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의 공간이 카페가 되었다는 건, 어쩌면 가장 로맨틱한 지속가능성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서기 48년. 금관가야의 젊은 왕 김수로와 먼바다 너머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 허황옥이 '명월사'라는 곳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2천 년이 지난 2024년, 그 이름을 물려받은 공간 '명월'에서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또 누군가는 가야의 정원을 거닐고 있다. 이게 바로 필자가 말하는 '즐거운 지속가능성'이다. 무겁지 않고, 교훈적이지 않으며, 그저 자연스럽게 과거가 현재의 일부가 되어버린 공간.
김해 명월(
황금성게임랜드 김성훈 드로잉)
잊힌 철의 왕국, 가야를 말하다
사실 가야는 오랫동안 한국사에서 '불운한 존재'였다.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의 그늘에 가려져, 마치 역사의 각주처럼 취급받았다. 하지만 최근 가야사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해지면서, 우리는 비로소 가야가 얼마나 놀라운 문명이었는지 깨
릴게임골드몽 닫고 있다. 가야는 철의 왕국이었다. 당시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제철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철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과 활발한 해상 무역을 펼쳤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가야가 단순한 지역 소국이 아니라, 국제적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었던 선진 문명임을 증명한다. 로마 유리구슬, 페르시아 유리병 등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서역의 물건
바다이야기오락실 들이 2천 년 전 김해에 존재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이야기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야의 개방성이다.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다. 이는 가야가 얼마나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서기 48년, 인도에서 온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는 것. 이건 21세기 기준으로도 진보적인 다문화 사회의 모습이다.
바다이야기모바일 2천 년 전에 말이다.
김해가 품은 이야기 보물창고
문제는 이렇게 풍부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역사책 속 연대기로만 존재했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살아있는 이야기'로 재탄생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명월의 등장은 상징적이라고 생각한다. 김해가 가진 문화적 자산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풀
릴게임몰메가 어낼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안이기 때문이다. 명월은 가야의 이야기를 박물관 유리관 안에 가두지 않았다. 대신 일상의 공간 속으로 끌어들였다.
김수로왕과 허황후 두 사람이 첫날밤을 보낸 명월사. 이 모든 이야기는 김해라는 땅에 새겨진 '문화적 DNA'다. 명월은 바로 이 DNA를 21세기 언어로 번역해낸 공간이다. 2천 년 전 국제결혼 커플의 로맨스라는, 누가 들어도 설레는 이야기를 공간의 중심에 두면서, 자연스럽게 가야 문명 전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철의 왕국에서 문화의 정원으로
너무 멋진 일이다. 철과 무역으로 번성했던 가야의 수도 김해가, 이제는 '명월'이라는 문화공간을 통해 새로운 번영을 꿈꾸고 있다는 게. 물질문명에서 문화 문명으로, 철의 교역에서 이야기의 교류로.
명월의 '가야의 정원'은 이런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이곳에서 철기를 만들고 무역선을 띄웠다면, 지금은 문화를 일구고 이야기를 키운다. 정원을 거닐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이 땅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 질문이 곧 가야사 전체로 확장된다.
이게 바로 진짜 문화유산의 활용이다. 단순히 옛것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매개로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창출하는 것. 명월을 다녀간 사람들은 김해를 다르게 보게 된다. 단순한 경남의 한 도시가 아니라, 2천 년 전 동아시아 해상 무역의 중심지이자, 문화 다양성을 품었던 개방적 문명의 중심지로 말이다.
로맨스는 가장 강력한 지속가능 에너지다
우리는 흔히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환경, 에너지, 재활용 같은 단어들을 떠올린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놓치는 게 있다. 바로 '이야기의 지속가능성'이다. 공간이 살아남으려면 건물만 튼튼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곳을 찾는 이유가 계속 생겨나야 한다. 명월은 정확히 이 지점을 꿰뚫었다. 김해한옥체험관의 바깥채가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기획자들은 영리한 선택을 했다. 그냥 '예쁜 한옥 카페'로 만들 수도 있었다. 요즘 그런 곳 많지 않나. 하지만 그들은 이 땅에 새겨진 가장 강렬한 서사, 즉 2천 년 전 국제결혼 커플의 첫날밤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생각해보라. 서기 48년이라는, 거의 신화에 가까운 시간대에 인도에서 배를 타고 온 공주와 가야의 왕이 만나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이건 단순한 역사가 아니다. 완벽한 K-드라마 소재다. 아니, K-드라마보다 먼저 존재했던 오리지널 로맨스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는 가야가 가진 모든 가치가 압축되어 있다. 국제성, 개방성, 선진 문명의 자신감.
'명월'이라는 이름 석 자에 이 모든 서사가 압축되어 있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방문객들은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의 일부가 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평범한 행위가, 2천 년 전 두 사람이 처음 마주했을 그 설렘과 묘하게 겹친다. 이게 바로 공간이 가진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재현이 아니라, 재해석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명월이 역사를 '박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천 년 전 건물을 똑같이 복원해서 유리관 안에 넣어둔 게 아니다. 대신 그 시간의 감성과 의미를 21세기 언어로 번역했다. 한옥의 고즈넉함은 그대로 살리되, 책과 굿즈가 있는 현대적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런 접근이야말로 진짜 지속가능성이다. 과거를 현재에 욱여넣는 게 아니라, 현재가 과거를 자연스럽게 품게 만드는 것. 명월을 찾는 사람들은 "역사 공부하러 왔다"는 부담감 없이 그냥 좋은 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새 가야의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돌아간다. 가야가 철기 문화로 동아시아를 주도했듯이, 명월은 문화공간으로 새로운 가야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다만 방식이 다를 뿐이다. 과거에는 철과 무역으로 세계와 소통했다면, 지금은 공간과 이야기로 세계와 만나고 있다.
FUN이 없으면 지속도 없다
솔직히 말하자. 아무리 의미 있고 역사적 가치가 높아도, 재미가 없으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한 번 오고 말지, 지속해서 찾아올 이유가 없다. 명월의 진짜 성공 비결은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SBS '손대면 명소! 동네멋집2'에 소개되면서 명월은 전국구 핫플레이스가 됐다. 방송을 통해 방문객이 줄어들던 한옥체험관이 '오고 싶을만큼 매력적인 공간'으로 변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은 예쁜 풍경, 앉아서 책 읽기 좋은 아늑한 분위기, 지역 특색을 담은 음료까지. 이 모든 요소가 가야의 깊은 역사와 만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형 문화공간의 정석이다. 교육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좋은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공간의 이야기에, 나아가 김해와 가야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다. 즐거움이 먼저고, 의미는 그다음이다. 순서를 바꾸면 아무도 안 온다.
손대면 핫플! 동네멋집2 - SBS
김해가 보여주는 문화도시의 미래
명월의 성공은 김해라는 도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김해는 수로왕릉, 대성동 고분군, 봉황동 유적 등 가야 문화유산의 보고다. 2023년 9월 '가야 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김해는 명실상부한 세계적 문화도시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유네스코 등재가 끝이 아니다. 시작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문화유산을 어떻게 현대인의 삶과 연결할 것인가다. 명월은 바로 이 지점에서 훌륭한 시범을 보여줬다. 역사를 전시하는 게 아니라 경험하게 하고, 교육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것. 김해가 가진 문화적 자산은 엄청나다. 철의 왕국이었던 역사, 해상 무역의 중심지였던 위상, 국제적이고 개방적이었던 문화. 이 모든 이야기를 명월처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낸다면, 김해는 단순한 역사 도시를 넘어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한다
결국 명월이 증명한 것은 간단한 진리다. 좋은 이야기는 죽지 않는다는 것. 2천 년 전 사랑 이야기가 2024년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설레게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담은 공간은, 세대를 넘어 계속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
김해 명월은 한옥 체험관의 바깥채를 리모델링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법, 역사가 일상이 되는 법, 가야의 문화유산이 21세기에 어떻게 꽃필 수 있는지, 그리고 지속가능성이 즐거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과서다.
로맨스는, 역시 가장 강력한 지속가능 에너지다. 그리고 가야는, 그 로맨스가 시작된 곳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독자 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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