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포쿠Höhepunkü
해포쿠는 일시적인 발기만을 유도하는 비아그라, 시알리스 등 기타 기존 약물과는 달리 성신경 흥분 및
인체의 단백질 합성을 유도하여 발기를 보다 원활하게 해 주고, 남성의 전립선 기능을 강화시켜 주는 제품입니다.
해포쿠는 해구신의 안드로스테론 성분이 주성분으로 1 캡슐500mg 복용 시
해구신 물개 생식기 500여 개를 한 번에 먹는 것과 같은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개당 가격이 1,000만 원에 육박하는 해구신의 가격을 생각해 볼 때 정말 획기적인 제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 품 명 : 해포쿠천연성분
제 조 사 : 독일 Sigmund
효 능 : 발기부전치료 및 성기능강화
저장방법 : 기밀용기, 실온보관
사용기간 : 제조일로부터 36개월
독일에서 온 천연 생약성분 치료제
남성정력제로 유명한 해구신에 포함된 안드로스테론 성분은 성신경 흥분 및 인체의
단백질 합성을 유도하여 발기를 보다 원활하게 해 주며, 남성의 전립선 기능을 강화시키는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즉, 해구신의 약효는 이 안드로스테론 성분이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해구신의 그 엄청난 가격에 비하여 안드로스테론 함량이 미비해 실제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인간이 자각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의 다국적 제약회사가 오랜 연구 끝에 안드로스테론 호르몬을 대체할 천연물질을 추출하는 데 성공하였는데,
이는 섭취 1g당 해구신 내 포함 성분 대비 1,700배의 단백질 합성을 유도함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비아그라, 시알리스 등 기존 발기부전 치료제의 부작용과 화학약품 오남용을 막아줄 회기적인 신약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해포쿠 효능
해포쿠Heapoque는 주로 발기부전 치료를 위한 보조제로 사용됩니다. 이 약물의 주요 효능은 다음과 같습니다:
약의 효능이 효과적이려면 성적 자극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복용 후 약 30~40분 후에 효과가 나타납니다.
최대 36시간 정도 효과가 지속됩니다.
성신경 흥분 및 인체의 단백질 합성을 유도하여 발기를 보다 원활하게 해줍니다.
전립선 기능 개선 및 강화 성분이 함유돼 있어 남성의 전립선 기능을 강화시켜 줍니다.
장기 복용 시 조루, 지루, 정력 감퇴 등 남성질환의 80 이상 완치되며, 5년 이내 재발 확률은 10 내외입니다.
해포쿠는 100 천연성분으로 다른 제품들에 비해 부작용이 최소화 되어 있습니다.
발기 개선:
해포쿠는 혈류를 증가시켜 발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줍니다.
성적 자극 반응 증대:
성적 자극에 대한 반응을 개선하여 더 쉽게 발기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자신감 향상:
발기부전으로 인한 심리적 스트레스를 줄이고 성적 자신감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성생활 질 향상:
전반적인 성생활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부작용 최소화:
대부분의 환자에게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어 부작용이 적습니다.
해포쿠의 효과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복용 전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여 적절한 사용법과 주의사항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포쿠Heapoque의 주요 성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데나필Sildenafil:
비아그라와 동일한 성분으로, 혈관을 확장하여 음경으로의 혈류를 증가시켜 발기를 유도합니다.
타달라필Tadalafil:
시알리스와 같은 성분으로, 장시간 지속되는 효과를 제공하며, 성적 자극에 대한 반응을 개선합니다.
바데나필Vardenafil:
레비트라와 같은 성분으로, 비슷한 작용 메커니즘을 통해 발기 기능을 지원합니다.
식물성 성분:
여러 가지 천연 성분이 포함될 수 있으며, 이들 성분은 성 기능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각 성분은 발기부전 치료에 기여하며, 개인의 상태에 따라 효과가 다를 수 있습니다. 복용 전에는 의사와 상담하여 적절한 성분과 용량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포쿠 복용시 주의할점
해포쿠Heapoque와 같은 발기 치료제를 복용할 때 주의할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의사 상담:
복용 전 반드시 의사와 상담하여 개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존의 심혈관 질환, 간질환, 또는 기타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 특히 주의가 필요합니다.
정해진 용량 준수:
의사가 권장하는 복용량을 철저히 준수해야 하며, 자의로 용량을 조절하지 않아야 합니다.
부작용 관찰:
두통, 어지러움, 소화불량 등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즉시 의사에게 알리고 복용을 중단해야 합니다.
다른 약물과의 상호작용:
다른 약물특히 nitrates 계열 약물과 함께 복용할 경우 심각한 상호작용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의사에게 알리세요.
음주 제한:
알코올 섭취는 약물의 효과를 감소시키거나 부작용을 증가시킬 수 있으므로, 복용 전후에 음주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리적 상태:
발기 부전은 심리적 요인과 관련이 있을 수 있으므로, 심리적 스트레스나 불안이 있는 경우 전문 상담을 고려해야 합니다.
임신 및 수유 중: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경우, 복용 여부를 의사와 상담해야 합니다.
해포쿠와 같은 발기 치료제는 적절하게 사용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항상 전문가의 조언을 따르고, 자신의 건강 상태에 맞게 사용하세요.
기자
[email protected]피아니스트 주샤오메이가 2014년 11월15일 중국 베이징 음악청에서 열린 투어 공연에서 연주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accentusmusic’ 갈무리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턱 위로 올라오는 짧은 단발의 중년 여성이 무대 한가운데 피아노 앞에 앉았다. 짙은 밤색의 블라우스는 흡사 승복처럼 보인다. 그의 손가락은 활짝 펼쳐도 한 옥타브를 겨우 넘을 정도로 짧은 편이다. 공연장 천장의 조명은 피아노와 피아니스트만을 소박하게 비
야마토통기계 추고 있다. 반면 관객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고위 지도자, 덩샤오핑의 딸 등 이른바 ‘홍색 귀족’, 경영자, 지식인, 예술가, 젊은이들까지. 1100여명의 중국인이 그의 연주를 보기 위해 베이징 음악청을 꽉 채웠다. 그가 손을 피아노 위로 올리자 객석은 숨을 참았다.
이제 75분의 우주가 그의 손끝에서 펼쳐질 차례였다.
릴게임종류 이 피아니스트의 이름은 주샤오메이. 유년기와 10~20대를 보냈던 중국 베이징을 떠난 지 34년 만에 단독 연주회를 열기 위해 돌아왔다. 2014년 11월2일 홍콩에서 시작한 그의 첫 중국 순회공연은 지난과 상하이를 거쳐 같은 달 15일 베이징에서 후반부를 맞이하고 있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2009
골드몽게임 ) / 연주: 주샤오메이 *프랑스 낭트의 라 폴 주르네 음악제
공연의 주요 프로그램이었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가 끝나자 주샤오메이는 완전히 탈진했다. 그럼에도 여느 클래식 공연처럼 그는 무대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앙코르를 연주하고, 다시 나가기를 반복했다. 꽃다발 여럿이 그의 품에 안겨졌지만 기립박수는 여전히 끝날 줄을 몰
야마토게임 랐다. 무대를 나갔다 들어오기를 몇 차례 반복한 끝에 주샤오메이는 겨우 마이크를 잡았다.
“이렇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박수가 저를 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흐의 위대한 걸작인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위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제가 함께 살아왔고, 지금도 계속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음악입니다
모바일야마토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주샤오메이는 다시 입을 뗐다.
“문화대혁명 이전에 제가 중국에서 들었던 마지막 연주회가 바로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연주자는 구성잉이었습니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날 그가 연주했던 쇼팽의 스케르초 4번을 또렷하게 기억합니다.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와 우리의 다른 선배들은 우리에게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심어줬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길의 끝까지 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하기 위해 여기 있습니다.”
50년 전 바로 이곳 베이징 음악청의 객석에서 10대의 주샤오메이는 구성잉의 피아노 연주를 관람했다. 이날 관객들의 표정과 똑 닮은 벅차오른 얼굴이었다. 태어나 처음 가본 연주회였다. 구성잉의 연주는 열정적이면서도 자연스럽고, 절대 과장되지 않았다. 국제 콩쿠르에서 상을 받은 최초의 중국 음악가라는 타이틀도 그의 아우라에 기여했다. 구성잉은 1958년 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에서 21살의 나이로 2위에 입상했다. 전년도에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마우리치오 폴리니가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한 그 콩쿠르다.
주샤오메이의 회상을 듣던 관객들은 구성잉 같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소녀를 곧바로 떠올렸다. 그러나 차마 미소를 지을 수는 없었다. 그 뒤에 구성잉과 주샤오메이, 그리고 중국인들이 겪은 비극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들은 피아노곡, 트로이메라이
1949년 태어난 주샤오메이가 피아노를 처음 본 것은 3살 때였다. 이삿짐 일꾼들이 옮긴 갈색 업라이트 피아노가 좁은 부모님의 방을 차지했다. 건반 덮개를 올리면 ‘로빈슨’(ROBINSON)이라는 글자가 드러났다. 몇 년 전 주샤오메이의 어머니가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은 결혼 선물이었다. 피아노는 초등학교 음악 교사였던 어머니의 학교로 한때 옮겨졌다가, 학교에서 새 피아노를 사들이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피아니스트 주샤오메이가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연주했던 ‘로빈슨’사의 업라이트 피아노. 유튜브 채널 ‘accentusmusic’ 갈무리
주샤오메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어머니가 그를 앉혀놓고 처음으로 쳐 준 피아노곡은 ‘트로이메라이’였다. 독일의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이 1838년에 쓴 피아노 작품 ‘어린이의 정경’ 가운데 일곱 번째 곡이다. 상아색 막대를 두드리자 제목처럼 꿈 같은 선율이 흘러나왔다. 주샤오메이의 마음속에도 하나의 꿈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과 한가족이 된 피아노, 둘도 없는 친구가 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꿈이었다.
로베르트 슈만 – 트로이메라이 (어린이의 정경 Op.15 제7곡) (1986) / 연주: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운 주샤오메이는 여덟 살에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연주 초청을 받을 만큼 피아노 연주에 두각을 나타냈다. 열한 살에는 중국 최고의 음악학교로 꼽히는 베이징 중앙음악학교에 입학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학교는 화려했다. 전통 중국 건축 양식으로 지은 건물의 입구를 지나면 넓은 마당과 분수, 다섯 개의 붉은 벽돌 건물이 나왔다. 이곳에서는 오로지 음악만 생각하고 공부하면 될 것 같았다.
피아니스트 주샤오메이의 어린 시절. 유튜브 채널 ‘accentusmusic’ 갈무리
음악 없는 음악 학교
그러나 중국의 상황은 주샤오메이가 음악 연주에 전념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1958년 마오쩌둥 주석은 15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겠다는 목표로 ‘대약진 운동’을 선포했다. 그 후과로 대기근이 발생했고, 5년 동안 4천300만~4천600만명(역사학자 프랑크 디쾨터 추산)이 사망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정치적 입지가 좁아진 마오쩌둥은 1966년 ‘새로운 공산주의 문화를 창출한다’는 명분 아래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대혁명(문혁)을 일으켰다.
문혁은 예술에 직격탄을 날렸다. 마오쩌둥의 아내이자 배우 출신인 장칭은 ‘문예흑선독재론’을 내세웠다. 1949년 이후 문학과 예술이 부르주아적이고 반사회주의적인 ‘검은 주류’에 의해 지배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검은 주류를 배제하고 새로운 문학과 예술을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논리로 문예계 인사들은 문화부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주샤오메이가 다니던 베이징 중앙음악학교에도 문화부 훈령이 내려왔다. 더는 서양 고전음악을 공부하지 말라는 지침이었다. 기교 훈련을 위한 체르니와 하농의 연습곡 연주만이 허락됐다. 홍위병들은 한술 더 떴다. 그들은 바흐와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레코드와 악보를 불태웠다. 이후 중국에서 유일하게 허락된 음악 작품은 장칭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양판희'(혁명 모범작품)뿐이었다. 경극 다섯 작품과 발레 극 두 작품, 교향악 한 작품만이 문화대혁명의 이상적인 음악 작품으로 여겨졌다. 중앙음악학교의 학생 역시 양판희 공연에 참여해야만 했다.
음악이 사라진 학교에서 학생들은 혁명 영웅에 관해 토론했고, 짝을 지어 서로를 감시했다. 자기비판과 고발 집회가 연이어 열렸다. 홍위병은 교장과 교수를 향해 “감상주의적 서양음악으로 학생들을 이기주의자로 길러냈다”고 비난했다. 운동장에서 교수들의 무릎을 꿇리고, 자기비판이 끝날 때마다 혁대로 때렸다. 주샤오메이는 피 흘리는 선생들을 보며 생각했다. ‘참혹하기 그지없지만 새로운 중국의 장래를 위해서는 저만한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샤오메이 역시 몇 년 전 숙청의 위험에 놓였던 경험이 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전체주의 체제에서 중죄로 여겨지는 ‘자살’을 장난스레 언급했다가 전교생 앞에서 자기비판을 해야 했다. 그때 느꼈던 공포로 그는 마오쩌둥의 혁명 이론을 더욱 강박적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같은 시기, 주샤오메이가 반했던 구성잉은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상하이음악학교 교수를 지냈던 그 역시 여느 교수들처럼 학생들에게 공개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그는 가스를 틀어놓은 채 ‘장송 행진곡’이라는 별칭이 붙은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을 피아노로 연주하며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목숨을 끊었다.
1966년 9월15일 중국의 홍위병들. 위키미디어 코먼스
수용소로 음악이 찾아왔다
1968년, 마오쩌둥은 ‘지식 청년들이 농촌으로 가서 다시 배워야 한다’며 상산하향 운동을 펼쳤다. 도회지 주민들은 노동을 통해 재교육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농촌의 수용소로 보내졌다. 베이징에 살던 주샤오메이의 가족도 뿔뿔이 흩어졌다. 주샤오메이는 1969년 베이징 중앙음악학교 학생들에게 내려진 처분에 따라 몽골 접경지대인 장자커우 지역의 수용소로 갔다. 이후 5년 동안 네 곳의 수용소를 전전했다.
수용소 생활 특성상 주샤오메이는 음악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음악이 끈질기게 주샤오메이를 따라왔다. 첫 수용소에서 순회공연단이 가져온 아코디언을 우연히 발견한 그는 오른손으로 쇼팽의 연습곡 2번(작품번호 10번)을 연주하며 음악과 다시 만났다.
1971년 네 번째 수용소로 옮겨졌지만, 주샤오메이의 머릿속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선율이 떠나지 않았다. 우울증에서 가까스로 벗어나며 이 곡을 작곡했던 라흐마니노프처럼, 주샤오메이도 감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피아노를 연주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그곳은 감옥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마침 수용소의 분위기는 점차 느슨해지고 있었다. 주샤오메이는 베이징 집에 있는 로빈슨 피아노를 이곳으로 옮겨 오겠다는 대담한 생각에 이르렀다.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제2번 다단조 Op.18 (2023) / 연주: 니콜라이 루간스키(피아노), 스타니슬라프 코차놉스키(지휘), KBS교향악단
무모해 보였던 계획은 여러 기적이 겹치며 현실이 됐다. 수용소 근처 외딴 오두막에 피아노를 두도록 허락해준 어떤 어른, 주샤오메이의 애원 섞인 편지에 피아노를 보내주기로 결심한 어머니, 이송 중 깨진 피아노 줄을 갈아 끼울 수 있도록 새 줄을 무료로 내준 공장 직원, 피아노의 수용소 반입을 허락한 새로운 수용소 소장, 몰래 서양음악 악보를 보내준 친구의 아버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주샤오메이는 가족이자 친구였던 피아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냉장고같이 추운 피아노 방에서 그는 양판희와 알바니아 음악을 연주하는 척하며 바흐와 쇼팽,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했다. 마침 문화대혁명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979년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과 중국의 지휘자 리더룬이 중국중앙교향악단와 함께 리허설하는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자유 찾아 떠난 미국, 그리고 프랑스
1974년 수용소 생활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온 주샤오메이는 베이징무용학교에서 피아노 반주자가 됐다. 그러나 평생 이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친오빠와 언니가 바다를 헤엄쳐 홍콩으로 망명했다는 친구의 말을 들었다. 주샤오메이도 중국을 떠나 자유를 찾고 싶었다. 매일 아침 6시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았고, 영어 단어를 하루에 20개씩 외웠다. 음악과 멀어졌던 세월을 보상하려는 듯, 오디오를 사고 문혁 속에서도 살아남은 레코드를 찾아다녔다. 준비 끝에 기회가 찾아왔다. 1979년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중국 음악학도에게 유학길이 열렸다. 주샤오메이는 미국에 있는 먼 친척의 연줄을 통해 미국행 비자를 받았다.
꿈꿔왔던 미국의 현실은 마냥 장밋빛이 아니었다. 보스턴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에 입학했지만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마약중독자와 성매매 종사자가 드나드는 홍등가 식당에서 접시를 씻고 청소했다. 바흐와 베토벤의 악보에는 간장 냄새가 배어들었고, 피아노 칠 기력도 사라져 갔다. 그렇게 버텨내며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졸업했을 때 그의 나이는 33살이었다. 졸업 후 설상가상 비자 유효기간이 만료돼 중국으로 돌아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는 영주권을 얻기 위해 미국인 친구와 위장 결혼까지 감행했다.
이후 36살에 파리로 이주한 주샤오메이는 꾸준히 연주 활동을 이어갔다. 45살이던 1994년에는 드디어 파리 시립극장에서 독주회를 열어 큰 공연장에 처음으로 데뷔했다. 그는 이후 파리음악원에서 학생을 가르치게 됐고, 피아니스트로의 경력도 본격적으로 만개하기 시작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작곡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초판 표지. 위키미디어 코먼스
삶을 송두리째 바꾼 ‘골드베르크 변주곡’
주샤오메이의 대표작은 단연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그가 다시 돌아온 중국에서 연주한 곡도, 첫 레코딩 음반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주샤오메이가 사는 파리 센강변 근처의 집도 이 곡 덕분에 얻었다. 파리의 한 살롱 음악회에서 그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를 듣고 감동한 노부인이 낮은 임대료로 아파트를 빌려준 것이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1741년 건반악기를 위해 작곡했다.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변주곡으로 이어진 뒤, 다시 아리아로 끝을 맺는다.
변주곡의 작곡 경위에 대해서는 독일 음악사학자인 요한 니콜라우스 포르켈이 1802년에 쓴 바흐의 전기에 실린 일화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였던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은 병약해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의 개인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저택에 함께 살았던 요한 고틀리프 골드베르크는 백작이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하프시코드를 연주해야 했다. 어느 날 백작은 바흐에게 “골드베르크를 위해, 너무 거칠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생기 있는 건반악기 곡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잠 못 이루는 밤에 조금이라도 기운을 낼 수 있게 해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이 작품에 만족한 백작은 바흐에게 금으로 만든 잔에 루이도르(금화) 100개를 담아 선물했다.
이 일화는 이후 과장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포르켈이 이 전기를 쓸 때는 이미 바흐가 죽은 지 50년이 지난 뒤였다. 어떨 땐 백작이 잠을 자기 위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주문했다는 식으로 왜곡돼 전해지기도 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위대한 해석자 중 하나로 꼽히는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조차 이 작품을 수면제 같은 음악으로 해석한 바 있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1981) / 연주: 글렌 굴드
주샤오메이가 처음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만난 것은 프랑스에 살던 도중 비자 문제로 잠시 미국 보스턴으로 돌아가 머물던 때였다. 음악 이론을 전공하는 친구 재닛의 집에 얹혀살던 그는 책장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 악보를 발견했다. 주샤오메이는 그 순간을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줄 음악 작품과의 만남”이라고 했다.
피아노 교사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했던 1년 반의 임시 미국 생활 동안 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매일같이 치고 또 쳤다. 제1변주곡에서는 용기가 차올랐고, 제10변주곡에서는 미소가 떠올랐으며, 제13변주곡에서는 노래가 절로 나왔다. 단조로 이뤄진 제15변주곡과 제25변주곡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제30변주곡을 연주할 때면 ‘배추와 무밖에 먹을 것이 없는 집’이라는, 변주곡의 바탕이 된 민요의 가사가 떠올랐다. 그러다 보면 매일 밭에서 배추를 뽑고, 저녁으로도 배추를 먹었던 재교육 수용소에서의 생활이 생각났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닮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주샤오메이의 중국 순회공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 유튜브 채널 ‘accentusmusic’ 갈무리
물처럼 다시 낮은 곳으로
아리아로 시작해 다시 아리아로 돌아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구조는 그가 중국으로 귀환하는 여정과도 닮았다. 미국과 유럽에서 마음껏 피아노를 쳤지만, 가족을 두고 떠나온 베이징은 주샤오메이의 마음 한편을 계속 짓눌렀다. 그러던 중 그는 2011년 중국의 음악평론가 장커신의 글 ‘주샤오메이를 찾아서’를 통해 중국에 알려지게 된다. 장커신은 이 글에서 주샤오메이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을 우연히 듣고, 센강변 근처의 주샤오메이의 집에서 그를 만나게 되는 과정을 기록했다. “나는 클래식 음악이 평생의 추구이자 사랑이라고 믿는다. 한평생 음악을 전하고, 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피아니스트의 사명이다. 출세나 돈을 목표로 삼는다면 손끝의 음악이 어떻게 순수함을 지킬 수 있겠는가. 이런 기준에서 보더라도 주샤오메이는 중국 피아니스트들의 모범이자 상징이다.” 장커신의 글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장커신은 3년 뒤인 2014년 주샤오메이를 설득해 중국 투어를 성사시켰다. 중국의 현재 모습을 알지 못했던 주샤오메이는 걱정이 앞섰다. 중국에서는 기교가 뛰어난 낭만주의 레퍼토리가 주류일 텐데, 과시 없는 자신의 바흐 연주가 중국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염려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주샤오메이의 걱정은 기우였다. 상하이 독주회 티켓은 48시간 만에 매진됐다. 구하기 어렵다는 원성에 같은 장소에서 두 번째 공연 티켓을 열었지만 이마저도 10분 만에 매진됐다. 공연 당일에는 암표상이 주샤오메이를 알아보지 못한 채 그에게 6000위안(약 103만원)에 암표를 팔려고 하기도 했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수백명의 중국인들은 주샤오메이의 사인을 받기 위해 음반을 들고 긴 줄을 섰다.
자신이 음악을 시작했던 베이징으로 다시 돌아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게 된 주샤오메이는 생각했다. 문화가 없는 삶을 견뎌야 했던 세대가 여전히 이렇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줘서 다행이라고. 공연장을 가득 채운 젊은 관객들은 음악과 문화, 교육을 풍요롭게 누렸으면 좋겠다고.
같은 해 주샤오메이는 또 하나의 꿈을 이뤘다. 독일 라이프치히의 성 토마스 교회에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 것이다. 이 교회는 바흐가 172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칸토르(음악 감독)로 활동한 곳이자, 그의 유해가 안치된 곳이다. 바흐를 사랑했던 주샤오메이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인 셈이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2014) / 연주: 주샤오메이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교회 공연 실황
하지만 주샤오메이는 뒤늦게 찾아온 명성에 들뜨지 않았다. 문화대혁명 때의 경험이 컸다. 매일 같이 학교에서 자신과 타인을 상대로 벌어졌던 비판은 그를 겸손하다 못해 자신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공연할 때마다 관객들로부터 심판을 받는 기분을 느낀다. 공연 시작 전에는 자신에게 백 가지 질문을 던지고, 끝난 후에도 못한 부분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가 스승으로 생각하는 노자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주샤오메이는 노자의 말처럼 물 같이 살고 싶어한다. 노자는 최고의 선, 가장 높은 덕성은 물과 같다고 했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할 뿐 다투지 않는다.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도덕경’, 소준섭 옮김. 현대지성) 공교롭게도 그가 사랑한 바흐의 뜻 역시 작은 시내, 개울이다.
인생에서 가장 영예로웠던 해가 지나간 뒤에도 주샤오메이의 행보는 조용했다. 독주회 소식도, 요란한 인터뷰나 홍보 활동도 찾을 수 없었다. 젊은 음악가를 돕고 있다는 소식만 간간이 전해질 뿐이었다. 최근 알려진 근황은 2024년 바흐의 ‘영국 모음곡’ 음반 발매다. 아마 그는 지금도 뽐내지 않는 모습으로 음악과 마주하고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뒤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초의 아리아로 돌아가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처럼 살고 있을 것이다.
주샤오메이. 미라레(Mirare) 제공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영국 모음곡 BWV 806-811 (2024) / 연주: 주샤오메이
참고 자료
책 『강과 그 비밀』, 주샤오메이 지음, 배성옥 옮김, 마르코폴로, 2024.
책 『Zhu Xiao-Mei : Retour en Chine』 (『주샤오메이: 중국으로의 귀환』), Michel Mollard(미셸 몰라르), Salvator, 2016.
다큐멘터리 ‘Zhu Xiao-Mei, How Bach Defeated Mao’(‘주샤오메이, 바흐는 어떻게 마오를 이겼는가’), 2016.
기사 「주샤오메이와 함께하는 아침 식사」, 파이낸셜 타임스 중국판, 2014.11.09.
기사 「주샤오메이: 최고의 연주는 시간을 잊게 하고, 자아를 잊게 한다」, 남방도시보, 2014.11.07.
미드나잇 인 리스닝바는
“음악이 흐르는 리스닝바에서 음악가와 술 한 잔 어떠세요?” 음악도 좋아하고 사람도 좋아하는 이우연 기자가 들려주는 음악가 이야기. 클래식부터 재즈, 대중음악까지. 어떤 장르여도 상관없다. 그저 우리가 사랑했던 음악가라면 충분하다.
이우연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