 걸 알게 되면 서운해지잖아요. 그건 그분을 ‘내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는 오늘도 먼저 전화를 걸고 발로 뛴다. “내 게 아니니까 더 할 수밖에 없잖아요.”
백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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