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문양목 지사 20년 취재 신문웅·김동이 기자 출연 문양목, 스티븐스 저격사건 지원·대동공보 발행인 지낸 독립운동가 태안신문 2016년 미국 유족 취재도…올해 8월 유해 봉환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난 8월 미국에서 한국으로 유해 송환이 추진된 우운 문양목 애국지사의 모습. 사진=KBS대전 아침마당 갈무리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한 독립운동가를 20년 넘게 조명하며 최근 유해 송환까지
바다신2다운로드 추진하는데 일조한 풀뿌리 지역언론 기자들이 KBS 아침마당에 출연했다.
지난 19일 오전 KBS대전 교양 프로그램 '아침마당'에 태안신문 소속 신문웅 편집국장과 김동이 기자가 출연해 우운 문양목 애국지사(1896~1940)에 대한 취재 후기를 나눴다. '아침마당'은 KBS의 유명 프로그램으로 전국 방송이지만 금요일
바다이야기하는법 지역KBS에서는 자체 제작을 한다. 이날 방송에는 두 기자와 함께 이수연 전 우운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독립운동가 문양목 평전'을 쓴 최재학 작가도 출연했다.
문양목 지사는 1896년 충남 태안 출생으로 20대에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노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다. 구체적으로는 1905년
바다신2다운로드 을사늑약 이후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 모집 공고를 보고 하와이로 건너갔고 이듬해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뒤 1907년 독립운동단체 대동보국회를 만들어 중앙회장을 지냈다.
▲ 문양목 지사가 사장, 발행인 겸 주필을 맡았던 대동공보. 사진=KBS대전 아침마당 갈무리
바다이야기릴게임 김 기자에 따르면 대동보국회 기관지인 대동공보(주간지)를 만들어 사장 겸 발행인과 주필을 맡아 국내외 조선인을 대상으로 국권회복 의식을 퍼뜨리기도 했고 이후 신한민보 주필도 맡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엔 한글학교를 만들어 교장도 지냈다. 문 지사는 1908년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
오션파라다이스게임 없다”고 주장한 친일 외교고문인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과 전명운을 지원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 지사는 왜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신문웅 국장은 아침마당에서 “해외취재에서 확인한 바로 미주 독립운동사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본인 스스로 드러내는 일보다는 숨어서 책임지는 역할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또 신 국장에 따르면 스티븐스 저격사건 이후 장인환·전명운을 이승만이 잠시 지원을 하다가 떠난 일이 있었다. 이후 문 지사가 나머지 뒷일을 맡았는데 해방 이후 문 지사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 당시 대통령 이승만의 다소 무책임한 행적이 드러날 수 있어 국내에서 알려지지 않은 측면도 있다.
▲ 아침마당에 출연한 신문웅 태안신문 편집국장(위)과 김동이 태안신문 기자(부국장). 사진=KBS대전 아침마당 갈무리
그러다 한국 정부가 문 지사에게 지난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고 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서 2004년 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는데 그제서야 한국 사회에 문양목이란 인물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2005년도에는 태안 지역에서 문 지사 추모사업회를 만들었고 이후 태안신문은 현재까지 170편이 넘는 기사를 통해 문 지사의 귀국과 유해봉환 문제를 꾸준히 보도해왔다. 신 국장은 “최재학 작가가 문양목 평전을 썼는데 이런 기록이 없었다면 역사 속에 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평전이 2015년에 발간됐고, 태안신문은 2016년 '문양목 선생 선양사업, 해법을 찾아서'라는 기획취재를 통해 미국 현지 취재를 떠났다. 직접 취재에 나선 계기가 있었다. 김 기자는 “선양사업에는 여야가 있어선 안 되는데 2015년 12월 본예산을 심의하다 문 지사 생가 정비사업 예산이 반토막이 나서 선양사업에 제동이 걸렸다”며 “고민하다 이 분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문양목 평전'을 읽게 됐다”고 말했다. 최 작가가 평전 뒤에 유족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놔서 이를 통해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을 찾은 태안신문 기자들은 문 지사의 막내아들(당시 93세)를 직접 인터뷰를 통해 '독립된 고국으로 꼭 돌아가고 싶다'는 고 문양목 애국지사의 생전 유언을 보도하며 유해 봉환의 필요성을 조명했다. 김동이 기자는 “문 지사의 아들 윌리암씨를 취재해보니 미국에서 삶은 정말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문 지사가) 한약방도 운영했고 청소업체, 농장에서도 궂은 일을 하셨더라”라고 전했다. 김 기자는 “보도 이후 태안군에서도 관심을 가져서 금방 유해 봉환이 될 줄 알았는데 오래 걸렸다”며 “10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럼에도 태안신문은 후속 취재를 통해 유해봉환 추진의 필요성을 공론화했고 올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지난 8월 마침내 120년 만의 귀향이 현실화됐다. 문 지사는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김 기자는 “문 지사를 모셔 오는데 있에서 지역사회의 관심이 부족해서 좀 서운했다”며 “함께 역량을 모았다면 이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을 것 같다”고 말했다.
▲ 문양목 지사의 후손(위)과 유해 송환 관련 법적 소송을 무료 변론한 최홍일 변호사. 사진=KBS대전 아침마당 갈무리
문 지사 유해 봉환의 법적 걸림돌을 해결하기 위한 소송을 무료 변론한 이도 있다. 최홍일 변호사는 태안신문과 인터뷰에서 “문 지사도 본인 시간과 돈으로 희생하면서 (독립운동) 하셨는데 내가 왜 (무료 변론을) 못하나 (싶었다)”며 “만약 독립운동가들이 희생한 다음 어떠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을 (아이들이) 모른다면 그 다음 우리나라가 힘들어지면 누가 희생하겠냐. 역사가 있고 그 역사를 알리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김 기자에 따르면 최 변호사 주도로 미국에서 봉환 행사를 두 번(새크라멘토·샌프란시스코) 열었고, 교육 차원에서 자신의 아들과 함께 참석했다.
건강한 풀뿌리 지역언론들의 모임인 바른지역언론연대는 지난달 “풀뿌리 언론이 국가적 역사 과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한 모범적 사례”라며 2025 풀뿌리언론상 보도부문 최우수상으로 태안신문을 선정했다. 태안신문은 태안 앞바다에서 지난 2007년 12월 벌어진 '삼성중공업 태안바다 기름유출사고'의 여파와 제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를 18년 넘게 2000건이 넘는 기사로 추적보도한 것으로도 유명한 풀뿌리 지역언론이다.