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바다이야기가 2022년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다이야기 시즌2는 이용자들의 요청에 따라 전체 이용가로 분류되어 다시 이용 가능합니다.
국내 업체가 개발한 바다신2는 2022년 10월 20일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전체 이용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이 게임은 화면 아래에서 회전하는 아이콘은 멈춰 주어진 무늬를 맞추면서 점수를 획득하는 방식입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바다신2가 버튼을 타이밍에 맞춰 눌러 제시된 아이콘과 동일한 무늬를 순서대로 맞추어 점수를 얻는 게임이라며, 운영정보 표시장치를 포함한 모든 수정 요구사항이 반영되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게임사는 재신청을 통해 전체이용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이명옥 기자]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는 상징적인 세 개의 섬이 있다.
문학을 품은 섬 보길도자연을 품은 섬 청산도역사를 품은 섬 소안도
소안도(所安島)는 대한민국 남해안의 섬으로, 전라남도 완도군 소안면에 속한다. 면적은 23.22 km2이다. 소안도는 동학도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활발히 펼쳤던 곳이다. 소안도는 독립 유공자 22명을 포함 89명의 항일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항일 운동의 섬답게 소안 항구에 들어서면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라는 표지석이 제일 먼저 보인다.
오션파라다이스릴게임 지난 12일 동학기행 팀과 함께 다녀왔다.
▲ 역사의 섬 소안도 소안도의 저항 정신을 기리는 비
한국릴게임 ⓒ 이명옥
소안도의 역사적 자취는 '등대' '소안사립학교' '소안 항일 운동 기념탑' ' 송내호 묘역'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바다신2다운로드 ▲ 등대 등대는 섬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등불이다.
ⓒ 이명옥
황금성게임랜드 독립 운동의 등불을 지핀 '등대'
1909년 동학군 이준하 선생 등 6명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에 잠입하여 시설물을 파괴하고 일본인 4명을 살해한다. 단순히 일본인을 살해한 것을 넘어 박해받던 조선인의 독립과 자주를 위한 저
바다이야기사이트 항이었다. 이로 인해 1920년대 소안도 2000여 명 중 800명이 일제에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혀 감시와 통제를 받았지만 저항은 계속되었다. 소안도 등대 사건을 김민환 교수가 소설 <등대>로 엮어 냈다.
소안 사립학교
▲ 소안 사립학교 복원된 소안사립학교 도서관으로 운영중이다.
ⓒ 천도교 사회문화관
1913년 송내호 등에 의해 설립된 사립 중화학원(소안 사립학교 전신)은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1905년 을사늑약 후 궁납전이던 소안도의 토지를 강탈해 친일파 이기용에게 사유지로 준다. 분노한 소안 주민들은 1909년 전면토지소유권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13년 간의 법정투쟁 끝에 1922년 토지소유권 소송에서 승소한 소안도 주민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23년 5월 사립 소안학교를 설립한다. 사립 소안학교는 민족교육을 실시하였으며, 많을 때는 학생 수가 270여 명에 달하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대중운동을 전개하는 등 소안도의 항일 운동을 이끌었다. 1927년 5월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으로 강제 폐교되었다 현재 소안 사립학교는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독립기념관 기록 참조).
소안 항일 운동 기념탑
▲ 소안항일운동기념탑 일제로부터 독립을 기념해 소안면민들의 성금으로 새워졌다.
ⓒ 천도교 사회문화관
1990년 6월 5일 세워진 항일 운동 기념탑은 비자리의 갯돌을 쌓아 올려 만들었다.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소안면민들의 성금으로 만든 탑으로 검은 돌과 하얀 돌을 높이 8m, 폭 4m로 쌓았다. 검은 돌은 일제의 탄압, 하얀 돌은 우리 백의민족의 순결함, 세 갈래로 솟아 오른 탑 모양은 일본에 대한 강렬한 저항을 상징하고 있다(위키백과 참조).
▲ 송내호 묘역 오른쪽 태극 문양이 없는 비석이 넷째 막내의 묘역이다.
ⓒ 이명옥
송내호 묘역
송내호는 1985년 소안도에서 태어나 1914년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뒤에 소안도에서 교사로 일했다. 1920년 11월 무장투쟁 단체 대한독립단 조직책임자,1922년 말 반일비밀결사단체 '수의위친계' 결성을 주도했다. 1926년 말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7년 1월 소안도에서 청년비밀결사 '일심단'을 조직하었다. 1927년 수감 중 폐결핵으로 병보석되어 치료 중 사망하였다. 1990년 건국 헌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송내호의 형제들이 4명인데 세 명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어머니가 막내에게 '너만은 제발 독립운동을 하지 말라'고 당부해 순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 행적을 부끄럽게 여겨 막내의 비석만 태극기가 없이 세워져 있다.
소안도에서 나고 자라 이날 강연을 하기도 한 김대석 교사(고등학교)는 소안도 항일운동의 특징을 6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국내외 지역과 외교적 연대,둘째 송내호 정남국 같은 뛰어난 지도자, 셋째 섬에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적 갈등이 약한 점, 넷째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는 새로운 시대사상 동학과 사회주의, 다섯째 높은 교육열을 통한 인재 양성, 마지막으로 인천, 목포, 제주, 일본으로 가는 지정학적 요충지로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 떴던 점을 꼽았다.
소안도 항일운동의 역사는 18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등대 사건 이후 치열한 항일 독립 운동을 이어갔으며 1919년 3.1 운동에 이어 무장 항일 항쟁을 이어갔다. 송내호를 비롯한 항일 운동가들이 동학 정신과 사회주의 사상으로 무장했기에 분단 이후 오랫동안 소안도는 '빨갱이' 섬이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 항일의 섬, 해방의 섬,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 겨레의 섬으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