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가 꽃피웠던 것은 예술가 후원에 적극적이었던 메디치가(家)가 있어 가능했습니다. 예술가들에게 후원은 지속가능한 예술활동을 위한 자양분이 되죠. K-컬처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준 ‘그들’이 있어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헤럴드경제는 연말 기획으로 우리 예술가들을 뒤에서 후원해 온 ‘K-메디치’를 조명합니다.
국립발레단 사진전 ‘스틸 인 모션’ 중 ‘카멜리아 레이디’ [국립발레단 제공]
야마토무료게임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국립발레단의 정기 공연 프로그램북을 펼치면 후원회 명단에 누구나 알 만한 이름들이 등장한다. 배우 김수로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다. 김수로는 2020년부터 올해로 6년째, 방시혁 의장은 3년째 국립발레단 후원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SBS 드라마 ‘마에스트라’를 통해 여성 지휘자 역할을 맡았던 배우 이영애는 KBS교향악단에
야마토게임예시 3000만원을, 홍라희 리움미술관 전 관장은 예술의전당에 5억원을 후원한 ‘큰 손’. 국내 예술계의 텃밭을 가꿀 ‘3%의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공연예술계 관계자들은 “국내 예술계의 민간 후원은 단체와 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전체 재원의) 1~3% 수준”이라며 “특별히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 정도의 숫자가 나오는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예술계 ‘기부 강국’인 미국과 비교하면 처참할 정도로 기부 액수가 적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간한 연도별 전문 예술 법인단체 백서에 따르면, 국내 문화예술단체의 재원에서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3.2%를 기록한 이후 점점 줄어 2022년엔 1.3%까지 주저앉았다. 이에 업계에선 통상 ‘1
릴게임꽁머니 ~3%’ 수준이라고 눙쳐 말한다. 자체 수입은 18%, 공공 지원은 79% 정도다. 공공 지원이 없이는 단체를 운영하기 힘들 정도다.
반면 미국 예술단체의 재정 구조는 자체 수입(티켓 판매)이 약 60%, 기부금 수입이 30%, 공공 지원이 10% 미만이다. 미국작곡가오케스트라(ACO) 멜리사 능(Melisa Ngan) 대표는 지난달 한국
바다이야기게임 을 찾았을 당시 헤럴드경제와 만나 “해마다 국가 지원이 줄고 있어 운영이 어려운데, 다행히 민간 후원이 늘어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3%’는 예술 분야에 대한 대중의 기부 선호도와도 일치한다. 국내 전체 기부 참여율은 59.8%(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2024 기빙코리아’)이지만, 주로 사회복지나 자선 구호 분야에 집중된다. 문화예술 분야로의 유입은 미미해 예술 후원이 ‘기업의 사회공헌’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업계에선 이런 이유로 예술계를 향한 ‘아낌없는 후원’을 단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엇’이 있다고 말한다. 한국의 메디치들은 예술을 통해 자신의 취향과 애정을 드러내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며, 예술과의 교감을 통해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와 만족감을 가져간다.
KBS교향악단을 후원 중인 배우 이영애 [LG아트센터 제공]
영감의 원천·공감과 교감으로 내민 손
배우 김수로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 마크 테토….
지난 1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열린 국립발레단의 특별 사진전 ‘스틸 인 모션(Still in Motion)’의 입구엔 80여 명의 후원회원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8일간 이어진 이 전시가 바로 후원회의 지원으로 열렸기 때문이다.
전시에선 국립발레단의 대표 레퍼토리 일곱 개를 여섯 명의 사진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했다. 무료로 이어진 이 전시는 4000여 명의 관람객을 맞는 대기록을 세웠다. 정부 지원을 받는 국립예술단체라도 발레단이 지나온 어제와 오늘을 담아내는 이 작업은 “국고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체에선 이야기한다. 80여명의 후원자는 일부만 제외하면 매번 국립발레단의 정기 공연을 빼놓지 않고 찾아 단체의 기량과 역량을 확인하고, 수준 높은 예술 세계를 마주하며 영감을 캐낸다.
국립발레단의 후원회장인 송병준 컴투스 의장은 “게임 산업에 몸담으며 느낀 것은 게임 역시 스토리·비주얼·음악·연출이 결합한 종합 예술이라는 사실”이라며 “발레 또한 인간의 몸짓을 통해 서사와 감정을 전달하는 가장 본질적인 예술 언어로, 장르는 다르지만 ‘종합 예술’이라는 본질에서 두 영역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순수예술을 지원하는 일은 개인적인 관심을 넘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 [하이브 제공]
기업인은 물론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다양한 대중문화계 인사까지 국립발레단의 후원회로 이름을 올린다. 방시혁 의장 역이 이 단체를 3년째 후원하고 있는 인사다. 업계에선 방 의장의 국립발레단 후원 배경으로 ‘영감의 원천’을 찾아가는 행보로 본다. 한 관계자는 “상업적인 자본 논리와 대중의 기호에 좌지우지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최전선에 선 방시혁 의장에게 순수예술은 영감을 찾고 경외를 느끼게 하는 수단일 것”이라고 봤다.
배우 김수로는 국립발레단과 국립극단의 두 단체를 후원하는 ‘키다리 아저씨’다. 그는 “좋은 무대에서 뛰어난 예술가가 나온다”는 철학으로, 국립예술단체들의 텃밭을 가꾸는 데에 기꺼이 두 팔을 걷었다. 김수로는 “한국 발레의 수준이 놀랍도록 높아져 조금만 밀어주면 세계 무대를 이끌 수 있으리라 봤다”고 했다. 반면 국립극단 후원은 “연극은 K-컬처의 뿌리로 워낙 불모지이기에 아낌없이 가꿔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서게 됐다.
배우 이영애는 지난해 6월 KBS교향악단이 JSA경비대대(캠프 보니파스)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연 것을 계기로 이 악단에 손을 내밀었다. 당시 지휘를 맡았던 사람이 진솔. 이영애가 SBS ‘마에스트라’에 출연했을 당시 ‘지휘 선생님’이었던 1987년생의 여성 지휘자다. 이영애는 평소 음악 공연장에서 심심치 않게 만날 정도로 클래식에 대한 애정이 깊다. 또 그의 딸이 선화예중에 입학해 성악을 전공하면서 음악계와 연결고리를 가졌다. 그가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에 출연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오페라를 모르던 회장님, ‘성덕(성공한 덕후)’이 되다
“이제 당신만 오페라를 알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오페라를 사랑하게 되는 겁니다.” (이운형)
기업 오너에게 예술 후원은 새로운 ‘취향의 발견’이기도 하다. 국립오페라단의 초대 후원회장(2008~2013)인 고(故)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은 한국 오페라 후원의 ‘전설’로 꼽힌다.
후원회를 이끄는 이승진 국립오페라단 부장은 “이운형 회장님은 국립오페라단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신 분”이라며 “이사장(2000~2007)으로 시작해 후원회장까지 맡으며 국립오페라단의 후원회의 초석을 다진 분”이라고 기억했다.
고인은 이사장을 맡을 당시만 해도 스스로를 ‘오페라 문외한’이라고 말해왔으나, 한 편 한 편 무대를 만나며 누구보다 오페라와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 티켓을 직접 구매해 세아 그룹 임직원들을 대거 초대하는 ‘열혈 홍보맨’이 되는 것은 기본. 해외 출장 후 귀국길엔 공항에서 바로 공연장으로 향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부장은 “이운형 회장님이 국립오페라단에 쏟은 노력과 애정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했다.
국립오페라단 ‘트리스탄과 이졸데’ 브라이언 레지스터와 엘리슈카 바이소바의 연습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고인의 숭고한 취향은 한국 오페라의 저변을 확대하고, 대중의 문턱을 낮췄다.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이사장 박의숙)은 고인의 뜻을 이어받아 국립오페라단,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민간이나 국립단체에서도 선뜻 올리지 못하는 희귀 오페라를 제작해 해마다 한 편씩, 전석 무료로 관객에게 공개하는 것도 재단이 있어 가능했다.
공연계에선 “티켓 판매를 고려해 대중적 오페라를 주로 선정할 수밖에 없는 시장의 한계를 세아이운형문화재단이 넓혀주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시장 논리로는 불가능한 예술적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고인과 같은 ‘패트런(patron, 개인 후원자)’이 있어 가능했다. 지금도 국립오페라단의 정기공연에 가면 고인의 뜻을 이어 국립오페라단의 후원회원으로 활동 중인 그의 동생인 세아그룹 이순형 회장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013~2016년까지 국립오페라단 후원회장을 역임한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같이 걷는 길 재단 이사장)은 매 공연 200~300명에 달하는 출연자와 스태프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동료 기업인들을 이끌고 국립오페라단의 공연을 함께 관람하며 후원회원 모객에도 앞장섰다.
이 부장은 “박용만 회장님 시절 국립오페라단엔 ‘난 오페라는 모르는데 박 회장이 가자고 해서 왔다’고 말하는 재계 회원들이 많았다”며 “후원회는 국립오페라단 최고의 충성고객인데, 이들 덕분에 우리가 열심히 공연을 만들고 그 공연에 만족한 후원회가 국립오페라단에 한없는 애정을 보여주는 순환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오페라단에서 최장수 후원회원은 동화약품 윤도준 회장(2013~)이다.
지금도 클래식·발레는 ‘사교와 비즈니스의 장’
“모든 예술의 역사가 말해주듯, 클래식 음악이나 발레는 상류층의 사교 문화였던 것처럼 지금의 예술계 후원회 역시 사교와 비즈니스의 장이기도 해요.”
국립 예술단체 관계자들은 국내 예술계 후원회는 재계 주요 인사, 자산가들이 모여 커뮤니티 문화를 만들며 비즈니스 네트워크가 이어지는 자리라고 입을 모은다. 각 기관과 단체마다 저마다의 기준에 맞춰 눈에 보이는 혜택(R석 무료 티켓, 예매 할인)을 제공하나 이보다 더 큰 혜택은 후원회 자체가 ‘비즈니스 명함’이자 ‘검증된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자리라는 점이다.
국립극단 최초의 배우 후원자로 최근 열린 ‘후원회의 밤’에 참석한 김수로 [국립극단 제공]
한 국립예술단체 관계자는 “젊은 기업인들 사이에선 거래처에 ‘술 한잔하자’고 하는 대신 발레나 오페라, 클래식 공연을 보러 가자고 제안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소수의 관객’이 누리는 문화이자, 장르가 주는 고급스러운 이미지 덕분에 우아한 ‘이너 서클’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을 통해 일종의 ‘공연장 비즈니스’가 만들어진다.
또 다른 국립예술단체 관계자는 “인맥을 쌓기 위해 후원회에 가입했다가 예술에 대한 순수한 애정으로 후원을 이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장르를 지키는 연대·가족이 된 ‘찐팬’ 개미 후원자
국립극단의 배우 김수로, 국립오페라단의 김숙영 연출가, 박수지 수지오페라단 단장, 이아경 경희대 성악과 교수, 국립발레단의 김명순 한국발레협회 부회장….
국립예술단체를 후원하는 이들은 경쟁을 넘어 연대하고, 예술이라는 큰 틀 아래 장르를 지키는 우산이 되고 있다. 각 단체의 후원자 중엔 경쟁 상대로 비칠 수도 있는 민간의 예술가와 단체의 대표가 이름을 올린다.
이승진 국립오페라단 부장은 “국립과 민간의 관계를 대결 구도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민간의 영역과 국립의 역할은 다르다”며 “후원자로 이름을 올린 민간 예술가들은 오페라계를 이끌어가는 한 사람으로서 국립 단체에 기여하는 것도 나의 몫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김수로는 “국립 단체는 ‘우리나라 예술의 척추’”라며 “나라의 예술이 건강해야 가지도 잘 뻗어 나간다고 생각해 국립단체부터 후원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르적 연대감’으로 하나가 되는 관계다.
로베르토 아바도 지휘자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베르디 ‘레퀴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제공]
후원회는 각 단체와 기관의 가장 강력한 팬덤이다. 이들은 물질적 후원을 넘어 예술가들의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든든한 지원자가 되고 있다. 예컨대 국립발레단 후원회에 포진하고 있는 의사들은 무용수들의 ‘건강 지킴이’가 된다. 발레단의 공연을 직접 보고, 영상을 보고 판독해 단원들의 몸 상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후원자와 예술가의 관계를 넘어 이들의 예술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지기(知己)이자 가족인 셈이다.
후원회에 기업이나 재계 인사만 속해있는 것은 아니다. 발레, 오페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진심과 애정으로 단체와 기관을 지지하는 ‘얼굴 없는 후원자’들도 많다. 기업처럼 큰 금액을 내놓는 것은 아니지만, 수십~수백 명의 ‘개미 후원자’는 예술계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힘이자, 후원회의 기반을 다지는 ‘마지막 퍼즐’이다.
조신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팀장은 “후원회 규모가 크지 않은 국립심포니의 경우 정말 음악을 사랑하고,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 오케스트라인 국립심포니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개인 후원을 하고 있다”며 “이런 작은 정성이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지탱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국립극단의 42명의 후원자 중에도 평범한 일반 시민이 많다. 그중 공연예술계에 오래도록 종사한 기자도 이름을 올렸다. “연극은 배고픈 예술”이라는 꼬리표를 떼길 바라는 마음, “연극이 K-콘텐츠의 근간”이라는 생각으로 모인 마음이다.
업계에선 미국과 유럽의 예술단체가 팬데믹의 위기를 버틴 힘 역시 거액의 기부는 물론이거니와 매달의 커피 몇 잔 값을 아낀 수천, 수만 명의 소액 후원자들이 있어 ‘생존 기회’를 얻었다고 말한다.
국내 예술단체 관계자는 “멤버십 같은 혜택이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후원회가 특별한 이득이 되지 않는 일반 시민들의 후원은 어쩌면 가장 능동적 소비이자 예술 생태계의 건강한 진보를 위한 미래 투자”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