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전 세계의 시선이 바티칸의 시스티나 경당 굴뚝으로 쏠렸습니다. 굴뚝 위로 피어오른 흰 연기와 함께 발코니에 등장한 새 교황,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 추기경은 자신의 교황명으로 ‘레오 14세(Leo XIV)’를 선택했습니다.
사상 첫 미국인 교황이자, 14번째 ‘사자(Leo)’의 이름을 딴 교황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서기 440년, 훈족의 왕 아틸라와의 담판으로 로마 문명과 교회를 지켜낸 대교황 레오 1세(Pope Leo I, the Great)를 잇는 용기와 강인함이 레오 14세와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새로운 레
황금성릴게임 오 교황이 바티칸의 창문을 활짝 열고 현대 사회와의 소통을 시작한 순간, 역사를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선임자이자 같은 이름을 썼던 레오 13세(Leo XIII)를 떠올렸을 겁니다. 지금으로부터 120여년 전 19세기에 재위하며 가톨릭의 현대화를 이끌었던 인물이거니와, 아주 독특하고도 은밀한 애호품으로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검증완료릴게임 혹시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낡은 포스터 한 장을 아십니까? 그 속에서 레오 13세는 성경이 아닌 와인 병을 지긋이 바라보며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가 바티칸의 공식 금메달 훈장까지 수여하며 사랑했던 그 와인 때문이죠.
놀랍게도 그 병 속에는 보르도의 붉은 포도주와 함께 안데스 산맥의 하얀 가루가 녹아 있었습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니다. 오늘날 우리가 물처럼 마시는 코카콜라의 기원이 된 치명적인 마약 와인 이야기입니다. 돌아온 레오의 시대를 맞아, 와인 잔 속에 담겼던 19세기의 환각과 욕망, 그리고 코카콜라의 탄생 비화를 꺼내봅니다.
뱅 마리아니의 신문광고에 등장한 당대 교황 레오13세.
바다이야기#릴게임 보르도 와인, 코카인을 탐하다
1863년 파리의 한 실험실, 프랑스 코르시카 출신의 화학자이자 탁월한 사업가였던 안젤로 마리아니(Angelo Mariani)는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 의학계와
바다이야기비밀코드 사교계는 남미에서 전해진 신비의 식물, 코카(Coca)에 완전히 매료돼 있던 시기였죠. 잉카 제국의 원주민들이 고산병을 이겨내고 고된 노동을 견디기 위해 씹었다는 이 잎사귀가 피로 회복과 정신 고양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니는 이 코카 잎의 유효 성분을 추출해 대중적인 음료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용매를 테스트한 끝에,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액체인 ‘와인’을 선택했습니다.
판매되던 뱅 마리아니의 삽화.
실제로 이 선택은 화학적으로 완벽했습니다. 알코올(에탄올)은 코카 잎에 함유된 알칼로이드 성분, 즉 코카인을 추출해 내는 데 최적의 용매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체내에 흡수될 때 알코올과 코카인이 반응하면 코카에틸렌(Cocaethylene)이라는 새로운 화합물이 생성되는데, 이는 코카인을 단독으로 사용할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지속적인 유포리아(Euphoria·다행감)를 선사했습니다.
그는 우아한 풍미를 위해 베이스 와인으로 보르도(Bordeaux)산 레드 와인을 선택했습니다. 탄닌이 부드럽게 녹아든 보르도 와인에 페루산 최상급 코카 잎을 침출시킨 음료, 뱅 마리아니(Vin Mariani)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뱅 마리아니는 병당 약 6~7㎎의 코카인이 함유된 이 술은 단순한 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시는 순간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우울감이 걷히며, 끝없는 활력을 불어넣는 마법의 물약으로 통했습니다. 그리고 날개 돋힌 듯 전 유럽으로, 또 아메리카 대륙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당시 뱅 마리아니의 포스터
교황의 품속에 숨겨진 힙 플라스크
뱅 마리아니의 성공은 실로 폭발적이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산업혁명의 고도화와 함께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아름다운 시절)’의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신경쇠약, 우울증, 만성 피로라는 현대적 질병이 자리 잡던 시기였습니다. 지친 도시인들에게 마리아니는 와인의 미식적 즐거움과 약물의 각성 효과를 동시에 제공하는 구원자로 통했습니다.
안젤로 마리아니는 시대를 앞서간 마케팅의 귀재였습니다. 그는 당대의 유명 인사들에게 자신의 와인을 보내고 그들의 찬사가 담긴 편지를 모아 책(Album Mariani)으로 출판했는데, 그 명단은 실로 화려하다 못해 비현실적입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스페인 국왕,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작가 쥘 베른, 에밀 졸라, 심지어 미국의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까지 이 와인에 열광했습니다. 에디슨은 “생각이 막힐 때마다 이 와인이 영감을 준다”며 극찬했고, 24시간 잠을 줄여가며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 와인이었다는 후문도 전해집니다.
안젤로 마리아니에게 보낸 에디슨의 친필 서신. 에디슨은 “당신의 앨범(홍보 책자)에 출판할 수 있도록 제 사진 한 장을 보내드리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I take pleasure in sending you one of my photographs for publication in your Album)”라고 적었다.
정점은 교황 레오 13세였습니다.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아야 할 교황청의 수장이, 마약 성분이 든 와인을 늘 품에 지니고 다녔다는 사실은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스캔들에 가깝습니다.
당시 코카인은 위험한 마약이 아닌, 신이 내린 치료제로 여겨졌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교황은 사제복 안에 뱅 마리아니를 담은 개인용 힙 플라스크(Hip flask)를 챙겨 다니며 기도가 힘들거나 격무에 지칠 때마다 목을 축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급기야 이 와인에 감복해 바티칸의 공식 인증 메달을 수여하기까지 했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단순한 뜬소문이라 치부할지도 모릅니다만, 바티칸의 인장이 찍힌 결정적인 증거도 존재합니다. 1898년 1월 2일, 교황청 국무원장 람폴라(Rampolla) 추기경이 보낸 공식 서한입니다. 서한에는 “교황 성하께서 마리아니 씨에게 감사를 전하며, 당신의 형상이 담긴 금메달(Gold Medal)을 수여하게 되어 기쁘다”는 내용이 명확히 적혀 있습니다.
바티칸의 2인자가 공문서로 보증할 만큼, 교황의 ‘코카인 와인’ 사랑은 각별했던 것입니다. 마리아니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신문 전면 광고에 교황의 초상화를 대문짝만하게 싣고 “교황 성하께서 이 토닉 와인의 효능을 인정하셨다”는 문구를 박아넣었습니다.
19세기~20세기 유행했던 광고용 우표에 교황을 내세운 광고를 펼친 뱅 마리아니.
애틀랜타의 약사, 모방을 넘어 혁명으로
유럽의 ‘뱅 마리아니 열풍’은 미국 남부의 한 약사를 자극했습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존 펨버턴(John Pemberton) 박사는 남북전쟁 참전 용사였습니다. 전쟁 중 입은 부상으로 인한 통증과 모르핀 중독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의 고통을 덜어줄 치료제이자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뱅 마리아니였습니다. 1885년, 펨버턴은 뱅 마리아니의 레시피를 철저히 벤치마킹해 자신만의 버전을 출시합니다. 이름하여 ‘펨버턴의 프렌치 와인 코카(Pemberton’s French Wine Coca)’. 이름에서부터 프랑스 와인의 후광을 입으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납니다.
다만 그는 여기에 차별점을 두기 위해 아프리카산 콜라 열매(Kola Nut) 추출물을 추가했습니다. 콜라 열매는 카페인이 풍부한 식물입니다. 즉 알코올(와인), 코카인(코카), 카페인(콜라)이라는 강력한 중추신경 자극제 세 가지가 한 병에 담긴, 실로 무시무시한 칵테일이 탄생한 것입니다.
펨버턴의 제품은 애틀랜타의 지식인 계층에게 신경을 안정시키고 두통을 없애주는 지적인 음료로 팔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이 달콤한 성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886년, 애틀랜타가 속한 풀턴 카운티에 금주법(Prohibition)이 시행된 것입니다.
펨버턴의 프렌치 와인 코카 출시 당시 광고
금주법이 낳은 검은 액체의 탄생
역사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방향을 틉니다. 만약 애틀랜타에 금주령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날 햄버거와 함께 보르도 와인 베이스의 음료를 마시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알코올 판매가 금지되자 펨버턴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는 고민 끝에 레시피의 대수술을 감행합니다.
가장 중요한 베이스인 ‘와인’을 빼야만 했습니다. 와인의 풍미와 단맛이 사라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그는 끈적한 설탕 시럽을 베이스로 삼고, 와인의 쌉싸름한 맛을 대신할 여러 향신료를 배합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물 대신 탄산수를 섞었습니다. 알코올은 사라졌지만, 코카 잎(Coca)과 콜라 열매(Kola)의 핵심 성분은 남았습니다. 그렇게 1886년 5월, 알코올이 빠진 검은 액체, 코카-콜라(Coca-Cola)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초창기 코카콜라에는 여전히 미량의 코카인 성분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술 대신 이 톡 쏘는 음료를 마시며 미묘한 고양감을 즐겼습니다.(코카콜라에서 코카인 성분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1903년의 일입니다.) 펨버턴은 자신이 만든 이 음료가 훗날 전 세계 자본주의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저 팔지 못하게 된 와인의 대용품을 만드느라 급급했을 뿐이니까요.
존 스티스 펨버턴과 당시 시럽을 넣은 코카-콜라 광고. 펨버턴은 광고에 ‘금주 음료(Temperance Drink)’라고 명시하며 알코올이 없음을 강조했다. 동시에 ‘지적인 음료(Intellectual Beverage)’이자 ‘두뇌 강장제(Brain Tonic)’라는 문구를 넣어, 술을 못 마시게 된 지식인들의 헛헛한 마음(과 뇌)을 공략했다.
와인의 영혼을 품은 탄산음료
역설적이게도 코카콜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와인의 오마주(Homage)’이자, 동시에 가장 처절하게 실패한 ‘와인의 모조품’입니다. 금주법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파도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펨버턴은 와인의 영혼인 알코올을 거세하고 코카의 쾌락을 카페인으로 대체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검은 액체는 와인이 줄 수 있는 취기의 위로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편의점에서 캔을 딸 때 들리는 그 날카로운 탄산 소리.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뿌리인 포도밭을 잃어버린 인공 감미료들이 내뱉는 긴 한숨일지도 모릅니다. 펨버턴은 그것을 ‘지적인 음료’라 포장하며 지식인들을 유혹했지만, 공장에서 찍어낸 차가운 시럽이 수천 년의 떼루아(Terroir)를 품은 와인의 깊이를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제 100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레오(Leo)’의 시대가 돌아왔습니다. 레오 13세가 살았던 19세기말보다 더 빠르고 복잡해진 21세기의 레오 14세 시대. 현대인들은 코카인보다 더 강력한 도파민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영혼의 허기는 그 어느 때보다 깊어졌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순간적인 각성을 주는 탄산의 자극이 아니라, 긴 하루의 끝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진짜 ‘마법의 물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