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는 교회 성장을 최우선 가치로 치던 1970년대 제자 훈련을 도입, 한국교회에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사진은 옥 목사 생전 설교 모습. 국민일보DB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나 같은 사람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까지 이렇게 쏟아주는 그 뜻을 도통 알 수가 없다.”
은보(恩步) 옥한흠(1938~2010) 사랑의교회 원로목사가 성도 수 5000명을 넘겼을 때 귀가하며 한 혼잣말이다. 옥 목사가 1978년 서울 강남 지역에 개척한 사랑의교회는 그가 목회한
야마토게임예시 25년간 교인 수가 매년 증가했다. 옥 목사는 이를 보며 자신이 평생 추구한 목회 철학과 교회론이 맞는 건지 의구심이 들어 착잡함을 숨길 수 없었다.
신간 ‘옥한흠 평전’(뜰힘)은 교회사가의 시점에서 옥 목사의 목회 철학과 고뇌, 삶 전반과 주요 사역을 망라한 책이다. 저자 박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응규 아신대 명예교수는 이 책을 ‘한 인물에 관한 기록이자 한국 현대 기독교의 초상’이라고 명명한다. 옥 목사 생애의 “빛과 그림자는 한국교회가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드러내기 때문”이다. 2009년 집필을 시작한 저자는 옥 목사의 저술과 그와 동역한 120여명의 증언을 종합해 16년 만에 책을 완성했다.
옥 목사가 목회를 시작한 1
야마토게임장 970년대 한국교회의 지상 목표는 ‘교회 성장’이었다. “평신도는 여전히 수동적인 존재”로만 여겨졌다. 옥 목사는 이런 가운데 평신도 성경 훈련을 무엇보다 강조했다. 그의 상징이 된 ‘제자훈련’의 시작이다. 강해 위주의 설교 또한 교회 부흥을 견인했다.
제자훈련 필독서로 통하는 ‘평신도를 깨운다’를 펴낸 이후로는 제자훈련으로 국내외 교회
뽀빠이릴게임 지도자를 깨우는 일에 앞장선다. 이에 진력하기 위해 그는 골프와 외제차, 외부 집회를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주변에서 ‘고결한 완벽주의자’나 ‘굴 파고 들어앉은 사람’이란 평을 들은 것도 이 때문이다. 허나 교회 연합과 갱신 운동엔 적극적이었다. 교회 갱신을 위한 목회자 협의회(교갱협)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을 세운 그는 은퇴 이후로도 한국교회를 향
릴짱 한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옥 목사 설교의 백미로 2007년 ‘한국교회 대부흥 100주년 기념대회’ 메시지를 꼽는다. 이 집회에서 그는 “주여, 이놈이 죄인입니다. 입만 살고 행위는 죽은 교회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한국교회를 깨끗케 하소서”라고 외쳤다. 당시 옥 목사의 원고를 교정했던 이동원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는 “정말 역사적 설교였다”며 “평양 대부흥과 같은 역사가 일어날 것 같은 숨 막히는 도전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책의 진가는 ‘한국교회 목회자의 사표(師表)’로 통하는 그의 허물을 가감 없이 기록한 데서 드러난다. 청교도적 신앙 배경에서 성장한 옥 목사는 아들에게 자신이 “항상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염세주의 냄새를 말끔하게 씻어내지 못한 자아상을 숨기며 살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가정을 등한시하고 자녀를 방치했다”고도 고백한다. 교회서 제자훈련에 힘쓸 당시 한 여집사를 편애했다가 여러 장로가 우려를 표하자 행실을 교정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일부 장로와 목회자만 합의한 채 중국 옌볜과학기술대학과 평양과학기술대학에 헌금 상당액을 후원한 것도 옥에 티로 꼽는다.
그가 후임자를 세우고 물러난 뒤 교회건축을 둘러싸고 잡음이 빚어졌을 때 보였던 모습도 그림자로 지목된다. 옥 목사는 당시 이 사안으로 후임자와 이견이 불거지자 시무 장로에서 내려온 사역 장로를 모아 당회로 다시 들어가 담임목사를 견제하라고 주문한다. 자신이 교회 당회를 젊게 유지하기 위해 시무 장로 은퇴를 앞당기면서 도입한 사역 장로 제도를 스스로 후퇴시키려 한 것이다. 옥 목사는 당시 한 장로가 “교회를 깨라는 얘기다. 안 된다”고 일축하자 이를 더는 추진하지 않았다. 저자 역시 당시 시도를 “자가당착적 모순이자 용납될 수 없는 요구였다”고 꼬집는다.
책에는 이외에도 옥 목사 은퇴 이후 교회를 둘러싸고 빚어진 논란과 그 전후 사정, 말년의 투병 과정 등이 담겼다. 한국교회에 족적을 남긴 어른의 명암을 비교적 솔직하고 균형 있게 담아냈다는 데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읽다 보면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추천사가 깊이 공감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조금이라도 더 온전하게 사역하려고 씨름한 옥한흠 목사의 공과를 공정하게 읽어낸, 결과적으로 가장 정확한 형태의 명예 회복이라 할 수 있다.”
양민경 기자
[email protected]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