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떠오르는 태양 앞의 여인', 1818~20. /사진 위키피디아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산에 오른다. 정상에서 마주하는 일출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지난 시간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자신에게 건네는 의식에 가깝다. 산을 오르는 동안 우리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걷고, 쉬고, 다시 걷는다.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가벼워진다.미술사에서도 산은 사유의 공간이다. 특히 독일 낭만주의 대표 화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1774~ 1840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는 산과 안개, 하늘이라는 자연을 통해 인간 내면을 응시한 화가였다. 그의 그림에는 웅장한 풍경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관객에게 등을 보인 채,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는 인물의 ‘뒷모습’이다. 왜 그는 얼굴이 아닌, 뒷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까.
오리지널바다이야기 정철훈 - 미술 칼럼니스트,문화기획 프로듀서, 전 KBS아트비전 대표
그림 속으로 관람자를 부르는 여인의 뒷모습프리드리히의 ‘떠오르는 태양 앞의 여인(1818~20)’은 가로 30㎝, 세로 22㎝ 크기지만, 새해 아침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
손오공릴게임예시 출처럼, 한순간에 시선을 붙잡는다. 화면 한가운데는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태양을 향해 서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두 팔을 벌린 뒷모습만 남아 있다. 산 위에서 일출을 마주할 때처럼 가만히 서 있는 듯하지만, 동시에 한 발을 내딛기 직전 순간처럼 느껴진다. 주황빛 태양은 어두운 하늘을 밀어내듯 떠 있고, 색채는 단순하지만, 일출이나 일몰을 바라볼 때처럼
바다이야기비밀코드 평온한 설렘을 만든다.중요한 것은 여인이 우리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두 팔을 벌린 이 구도는 독일 낭만주의를 상징하는 표현 방식인 ‘뤼켄피거(Rückenfigur)’, 즉 ‘등진 인물’이다. 인물이 관객을 바라보지 않고 풍경을 응시함으로써, 관람자는 그림을 바라보는 외부자가 아니라 그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존재가 된다.프리드리히에게 중요한 것은
야마토게임장 인물 감정을 설명하는 일이 아니었다. 얼굴과 표정을 지운 대신 관람자가 인물의 시선을 따라 자기 감정을 채워 넣도록 한다. 우리는 여인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자연과 빛을 마주하는 존재가 된다. 그 빛은 단순한 자연광이 아니라 숭고함과 경건함이다. 이 점에서 프리드리히의 그림 속 뒷모습은프랑스의 격정적 낭만주의나 영국의 서정적 풍경화와 다르다. 자연 앞에서 생각하며 숭고함을 느끼는 독일 낭만주의의 특징을 보여준다.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 /사진 위키피디아
방랑자는 바다를 보고 있을까, 산을 보고 있을까프리드리히의 대표작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를 마주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그림 속 저 남자는 바다 위 암초에 서 있는 걸까, 아니면 산 정상에서 안개 사이로 멀리 펼쳐진 산맥을 내려다보고 있는 걸까.발 아래로 출렁이듯 펼쳐진 흰 안개는 파도처럼 보이고, 그 위로 솟은 능선은 섬처럼 떠 있어 제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바다 앞에 선 인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방랑자가 선 곳은 바다가 아니라, 산 정상에서 내려본 장면이다. 여기서 말하는 ‘안개 바다’는 산 아래 계곡에 가득한 운무다. 그리고 그림 속 풍경은 상상만으로 만들어진 장면이 아니다. 안개 너머의 산은 실제로 존재하는 엘베 사암 산맥 일대의 지형을 바탕으로 한다. 프리드리히는 현장에서 본 산의 형태를 기억해 두었다가 작업실에서 재구성함으로써, 현실 풍경과 자기 내면 풍경을 하나의 장면으로 겹쳐 놓았다.앞선 작품에서 태양을 향해 선 여인의 뒷모습으로 관람자를 그림 속으로 끌어들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 방식이 더 넓은 공간과 더 깊은 감정으로 확장된다. 태양 앞의 여인이 ‘시작의 빛’을 마주하고 있다면, 이 방랑자는 세계 전체를 내려다보며 침묵 속에 서 있다. 그는 우리를 돌아보지 않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게 하며, 그의 자리는 곧 관람자의 자리가 된다.이때 느껴지는 감정은 말없이 압도되는 감각에 가깝다. 자연의 크기와 힘 앞에서 인간은 침묵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사유는 시작된다. 이것이 프리드리히가 그리고자 한 숭고함이자 경건함이다. 중세와 루터 시대를 연상시키는 주인공이 입은 복장 또한 개인의 사색을 넘어, 당대 독일 사회가 품었던 애국적·정신적 태도를 암시한다. 이러한 정치적 암시는 나치 정권에 의해 강렬한 독일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왜곡되어 도리어 작가의 성찰적 의미를 훼손하기도 했다.결국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는 풍경을 보여주는 그림이 아니라, 자연 앞에 선 인간 태도를 묻는 작품이다. 안개 낀 산과 능선은 배경이 아니라, 생각를 끌어내는 장치이며, 프리드리히가 반복해서 뒷모습을 그린 이유도 바로 그 자리에 관람자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프리드리히, '인생의 단계들', 1835. /사진 위키피디아
뒷모습에서 바라본 인생프리드리히의 ‘인생의 단계들(1835)’은 그의 마지막 작품은 아니지만, 말년의 정신이 응축된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그가 사망하기 약 5년 전, 신체적 쇠약으로 죽음을 예감하던 시기에 제작되었다. 배경은 발트해 연안, 그의 고향 인근 항구다. 황혼 속에서 다섯 인물이 반원을 이루고 서 있고, 바다에는 거리와 크기가 서로 다른 다섯 척의 배가 떠 있다. 막 항해를 시작한 작은 배는 아이를, 더 먼 바다로 향하는 배는 성인을,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배는 죽음의 여정을 암시한다. 관람객에게 등을 보인 채 항구를 바라보는 노인은 프리드리히 자신으로 해석되며, 이는 상상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되돌아보는 장면으로 보인다.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가장 뒤쪽에 선 노인의 위치다. 그는 무리의 중심에서 비켜서 젊은 가족과 조금 떨어져 서 있다. 더 이상 자연이나 미래를 경건하게 응시하기보다 젊은이의 등 뒤에서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자기 과거를 반추하는 모습에 가깝다. 이 뒷모습은 지나온 시간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삶을 정리하는 시선이다.나이가 들면 누구나 고향이 생각난다는 수구초심이란 고사처럼 그림에서 아이들 곁에 배치된 스웨덴 국기도 우연이 아니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을 ‘반은 스웨덴인’이라 여길 만큼 자기 정체성을 의식했고, 이는 삶의 뿌리와 유년의 추억에 대한 애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영화의 엔딩 크레디트가 흐르기 전, 카메라는 종종 주인공의 등을 비춘다. 우리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다만 걸어온 시간을 이해하게 된다. 새해가 시작되는 지금, 우리는 다시 앞에 서 있다. 프리드리히의 그림 속 뒷모습처럼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도, 후회하지 않을 경건한 뒷모습이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